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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랍 애미 라이프 Aug 19. 2022

국제학교 인터내셔널데이 행사에 참여해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운 행사































































































국제학교 행사의 꽃은 인터내셔널 데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학년 말에 행사를 열고 학부모들과 함께 학교 꾸미기, 액티비티, 전통 음식을 준비합니다. 학부모들의 참여도만큼 아이들이 다채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열과 성을 다해 행사를 지원합니다. 


꽤 고된 일이기도 하지만 모두 즐겁게 행사에 참여합니다. 

아이들을 픽/드랍 할때 학부모들도 전통의상을 입고 오기도 하고, 자동차를 국기로 도배해서 퍼레이드를 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조국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행사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서 액티비티 아이디어를 내었는데, 행사 진행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습니다.



1. 영어


다른 엄마들은 원어민 혹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데, 내가 참여했다가 괜히 일에 방해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2.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 중 한 명은 반년이 넘도록 교실에 들어가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그렇다며... 울고불고 난리 법석을 부리다가 결국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들쳐 안고 들어가기 일쑤였지요.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인 건 나머지 한 명은 학교를 너~무 재밌게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


여하튼, 제가 교실에 나타나면 그 징징이가 저를 보고 울거나 난동을 부리지는 않을까... 행사 진행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반 대표 엄마에게 저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반 대표 엄마는 저와 같은 쌍둥이 엄마였기에 누구보다 저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쌍둥이 엄마들은 서로에 대해 동지의식이 있습니다. 전우애라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그런지 항상 저를 잘 도와주고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녀의 응원과 지원 덕분에 저는 용기를 내 보았습니다. 











행사 당일, 아이들을 곱게 한복으로 단장시키고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매번 인터내셔널데이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귀한 자산인 한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한복은 색감도 화려하고 원단이 고급스러워서 어디에서 눈에 띄는 힙한(?) 코스튬입니다. 

게다가 이곳 중동에서 십몇년전에 대 유행했던 대장금 덕분인지 풍부한 리액션을 동반한 칭찬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무지무지 더운 날의 한복이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인터내셔널데이를 시작하였습니다.

행사 진행은 무척이나 정신이 없었고 실수 투성이었지만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어찌 지내고 있는지를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일 아침 그렇게 울고 불고 하더니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에 두었던 새카만 응어리가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리고

미리 걱정하지 말고 해 볼 수 있는 일에는 일단 최선을 다해서 도전해봐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인들은 겸손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서 오히려 다가가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대지 말라는 문화(?)가 있어서 늘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의 단점을 크게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지요.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삶의 자세를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방인들이기에, 표현하지 않으면 오히려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보니, 무례하지만 않다면 어떤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오히려 저를 편하게 표현하는 트리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건 우린 모국어는 달라도 같은 마음 언어, 즉 진심이 통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내보는 작은 기회가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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