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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랍 애미 라이프 Sep 04. 2023

사라지지 않는 것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할머니 제사를 지내느라 모였다고 해서 영상 통화를 했습니다.

고국을 떠난 지 2년 반, 그 사이에 두 번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화면에서 보이는 고모들의 눈가에 진 주름에 그 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하지 못했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가슴으로 삼키고 즐거운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영상통화를 듣고 있던 아이들에게

"오늘 왕할머니 제삿날이라 가족들이 다 모였대."라고 설명해주니 아이들이

"제삿날이 뭐야?"라고 물어봅니다.

"응. 하늘나라에 잘 계시라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기도하는 거야."라고 설명해 주었지요.

 

통화를 끊자마자 첫째 아이가 갑자기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제 품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물으니  

"왕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하고 소리 내어 엉엉 웁니다.

저 또한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감추고 아이를 차분히 달래었습니다.


"엄마도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엄마도 아주 많이 슬펐어.

그런데 엄마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할머니라면 하늘에서 이렇게 우리를 살펴보고 계실 텐데

슬퍼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어.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이제는 아프지도 않고 마음껏 걷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는데

엄마가 계속 슬퍼하면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도 너무 슬퍼하실 것 같았어.

그래서 엄마는 슬퍼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어."라고 말하며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엄마 그럼 하늘나라에 있는 우리 고양이도 할머니가 만났겠네?" 라며 빙그레 웃음을 짓습니다.





아이가 할머니를 만난 것은 무려 2년도 더 된 일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사방이 막혀있던 시절을 포함 3년에 가까운 시간이었지요.

사실 저는 아이가 증조할머니를 기억조차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는 요양원 생활을 하고 계셨고 가끔 집에 놀러 오시거나 뵈러 갈 때에도 할머니는 옆에서 빙그레 웃음을 지으시며 아이를 바라보고 계셨지요. 어릴 때부터 울음도 많고 낯을 많이 가리던 아이들임에도 할머니를 보며 재롱을 부리고 할머니에게 곧잘 안겨 웃곤 했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가 보내는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감각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끔 만나는 증조할머니를 무척이나 따랐습니다.


할머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음에도 여전히 저와 제 가족들 곁에 남아 이렇게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건 휘발되어 날아가버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씨앗처럼 남아서 문득, 돌이켜보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살아갈 힘을 주는 그런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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