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임신 소식에 달뜬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나니 슬며시 불안 초조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1차 피검 수치가 1000이 넘는다지만 한편으론 '혹시 수치가 너무 높아서 생기는 문제는 없을까?', '뭔가 다른 이상이 있는 걸까?' 걱정되었다. 원래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매일 누워 지내며 임신 생각만 하니 사람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부정확한 정보들은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가능한 한 빨리 2차 피검 날짜를 잡고 또 며칠을 가슴 졸이며 보냈다. 온정신을 아랫배에만 집중하다 보니 배가 싸르르 아픈 것도 같기도 하고, 골반이 뻐근한 느낌도 들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골반이 더 아파졌다. 기다리던 2차 혈액검사 날,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시작한 주치의는 골반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금세 표정이 달라졌다. 그리곤 당장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다. 아기가 자궁에 제대로 착상되지 못한 자궁외 임신의 경우에도 피검 수치는 높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서 와요, 쌍둥이 엄마?!
초음파 검사는 주치의가 아닌 초음파 검사 전문 선생님이 진행하는데 몇 발자국 안 되는 검사실로 가는 발걸음을 얼마나 종종거렸는지...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이 선생님들은 딱 보면 다 알 텐데 정말 과묵하다. 뭔가 물어도 진료실에서 확인하라고 답할 뿐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이 날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검사실 안에선 조용히 초음파 기계만 윙윙거릴 뿐 나도 그녀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검사 끝났습니다. 내려오세요." 침묵을 깨는 소리에 의자에서 내려와 주섬주섬 신발을 챙겨 신는 나에게 그녀가 뭔가를 건넸다. 지금껏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작은 종이, 초음파 사진이었다. "이게 뭔가요? 벌써 뭐가 보이나요?". 역시나 자세한 건 진료실에서 들으란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남편에게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보니 내 자궁에 화살표 두 개가 나란히 표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굳이 진료실까지 가지 않아도 뭔가 느낌이 왔다. 앗! 아기집이 둘? 어머나, 혹시, 설마, 세상에, 쌍둥이?! 임신 3주 3일이었다. 걱정 많은 나를 위로하듯 두 아기가 벌써 아기집을 짓고 자신들의 존재를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들은 말은 "어서 와요, 쌍둥이 엄마!" 쌍둥이 엄마라니... 내가...? 평생 내가 쌍둥이 엄마가 되리란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심지어 쌍둥이 임신이 흔하다는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도 쌍둥이는 그저 남의 일로만 여겨왔다. 그래서인지 병원을 나설 때까지 얼떨떨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뒤늦게 흥분한 남편과 나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쌍둥이 임신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눴다. 그때만 해도 우린 아무것도 몰랐다. 쌍둥이 임신과 출산이 어떤 일인지, 쌍둥이 육아는 또 어떤 일인지를 말이다. 7년 간 육아잡지 에디터로 일하며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나름 어느 정도 예습했다고 생각했지만, 알면 알수록 쌍둥이 임신은 일반적인 단태아 임신과는 전혀 다른 과정이었고, 출산은 예측불허였으며, 육아는 알려진 바도 거의 없는 신세계였다. 7년 예습이 다 소용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쌍둥이 임신 소식을 듣고 돌아온 후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실감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쌍둥이를 키우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살면서 건너 건너 한 번은 만났을 법한 쌍둥이 친구도 없다. 육아잡지에서 일하며 임신 출산 육아에 관해 굵직한 주제는 다 다뤄봤지만 쌍둥이 칼럼은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다. 사실 육아잡지에서 쌍둥이에 관한 내용은 1년에 한 번이나 다룰까 싶을 만큼 비주류다. 대다수의 독자는 단태아 부모들이니까. 그런데 내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보니 육아잡지뿐 아니라 육아서적, 임신 출산 육아백과 등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단태아를 기준으로 한 내용이 대부분, 쌍둥이에 관한 내용은 극히 일부였다. 그나마도 아주 기본적인 내용뿐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그간의 상식은 잊어요. 쌍둥이니까요.
쌍둥이를 임신하고, 심지어 키우면서도 틈틈이 일상과 경험을 기록하는 대단한 쌍둥이 엄마들의 블로그를 들락거리며 얻은 결론은 '쌍둥이 임신은 단태아 임신과 분명히 다르다, 그러니 기존의 상식은 모두 잊고 원점에서 시작하자!'였다. 계획임신을 하고, 임신 중엔 열심히 요가와 운동을 하고, 태교 여행도 가고, 화보 같은 만삭 사진도 찍고, 출산은 (자연분만도 아닌 심지어) 자연 출산으로 하겠다고 결혼 전부터 혼자 미리 짜 놓은 계획은 이미 첫 단계부터 어긋났지만, 일단 임신만 성공하면 그다음부턴 '계획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찾은 모든 정보들은 '넌 그럴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쌍둥이 임신부에겐 안 되는 일도 많고 조심해야 하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삭은 40주가 아닌 37주로 보는데 그마저도 못 채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조산의 위험이 높아서 단태아 임신부에게 권장되는 산책이나 운동도 쌍둥이 임신부에겐 위험한 일이 되곤 한다. 태교 여행도 애초에 포기하는 게 좋다. 출산은 제왕절개가 상식, 자연 분만은 운이 좋은 경우에만 시도할 수 있다. 임신은 분명 낯설고 힘든 경험이지만 또 이때만 누릴 수 있는 재미와 행복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배 속에 아이가 두 명이란 이유로 나는 그 대부분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나마 원 없이 할 수 있는 건 삼시세끼 잘 챙겨 먹는 일뿐이었다. 병원에서도 초기부터 미리미리 살을 찌우라고 압박받았고, 두 배로 입덧하느라 고생한다는 보통의 쌍둥이 임신부들과 달리 난 입덧도 거의 없었다. 또 임신 준비 기간이 본의 아니게 길었던 탓에 건강하게 잘 먹는 건 이미 내 삶의 키워드였다. 수십 년 소식과 채식에 길들여진 내 몸엔 미안했지만 태아에게 중요하다는 단백질 위주로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춰 하루 세 끼와 두 번의 간식을 부지런히 챙겨 먹기 시작했다. 쌍둥이라고 두 배로 먹을 필요는 없었지만 먹는 것이 나의 가장 주요한 임무이자 일과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먹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1, 2차 기형아 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난임 병원을 '졸업'할 때(임신 16주였다)까지도 쌍둥이 예비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완성하지 못했다. 초음파 영상으로 두 태아가 천사처럼 팔다리를 움직이는 모습도 보았고, 내 배에서 같은 듯 다른 두 개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지만 여전히 나는 쌍둥이를 임신한 사실이 얼떨떨했다. 사실 출산 후 내 앞에 누워 있는 두 아이를 보면서도 '이게 정녕 현실인가' 싶었던 적이 있으니, 임신 기간엔 수시로 비현실감에 사로잡혀 지냈다고 봐야겠다.
시험관 시술 한 번만에 임신한 것 자체가 대단한 행운이고, 임신 초반부터 중반까진 그 흔한 입덧도 거의 없다 할 만큼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우리 부부를 제외한 모든 주변인들이 궁금해 한 아이들의 성별이 남매임을 알게 되었고, 그만으로도 많은 축하를 받았다. 지도교수님의 독려로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고 무사히 예심과 본심을 통과해 임신 중 또 하나의 '졸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순조로웠던 임신의 기억은 거기까지다. 논문을 완성해 학교 도서관에 제출하는 날, 기막힌 타이밍으로 난 첫 입원 생활을 시작했다. 임신 29주, 아직 한참을 더 버텨야 하는 때였다. 진정 비현실적인 임신 생활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