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같이 할 사람 여기 붙어라~
40대 중반인 내가 어렸을 적 무엇을 할 때나 아니면 어디를 갈때나..누군가 나와 뜻을 같이 할 때 했던 말이다. 이 말을 하면서 무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앞으로 내밀면..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내 엄지손가락을 쥐어 잡고 본인의 손가락을 다시 치켜세웠다. 그러면 뜻을 같이하는 또 다른 사람도 엄지손가락을 잡으며 점점 높아지는 형태로 사람이 모여졌다.
요즘은 어떤가. 요즘은 핸드폰만 있으면 된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카카오톡 단톡방을 파면되고, 모르는 사람끼리는 소모임 어플을 깔아 사람을 모으면 된다.
형태가 달라졌지만 이러한 행위를 하는 기저의 가치는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한 단어로 설명하면 공감 즉 누군가의 의견, 생각 등에 자신도 그러한 생각 혹은 감정을 갖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사실 공감은 인간의 인생에 다양한 형태로 녹아서 우리의 인생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사회로 보면 여론, 조직으로 보면 라인, 개인으로 보면 니편 내편..가뜩이나 소규모 중심의 사회, 개인중심의 사회가 팽배하다 못해 고착화되어있는 요즘에는 공감을 형성하는 공감대가 인생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나도 직장인의 삶을 살아왔지만, 중간중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사수의 짓눌림, 조직 환경의 숨 막힘,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나의 자괴감..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정말 관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으니..이직 사이트를 하루에도 수십번 뒤적이면서 보내고 있던 찰나에..'퇴사'라는 키워드를 쳐서 보게 된 어느 사이트의 게시판 글이 있었다.
유명 사이트의 한 카테고리에 올라온 글인데 금융기관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 본인 직장에서 느끼는 괴로움과 이직을 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글로, 말 그대로 신세한탄하는 글이었다.
나도 처음엔 가볍게 읽었다..'그렇지..너도 참 직장생활 괴롭겠구나' 내가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었다. 그 글을 읽고 작은 마음의 공감대가 형성된 거 같았다. 글을 일고 그 글에 달린 리플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부터였다.
'뭐지 이 위로되는 마음은'
난 그냥 리플을 읽은것 뿐이었다..리플은 대부분 현재 본인들이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느끼는 괴로움, 그러한 괴로움을 느끼는 이유, 퇴사 혹은 이직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과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에 대해 묻는 질문 등 회사 및 사연은 당연했지만 대부분 비슷한 글의 구조였다.
그리고 글 사이사이 자기의 사연을 쓰고 이미 퇴사를 마음먹은 다짐의 글과 그 다짐을 응원하는 말도 있었다.
난 그 리플들을 읽으면서 어느새 나의 괴로움은 잠시나마 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비슷한 상황에 있고 괴로움을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위안을 얻고 있었다.
사실 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 사람의 감정을 잘 읽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 때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을 오롯이 표현하고 어루만져주기를 부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의 연약함을 표현하면 도태될 거 같은 본능 같은 것을 갖고 있기 때문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가 단순히 각자 자신의 괴로움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비슷한 상황임을 표한하는 짧은 리플들을 보고 위로의 감정이 들었다는 게 난 조금 놀라웠다.
어느 순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류의 역사가 무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모든 동물들은 무리를 지어서 생활했고 그 속에서 안정적인 삶과 함께 진화해 온 영향이 있지 않나 싶었다. 그냥 도와주기 이전에 너와 같은 무리의 한 사람이라고 표현해 주는 사람이 주변이 있는 것 자체로도 안정감이 드는 느낌인 것 같았다.
공감대를 형성하고 같은 공감대를 갖고 있는 사람은 편안함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대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어찌해야 하나? 배타적으로 대해야 할까? 물론 서로의 생존이 갈리는 문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안될 경우 서로 싸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에 대한 다른 의견의 사람들은 내 경험상 그들의 의견을 잘 들어보고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왜냐? 내 감정 내 의견이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의견이나 감정을 생각해 보고 자아성찰을 해보면 좀 더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도 할 수 있고 다른 의견 및 감정에 대한 간접 이입을 할 수도 있다.
사실 공감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느껴지고 이뤄져야 하는 감정인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부모와의 공감, 친구와의 공감, 성인이 되어서는 동료와의 공감, 배우자와의 공감, 조금 더 구분해서 나이 들고 장년 노년이 되어서는 내 자식과의 공감, 주변인들과의 공감.. 죽을 때까지 느껴야 하는 공감이 없다면 아마도 외로움에 사무쳐서 쓸쓸히 지내다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시대의 사회는 공감을 받을 수도 해줄 수도 있는 좋은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예전처럼 핸드폰이 귀했던 시기도 아니고, 단순히 작은 공간에 머물러서 삼삼오오 무리활동만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어플하나 깔고 "~ 같이 하실 분", " 이런 생각 어때요?" 글 올려놓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의견교환하고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개인중심의 각박한 사회인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구성하는 대부분은 제약이 있다. 시간, 돈, 건강, 육체 등.. 다만 제약이 없는 것도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마음 씀씀이다. 물론 각박한 세상을 사는데 먹고사는 거 빼고 다른데 쓸 마음씀씀이는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이해한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그럴 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을 하고 마음을 먹을 수는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작은 위로 혹은 작은 감정에 작게나마 표현할 수는 있을 것이다. 돈이 들 수도 있지만 안 들게 할 수도 있다. 작은 마음의 여유,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될 것이다. 설령 표현 안 해도 된다. 그저 작게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고.. 조금 힘이 더 난다면 표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