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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Jul 03. 2020

지인 영업 - 제가 홈런볼로 보이세요?

사람 쉽게 보지 맙시다

20대 초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고,

내 존재의 가치와 근본을 알게 되니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신 듯 개운했다.


사이다가 너무 시원하고 개운해서

친한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내 얘기를 들은 한 친구는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말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또 다른 친구는 당황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었고,

그 후 연락이 끊어졌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내 방법은 잘못됐었다.


나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없이

나는 상대방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사람 사이의 민감해서 웬만하면 피하는 얘기가

'종교, 정치, 가족'에 대한 주제라는 데...

나는 민감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건드렸다.


마치 내 꼴은 이랬다. 친구에게 맛집을 소개해주며 맛있는 음식을 시키고 사진도 찍고 향도 맞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게 해 준 게 아니라, 배고프지도 않은 사람에게 배고플 거라면서 비린내 나는 날생선을 급히 내놓듯이 했던 것이다.


그 사람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막무가내 20대 초반의 열혈 신자일 뿐이었다.


지금도 연락하는 한 친구는 최근에 그때 내가 했던 얘기를 다시 들려줬는데 내가 들어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 당시 잘못 이해하고 전한 것들도 많았다.


내 잘못을 깨닫게 된 이유는

바로 지인 영업의 대상이 돼서야 알게 됐다.


2~3년 알고 지낸 지인들이 내가 사회인이 되고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자 건강식품이나 보험을 권하기 시작했다.


내가 25살 간호사를 시작했을때 태움 문화에 우울해할 때 한 가정주부 언니는 내가 체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건강식품을 소개해줬다.


건강의 중요성과 자신의 지인이 학벌도 직업도 좋았는데 지병으로 일찍 죽은 것을 얘기하면서 은근하게 불안심리를 자극하며 강요했다.


나는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이야깃거리 중에 하나라고 여기고 넘어갔는데 2~3차례 만남이나 전화상으로 또 나의 불안심리를 건드렸다.


화가 나서 전화상으로 나를 저주라도 하는 거냐며 소리치기도 했지만 후에는 어떻게 너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을 그렇게 대하느냐는 소리를 들었고, 힘들어할 때 도와준 것도 모르냐 얘기하기에

나는 사과하고 숙여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건강식품에 70만 원이라는 돈을 썼다. 효과는 전혀 없었다. 6개월 만에 퇴사하고 이직해서야 우울함이 나아졌고, 그 약들은 거의 안 먹고 버렸다.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언니의 건강에 대한 설교를 들은 장소가 버거집이었다. 건강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버거집이 맛있다며 나를 데려간 것이었다. 말은 속일 수 있지만 행동은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싶다.


28세에는 그 언니가 미용제품을 소개해줬다. 내가 호르몬 불균형으로 다낭성 난소질환이 있어 탈모증세가 심하게 왔을 때였다. 물론 27세 때 탈색도 하고 염색을 4차례 강하게 했어서 두피가 상한 이유도 있었다.


그 언니가 소개해준 샴푸는 진짜 효과가 있었다.

그건 지금도 인터넷으로 따로 구매해서 쓰고 있다.

문제는... 그 언니에게 소개해준 제품이 효과가 있다고 했더니 이제는 만나기만 하면 제품 설명을 했다. 저번에 한 2시간을 만났는데 내 안부를 묻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뜬금없이 제품 설명을 쭉 하더니 '우리 무슨 얘기했었지?' 했다.


그리고 내가 다낭성 난소질환을 치료하려고 호르몬제 먹는 게 안쓰럽다면서 한 사람을 소개해준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거부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그런데도 그 사람과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했다. 그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몇 개월 후 그 언니와 만나서 근황을 얘기하다가 그 언니가 소개해줬던 샴푸를 개인적으로  인터넷에서 주문해 쓰고 있다고 말하니 언성을 높여 화를 냈다. "너는 내가 어려울 때는 한 번도 뒤돌아 본 적 없지!?" 당황하고 황당했다. 마침 헤어지는 길에 얘기하던 거라 죄송하다고 하고 갈 길을 갔다.


집에 오자 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분이 안 풀렸는지 소리 지르며 화를 냈고 전화기 넘어 들리는 고함에 우리 엄마가 내게 "누구야! 무슨 일인데 그래!" 하는 순간 급히 끊을 수 있었다. 전화를 마치고 그 언니에게 카톡이 왔는데 놀랍게도..... 제품 설명서였다.


순간 그 언니와 나의 사람다운 인연은 끝인 걸 깨달았다. 언니에게 문자가 오면 답장은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은 저절로 안 하는 사이가 됐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야 내가 내 친구들에게 했던 행동이 얼마나 무례한지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신혼 축하 선물을 계속 못주고 있다며 지나가는 길에 집에 들려주겠다고 했었다. 내가 3교대 근무라 잠을 못 자서 다음에 밖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선물만 주고 가겠다고 했다. 피곤에 쩔어있는 나에게 그분은 남편을 들어 이렇게 설명했다. "남자들은 가장인데 어떤 일 생길지도 몰라. 내가 아는 누구도 애가 둘인데 갑자기 남편이 사고로 지병으로 죽었다."보험을 팔려고 온 것이었다.. 신혼 선물이 아니라 신혼 저주를 하러 온 것 같았다. 사람마다 생각 차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나는 그랬다.


일단 보험에 대해 설계해주고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약속당일에 내가 그 약속을 깼다. 그 전날까지 만나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분이나 혹은 내가 화를 내며 얼굴 붉힐 일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후에 알게 된 건 내게 제품 판매를 했던 가정주부 언니네 남편은 억대 연봉자였다. 지금도 투기과열지구 아파트를 사서 고, 아이들 사교육도 예체능과 공부를 빵빵하게 가르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분은... 경제문제가 있어 간절함에 그럴 수는 있지만...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설명해줬더라면.. 좀 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만남의 때와 장소를 정했다면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로인해 내게 남은 생각은 '내가 홈런볼로 보였나? 쉽게 보이고 한방 제대로 먹여가지고 홈런 쳐서 본인들의 물주가 되어주길 바랬나?'이 것이었다.


지금은 웬만해서는 지인들과 경제적인 문제로 얽히지 않으려고 한다. 아는 언니가 카드 만들어서 사용 안 하고 5개월만 유지해달라고 했을 때도 어렵지만 거절했다. 서로 간에 의가 상해 싫다고 했다.


이제는 내가 상대방에게 의견제시를 할때

의도는 나쁘지 않더라도

표현이 지나칠 때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조심하려고 한다.


그 언니나 지인분도 내게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현법이 긍정적었다면,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줬더라면 좀 더 다른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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