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ㅣ 물음표를 따라 떠난 길 위에서, 결국 신비한 문을 만날테지.
어른이었던 적이 있던가?
서른 중반을 넘어서 곰곰이 질문을 곱씹어 보면, 오랫동안 어른도 아이도 아닌 채 살아왔다.
어릴 적 꼬마는 전지전능 해 보이는 어른이 되길 꿈꾸었지만, 세월이 흘러 자연스레 어른의 나이에 닿으며, 어른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신이 아니며, 꿈속에 그려왔던 이상과 닮아있는 어른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갈 때쯤, 더 이상 어른의 세상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
청개구리처럼,
오히려 한해 한해 나이가 늘어갈수록 어린아이의 세상을 동경한다.
푸르른 하늘빛으로 반짝이는 순수한 아이의 얼굴을, 즉흥적으로 순간을 사는 해맑은 여유를, 그들만의 세상을 바라볼 때면 희미한 행복이 묻어 나온다. 엄마 뱃속에서 본성적으로 갖고 태어난 자신만의 순수한 색깔을 어쩌면 어른이 되어 사회에 녹아들어도 간직해야한다고 믿는다. 그런 순수한 알맹이를 마음 속에 간직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반짝임에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곤 한다.
동경은 어쩌면 결핍을 의미한다.
내 안에 순수한 시선이, 순수한 열정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음을 알아채고야 만다.
매일 시간에 쫓기듯 긴장으로 굳은 얼굴, 성과와 효율을 쫓다 굳어진 몸, 남들보다 잘 살아내려 시작했던 자기 착취. 마음속 깊은 푸른빛 동경과 회색빛 일상의 괴리가 흐물거리는 아이러니한 삶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물음표로 어느새 머릿속이 가득 차버린다. 분명한 건, 십 년 전 스물다섯의 꿈많던 내가 바라던 삶은 아니었다. 가득 메워지고 비워지지 않는 수많은 날들로 이어진 십 년이 흘러 그동안 꿋꿋이 착실하게 한 직장에서 살아낸 모습이 어느 순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 순간들이 모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생각들로 들어찬 내 머릿속을 텅텅 비워버리고 싶었다.
즉흥적이지도 용기가 두둑하지도 않았던 아이는 오랜 고민 끝에 회사라는 테두리 바깥세상으로 나오기로 결심했다. 그 결정은 보이지 않는 중력과 같은 끌림에 의해서였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그저 나는 어른인 줄 알았지만 생각이 많은 진지한 어른 아이일 뿐이었고, 다시금 내 삶의 방향을 아무도 없는 깨끗한 설원 위에서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한 인간일 뿐이었다.
십년 넘게 내 세상인 줄 알고 다녔던 회사=이상한 나라를 막 탈출한 직후 스스로에게 처음 던졌던 질문은 이것 이었다. 탈출했던 해, 남들에게 들이밀어야 하는 사회적 명함은 11년차 직장인. 마케팅 매니저 OOO.
제발로 회사의 문턱을 나와 명함을 버리고 나면 나에게 무엇이 남아있게 될까?
순수하게 나를 응시하는 하는 행위는 어렵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언젠가 혼자 떠나야 하는 걸음을 해야 할 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믿는다. 그 걸음은 혼자 하는 여행일 수도 있고, 나에게 쓰는 편지일 수도 있고, 책 속에 빠져있는 오롯한 시간일 수도 있다. 일상의 무료함에서는 찾기 힘든 깨끗하고 투명한 진공상태,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나를 모르는 곳에 홀로 있어본 자는 안다.
그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가는 극적인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세상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에게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기존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잣대가 흐려지면서,
나와 세상이 섞일 수 있는 순간이 많아질 거라고.
그런 순간들을 담고 싶었다. 온전한 쉼표 속에 내 의식을 한껏 깨웠던 아름다운 순간들 말이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삶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나의 머릿속을 비우고, 희고 맑은 세상에서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세상에서 조차도 자유로울 것.
내 마음의 선한 의지와 깨어있는 의식을 바탕으로 오롯이 맑은 시선을 가질 것.
그런 나를 믿고, 망설임 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
의연하게, 자유롭게"
지금, 떠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로부터.
2019.7.5.
*Main image: Photo by Luis Del Río Camach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