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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 Nov 27. 2020

도미니카넌 서점

<세상의 아름다운 책방을 기록하다.> #1.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세상에 숨어있는 작고 아름다운 책방을 찾게 된 건 2009년 무렵부터였다. 종이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책은 마음 한켠 불안이 맴돌던 나에게 늘 위안으로 채워주는 친구였고, 자연스럽게 책들이 숨 쉬는 공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시공간은 무엇이었을까? 십 년 동안 세상 여기저기 기웃되며 살아가던 나에게 풍성하게 존재하는 감각을 알려준 세상의 아름다운 책방을 기록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아름다운 책방과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아! 운명이다. 

2017년 1월 22일. 네덜란드 본사 출장이 잡혔다.

퍼뜩 서울시청 도서관에서 빌려봤던 <세계 서점 기행>이라는 새하얗고 두꺼웠던 책이 생각이 났다. 두껍디 두꺼운 하얀 그 책을 서울시청에서 수원 집까지 이고 가며 열정을 불태우며 읽었던 나는 운명처럼 꼭 가보고 싶은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 10'에 꼽히는 몇 곳을 점찍어둔 터였다. 그중에 가장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은 그때는 처음 들어보는 도시였던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Maastricht)에 있는 도미니카넌 서점. 상상하고 원하면 우주가 소원을 들어준다더니 그 마법이 이루어졌을까, 몇 주 후 네덜란드를 가게 될 줄이야! 그날로부터 내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있었다. 같이 출장 가는 부장님들에게도 월요일 공식 일정 전에 주말에 먼저 가서 이곳을 갈 테니 따라올 테면 따라오시오!라고 통보를 했다.  

<세계서점기행> 책에 수록된 도미니카넌서점


네덜란드의 최남단에 자리한 작지만 단단한 소도시, 마스트리흐트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IC기차를 타고 3시간 정도, 네덜란드 최남단을 향해 한참 내려가다 보면 벨기에와 독일의 국경에 접해 있는 네덜란드 경계 끝에 위치한 림뷔르흐주의 주도, 마스트리흐트에 닿는다. 마스트리흐트(Maastricht)라는 이름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마스 강의 다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제위 당시 로마 제국이 건설한 다리의 라틴어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작지만 역사가 살아있는 깊이 있는 도시다.


중세 유럽의 차분함과 네덜란드 특유의 세련된 활기가 섞인 도시의 공기가 마음 가득 설레게 한다. 마스강의 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마을 구경은 역시 시청사가 있는  마르크트 광장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나있는 좁다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손꼽히는 도미니카넌 서점이 보인다. 아마 이곳을 모른 채 온 사람들이라면 감히 이곳이 서점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좌)암스테르담 중앙역 마스트리흐트 행 기차 ㅣ (우)마스강의 다리위에서


     도미니카넌 서점
800년 세월을 품고 있는 장대한 고딕 교회가 서점이 되었다.  


밖에서 영문을 모르고 지나치는 자들이 있다면 그저 이곳은 오래된 고풍스러운 교회이다. 하지만 도미니카넌이라고 쓰여있는 세련된 메탈 문을 빼꼼히 들여다보면 아주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 8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켜온 교회라는 특별한 공간에 수많은 이야기가 깃든 책들이 빼곡히 살아 숨 쉬고 있다니 이 공간에 있는 자체가 기도하는 느낌이다. 다른 서점보다 사람들은 더 고요하게 책에 집중하는 듯하다.  

 

처음 마주한 고딕 양식의 아치형 지붕과 저 멀리 보이는 중심의 스테인드글라스의 긴 창들이 공간을 압도한다. 오래된 공간을 그대로 살리고 사이사이 효율적으로 2층, 3층으로 서가를 배치한 아이디어가 놀랍기만 하다.  

도미니카넌 서점


도미니카넌 서점의 서가를 구석구석 다니다 보면, 신간과 오래된 고서의 사이에서 네덜란드어 책은 못 사도 영어책이라도 기념으로 꼭 한 권을 데려가고 싶어 진다. 한참을 돌아보다 특별 에디션으로 나온 북커버에 마음을 빼앗겨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담았다. 새로운 나라나 어느 지역에 여행을 가면 책을 사게 되는 습관이 있다. 그 책을 들 때마다 아름다운 공간과 그 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책은 어쩌면 나를 여행하게 하는 영감이자 그 여행을 기억하게 하는 아름다운 매개체일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이 불멸의 세계란 여행의 세계일 것이다. 독서란 그 어떤 여행보다 신비롭고도 경이롭다. 헤르만 헤세의 말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여행으로 타인의 존재와 사유를 만나고 그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책을 사랑할 것이다. 
- <세계서점기행> 중에서 
도미니카넌 서점 3층 서가 / Jane Austen <Pride and prejudice>


이 곳을 돌아보며 가장 부러운 점은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지혜를 담은 이곳 사람들의 태도와 생각이다. 오래되어 의미가 퇴색한 공간을 재탄생시켜 더 오래오래 이곳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참 멋지고  곱다. 재건축해야 속이 시원한 한국의 개발 문화는 이제는 경제적 관점보다는 역사적, 문화적, 환경적 관점에서 다시 다듬어져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점철된 생각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려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서점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에는 멋스러운 감각의 조명 아래 갤러리 같은 카페가 있다. 2층, 3층 서가에서 내려다보면 이곳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멋진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리가 없어 앉아보지는 못하고 나왔지만 이곳 공기를 한껏 마시고 나온 후 한껏 들떠있던 그때가 떠오른다. 언제 한 번 다시 가볼 수 있을까.. 

도미니카넌 서점의 고서와 까페

세상 곳곳에는 아름다운 순간이 숨어있다. 일상을 여행하듯 살다 보면 알게 되고, 여행을 일상처럼 걷다 보면 알게 된다. 그 말이 참 좋아, 따르고 싶은 인생 태도가 되었다. 서점을 나와 네덜란드 겨울의 찬 공기를 마시며 걷다 보니 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 손꼽히는 명장면을 만났다. 더없이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뭉게뭉게 커다란 비눗방울 그리고 파란 하늘과 그곳을 비추는 햇살의 조합이라면 그 누구도 눈의 땔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꿈이었을 비눗방울을 연신 뿜어주는 아저씨는 아이들의 신나는 모습에 더없이 행복했겠지? 그 모습을 다정하게 바라보던 나의 미소처럼.. 

마스트리흐트의 어느 작은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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