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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라 Chara Jul 01. 2024

[아무튼 번역] 영상 번역 강의를 수강했다.

출판 번역가의 새로운 도전.



나는 2012년에 번역가가 되었다. 전업은 아니었고 중국 대학에서 일하면서 부업 정도로 번역을 했다. 2013년 시나리오 번역을 하며 전업 번역가가 되었고, 그 후 5년간 각종 중국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를 번역하며 시나리오 전문 번역가의 삶을 살았다. 번역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 것 또한 그때의 일이다. 촉박한 드라마 촬영 일정에 맞춰 매일 드라마 대본 한 편씩(A4용지 25페이지)을 번역하며 그야말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출판 번역가로 전향한 건 사드 배치로 인해 한한령이 내려지면서다. 한한령으로 한중 합작 작품의 제작이 전면 보류 및 중단되었고 나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출판 번역가라는 꿈을 이룬 것도 그때의 일이다. 그 후로 일곱 권의 책을 옮겼고 현재 여덟 번째 책을 번역하고 있다.


크게는 시나리오 번역가-중국어 관련 책을 쓰는 저자-출판 번역가의 삶이었지만, 아주 가끔 영상 번역을 경험하기도 했다. 번역가 데뷔 이전에 혼자서 한국 모 그룹의 대만 예능 프로그램 자막을 만들거나 대륙 드라마를 번역하는 자막팀에서 활동한 것 등이 있었는데 모두 취미 활동이었다. 번역가로서 번역료를 받고 작업했던 것은 배우의 짤막한 인터뷰 영상이나 유명 인사의 다큐 영상 같은 것들이었는데 큰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가장 큰 작업이라면 최근에 감수를 맡았던 홍콩 영화 개봉작(양조위, 유덕화 주연의 <골드 핑거>). 





영상 번역 강의를 수강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려고 번역가로서 지나온 시간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더니 서론이 길었다. 간혹 경험은 했지만 깊이 경력을 쌓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영상 번역은 아직 내게 미지의 세계였다. 언젠가 깊이 해보고 싶었다. 취미로 했던 번역이나 시나리오/출판 번역가로 지나온 시간들 덕에 번역 연습은 어느 정도 되어 있었지만 '자막의 세계'는 낯설었다. 단순히 번역만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글자 수를 맞추고 안정된 형태를 갖춰야 하는 영상 번역가는 마치 '자막의 예술가' 같았다. 그 세계가 궁금해 영상 번역 강의를 알아보던 중 더라인 아카데미의 함혜숙 대표님이 지금 내 상황에 맞는 강의를 추천해 주셔서 바로 수강했다. (#내돈내산) 


강의 이름은 <영상번역 기초 이론>. 영어 번역가를 위한 강의라 기본적으로 '미드'를 기준으로 진행되지만 나는 '중드'를 대입하면서 적절하게 취사선택하며 들었다. 내게는 한없이 낯설고 새로운 영역인 '미드'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구체적이고 세세한 번역 방법보다 자막 프로그램을 어떻게 다루는지, 자막은 몇 글자로 맞춰야 하는지, 타임코드는 어떻게 찍고 스파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빠르게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자칭 '번역 덕후'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번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출판 번역이든 영상 번역이든 영역에 관계없이 번역은 그 자체로 언제나 설레고 즐거운 작업이다. 하지만 현재의 생활 패턴을 고려할 때 출판과 영상은 작업 형태의 차이가 뚜렷해서 강의를 들으며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육아와 병행하는 생활 패턴이나 매일 마감을 맞춰야 하는 작업 형태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현재의 나에게는 출판 쪽이 더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박산호 번역가님이 그러한 이유로 영상 번역에서 출판 번역으로 전향했듯이.) 


성급하게 결론짓지는 않으려 한다. 모든 일에는 그 일이 일어난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이 강의를 듣게 된 것에도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언젠가를 위해 지금 이 순간 끌리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그뿐이다.


새로운 영역을 배우는 건 언제나 즐겁다. 약 한 달간 낮밤으로 틈틈이 강의를 들으며 번역가 지망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초심을 되찾는 시간이자 다시금 감사함을 느꼈던 시간. 이제 강의에서 배운 대로 배경지식을 넓히고 다양한 장르에 익숙해지도록 또다시 틈틈이 보고 읽고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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