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라 Jul 05. 2020

아무튼, 비건

<슬로우 노트 #1.>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책 읽는 행위를 사랑한다. 조금은 원초적인 현재의 상태를, 조금은 선한 방향으로 다듬어 주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후 좋은 책이라고 느꼈던 순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다른 책으로 실타래처럼 이어지게 해 주며 생각을 확장할 수 있게 하는 책, 두 번째는 반짝이는 영감 내지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운 생활을 흡수하게 만드는 곧, 세상을 향한 작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그런 책이다. <아무튼, 비건>은 두 가지를 갖고 있는 그런 책이었다. 


아무튼 시리즈는 작지만 강한 울림이 있다. 시리즈의 첫 번째로 접한 책은 <아무튼, 비건>.  비건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생각했던 소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꾸만 눈길이 가던 소재였다. 지금까지 나는 채식 혹은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은 유달리 사회의식이 있거나 예민한 사람들의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부끄럽게도 '채식=비건'인 줄 알았다. 아무튼 시리즈의 책은 핸드북 다운 작은 크기에 대부분 200페이지 이상이 넘지 않는다. 아주 함축적으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란 의미다. 

목차의 인상은 단단했다. 남> 진실> 결심> 소유> 실전> 반응들> 정보들


<아무튼, 비건> 김한민 작가 / 아무튼 시리즈 017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표지에서부터 첫 질문을 던진다. "무언가 연결되었어야 했나?" 무지했던 나는 되물었다. 저자가 첫 목차로 "남"이라는 지독하고 무거운 단어 하나를 서두에 배치한 이유였다. 

이 책은 타자에 관한 책이다. 한 편의 시 같은,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로 시작해보자.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  p7

자기중심 안에 갇혀있다 보면 세상과의 연결감을 잊고 산다. 특히,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마치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무지한 채로 살았던 '무서운 타자화=나와 남, 우리와 남을 가르는 행위'의 개념에서 비춰볼 때 지금까지 무시와 배제의 영역으로 '동물화'가 이루어졌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동물은 인간과 같은 생명체임에도 인간의 권력 우위라는 무서운 무의식 하에 가장 낮은 위치로 하향 타자화가 진행되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인간은 한 번 타자화한 타자에 대해선 여간해서 재심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Photo by Milan de clerck on Unsplash


연결감은 세상에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야 할 필수적인 삶의 감각이다. 

타자화의 대척점에 연결이 있다. 연결감은 타고나는 것이다. 고기를 거부하는 어린아이의, 흐리지 않은 눈으로 보면 연결은 그냥 보인다. 강아지도 동물, 돼지도 똑같은 동물, 외국인 가사도우미도 사람, 우리 엄마도 같은 사람, 동물과 사람 모두 우리 가족. 아이들의 세계에선 낯섦과 익숙함의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다. -p14

사실 그랬다. 저자가 말한 극단적인 예 중 하나인 '아기 돼지 삼형제'동화책 속의 돼지='돈까스'를 연결시킬 제간이 있었을까? 잠깐 환경 다큐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다 잠깐의 경각심을 갖기도 했지만 내 생활에 녹아들도록 연결시키지 못했다. 의식 속에 깔린 타자화는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한 자연, 식물, 동물 등 연결감을 흐릿하게 만들고 아무 죄의식 없이 소비하는 문화에 집중하게 했다. 어쩌면 소비 행위, 식문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는 연결감을 감각적으로 익히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지구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건이란 단순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동물로 만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소비자 운동이다. 

지독한 타자화와 연약한 연결감에 비춰보면 육식의 진실이 낱낱이 보이게 된다. 맛으로 점철된 인간 중심적인 식문화의 뒤에는 육고기 생산과 가공 그리고 후처리에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잔혹함을 보지 않고 살았다. 잔인함, 오염, 탄소 배출, 산림 훼손, 발암 리스크, 병, 양심 마비 (구제역 살처분) 등의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쩌면 많은 로비스트, 언론, 집단의 이익에 앞선 행위로 소비자의 눈을 가리고 잘못된 육식의 이점을 무의식에 심어두게 만든 잘못된 지식을 지금이라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이러한 잔혹한 진실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건전한 건강을 위해 적어도 다른 식문화 방식을 돌아볼 때인 것은 확실한다. 아름다운 건강을 추구할 것인가, 추한 건강을 추구할 것인가?  

아름다운 건강, 추한 건강 - 건강함과 건전함은 다르다. 건강하지만 건전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몸에 좋다면 남은 얼마든지 희생당해도 좋고, 주위가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가 어찌 건강일 수 있을까. 이것도 굳이 건강이라면, 나는 '추한 건강'이라고 부르겠다.  - p35
Photo by Anna pelzer by Unsplash
완벽주의를 버리고 비건 친화적인 삶을 실천해보자. 

실전 편에서 말하는 저자는 비건을 100% 지키는 소수의 사람보다는 다수가 비건 친화적인 삶을 의식적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은 의식과 행동이 큰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벽히 끊기 어렵다면 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해보자. 고기 없는 주말, 내 돈 주고 사 먹지 말기 등 작은 실천이 나의 건강한 몸과 정신에 스며들다 보면 그 이점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체화하고 더 의식적인 비건 실천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맛에 점철된 식문화에 익숙해진 우리가 보다 맛을 공감각적으로 즐기다 보면 비건은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굽고 튀기면 뭐든지 맛있는 음식이 된다. 그 보다는 건강한 식재료에 영양 식단을 고려하여 건강한 요리 과정을 즐기며,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요리과정에서 나누는 이야기와 누구와 먹는지, 어떤 공간에서 식재료 고유의 맛을 느끼는 조리한 음식을 먹다 보면 먹고 나서 후회하는 포만감보다 만족스러운 충만감이 내 하루하루에 베어 나올 것만 같다.    

    

<아무튼, 비건>의 마지막에 소개된 정보들은 시간 될 때마다 하나씩 찾아볼 생각이다. 잘못된 육식=힘=단백질이라는 상품화된 건강 지식 오류를 하나씩 바로잡고 건강한 실천을 하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서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소비하는 생활을 돌아보고 미니멀하고 환경친화적인 그리고 비건 친화적인 삶을 실천해보고자 한다. 소심한 비건 친화적인 삶이 일주일이 되어간다. 늘 더부룩했던 속도 편해져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조금씩 느끼며 조금씩 실천해 나가고 싶어진다. 나와 그리고 연결된 모두를 위한 건강한 삶을 위해..

작가의 이전글 나이듦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