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이 되돌아오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왜 이 남자아이가 이런 왕자님 같은 옷을 입고 있는지 알아?"
"음~ 모르겠는데. 생일이야?"
"힌트를 줄게. 아이 표정을 봐봐. 생일 치고는 표정이 너무 안 좋지 않아?"
"흐음..."
나는 20년 전 이스탄불에서 우연히 만나 사진을 찍었던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상황을 더듬더듬 기억해 내려 애썼고 나의 튀르키예 친구는 눈가에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20여 년 전, 이스탄불은 타 유럽국가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하기 위해 거쳐 가던 경유지였다. 항공 스케줄 상 1박 2일을 머물렀어야 했음에도 같이 간 동기 중 그 누구도 튀르키예에 대해 알아보고 온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유럽 여행 가이드 북 구석에 작게 차지한 내용을 찢어서 손에 들고 다니며 발이 이끄는 대로 도시를 쏘다녔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날동안 준비 했던 다른 유럽 도시들을 제치고 이스탄불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남아있다. 청량하고 맑은 날씨, 길가의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먹어도 훌륭했던 음식 그리고 배낭 여행객에게 감사할 정도로 저렴했던 물가. 하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의 사람들이었다.
모스크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지도 한 장 들고 용감하게 나다니던 우리는 보기 좋게 길을 잃고 말았다. 결국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묵던 숙소가 유난히 작아서 그런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길 가던 행인은 지나가던 행인을 불러 세우고 그 행인은 또 그 옆의 행인을 불러 세워 물어보기 시작하자 어느새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숙소의 위치를 찾게 되었다.
어딜 가나 친절하고 우리를 환대해 주던 튀르키예를 떠나 시작된 유럽여행은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동유럽의 어느 기차 매표소 직원은 '아시안에게는 표를 안 판다'며 창구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리기도 했다. 나와 동기들은 마른 바게트에 고추장을 발라 먹으며 여행 내내 튀르키예를 그리워했다.
아부다비에서 만난 튀르키예 친구와 대화를 할 때면 우리는 너무나 비슷한 서로의 문화에 놀라고는 한다. 그녀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아이의 성별을 추측해 보다가 자연스레 남아선호사상으로 주제가 흘러갔다. 딸쌍둥이를 키우는 나를 붙잡고 ‘아이고, 이제 아들 하나 낳아야지. 아들 쌍둥이 낳으면 되겠네.‘ 하며 빅 오지랖을 선사하시는 한국 할머니들에 관한 이야기에 그녀는 박장대소를 하며 터키도 마찬가지란다. 딸 부잣집의 경우 아들을 바라는 마음으로 딸의 이름을 '도네'라고 짓는 경우가 있는데 ‘도네'란 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튀르키예 말이라고 한다. 여아 이름으로 예쁘지도, 의미도 없는 이름을 짓는 다고 하니 우리도 옛 시절 딸아이의 이름을 남자이름으로 짓는 것과 유사한 풍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튀르키예 친구는 나의 이스탄불 여행기를 들을 때 종종 슬픈 표정을 짓곤 한다. 최근의 튀르키예의 경제와 문화가 급속도로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국의 미쳐버린 물가와 치안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등으로부터 난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는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위협이 되었다고 한다. 성에 대한 인식이 구시대적(이다 못해 처참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함부로 터키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성적인 희롱을 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여성들이 밤에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치안이 나빠졌다고 하니 한숨이 나올 정도로 슬픈 소식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튀르키예 국민들은 1년에 두 배 가까이 오르는 물가와 싸우고 있는 데 옆나라 그리스 사람들은 오히려 물가가 싸다며 장을 보러 온다고 한다. 자국의 통화인 리라로는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달러나 유로를 받을 수 있는 관광 서비스 업으로 직업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 2월 6일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튀르키예로부터 전해져 왔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는 그 모습을 미디어로 볼 때마다 내가 만났던 따뜻했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사진 속 왕자님 옷을 입고 있던 이 아이처럼 말이다.
나의 튀르키예 친구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정답을 알려줬다.
"그날은 아이가 고래를 잡은 날이야."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시 한번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 그래서... 표정이 어둡구나.... 그런데 왜 이런 옷을 입고 있는 거야?"
이슬람 율법에 따라 튀르키예에서는 남자아이들이 할례를 하는 풍습이 있고 이는 이슬람 사회에의 진입을 알리는 중요한 관례라고 한다. 아이는 오스만 튀르크 의상을 입고 모스크에 방문하거나 가족들과 파티를 하며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행사라고. 그런 의미 있는 날이었던 것을 20년이 지난 이제야 알았다.
아부다비에서도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구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적십자와 같은 인도주의 단체인 레드 크레센트가 주도하여 구호물자를 모아서 구호 현장에 보내고 있고 마트나 몰 등에서 이러한 구호 물품 수거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