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계하다_토사구팽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을 때 버린다
얼마 전 한 친구와 동업에 대한 얘기로 새벽까지 통화했다. 그 친구는 나의 장점을 생각해서 나와 동업을 하고 싶지만, 한편으로 걱정되는 것이 나의 욱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내가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첫인상도 좋은데
혼자 마음에 쌓아두다가 폭발하거나 욱한다고 했다.
내가 그럴 때면 친구는 "얘가 갑자기 왜 그러지?"
하면서 배신감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같이 다니던 무리 중
한 친구와 내 사이가 틀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나는 그 친구가 같은 직장에서 일할 때 마주쳐도 인사를 안 해서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 통화하던 친구는
"OO이가 그전부터 맘이 상한 게 있던 건 아닐까?"
"네가 말한 이유 그 이전에 맘이 상한 게 있던 건 아닐까?"
상대편만 드는 건가 싶은 욱하는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하지만 그 말들이 이틀 동안 내 곁을 맴돌았다.
곰곰이 나와 틀어진 그 친구와의 일들을 되짚어 봤다.
나는 그 친구에게 항상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봐도 아는 척이나 인사를 잘 안 한다.
-내가 말하면 그 친구는 대답을 안 하는 일들이 많았다.
-내가 말하면 그 친구는 다른 곳을 보며 멍 때리거나,
무표정이었지만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나보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건 그동안 내가 감정적으로 해석한 그 친구의 행동이었다. 이번에는 이성적으로 팩트체크(사실 확인)를 해봤다.
-그 친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잘 안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시작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인사를 왜 안 하는지 묻지 않았다. 나를 정말 무시해서 그런지 묻지 않았다.
-나는 빤히 답이 있는 데도 친구에게 질문을 했던 게 많았다. 혼잣말인지 상대에게 하는 말인지 헷갈리게도 했었다.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들었던 것들도 많았다.
-그 친구에게 다른 사람 험담을 많이 했었다. 그 후 그 친구는 내 앞에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그 친구와 약속이 있는데, 그 이후 약속을 하나 더 잡아 감정을 상하게 했던 것
-같이 자취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따로 살자고 했던 것
그 친구가 정말 매 순간 나를 무시했던 건 아니다.
내가 그 친구에게 실수하기 이전에는 좋은 추억들이 더 많았다. 내가 그 친구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행동 실수도 말실수도 많이도 했다.
나를 사회생활로 만났다면 손절하고 싶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직장이나 친구 모임이 있어서
나를 그 정도로라도 대해 준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니 내가 거리를 두고 있는 투석환자와 내 모습이 떠올랐다. 투석환자가 나라면, 나는 그 친구 입장으로 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재활병원에서 투석을 받고 있는 한 남자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평소에 목소리도 좋고 젠틀하게 말하는 것 같으나, 갑자기 욱하며 소리쳐 말할 때가 있다.
잘 지내보려고 다정하게 대하고 친절하게 해 봤으나, 투석실 막내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에게만 꼭 언성을 높이는 그 환자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
옆에 환자 혈압을 재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본인이 갑자기 욱하고 "왜 이렇게 혈압을 많이 재요!?"소리치는데 어이가 없었다.
내가 "본인 잰 것도 아니고 옆에 분 잰 거예요. 진작 말로 하시면 되지 사람 당황스럽게 소리치며 얘기하세요."라고 선을 그었다.
그 환자가 개흉술로 심장에 괴사 된 부분을 벗기고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1시간마다 혈압을 재고 있었다. 일반 투석환자는 30분마다 혈압을 재는데 환자가 워낙 혈압 재기를 팔뚝이 아프다고 해서 1시간마다 잰 것이다.
투석하다 보면 혈압이 급 하강할 때도 있어서 주의하며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그 환자는 본인 입장만 내세우며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본인 몸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고 이런저런 실험도 해봤다며 얘기하는 데 더 이상 그 사람과 말하기가 싫었다.
또 한 사건은 지금이 코로나 때이기는 하나 병원 허가하에 의식이 없는 외래 투석환자가 두 명의 보호자와 투석실에 왔었을 때였다. 침상으로 환자를 옮겨야 하는데 혼자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수선생님과 윗년차 선배 앞에서는 조용하더니, 내가 그 환자의 침상을 지나가고 있을 때 또 언성을 높이면서 "코로나인데 보호자가 2명이나 들어와요!? 나 코로나 걸리면 어쩔 건데!" 하며 소리치는데 정말 화가 났었다.
'또 저 인간이 나한테만 저러는구나.'싶었다. 바로 옆 침대에서 듣고 있는 보호자들도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병원 허락받고 온 거예요."라고 그 환자에게 딱 잘라 말해줬다.
그 남자 환자도 사정은 있었다. 심장수술로 인해서 투석할 때도 산소를 쓰고 있었고, 코로나 때 예외적으로 마스크를 쓰면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민했던 거라고 한다.
그러면 수선생님이나 윗년차 선배한테 물어보시지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면 갑자기 언성을 높일까 생각했다.
그 이후 그 남자 환자를 대할 때는 농담을 건네도 예의상 대답할 뿐 반응하지 않고, 그 환자가 어떤 주제로 대화를 걸면 단답형으로 말하며 거리를 두고 있다.
거리를 두니 예전보다 감정 소비할 부분들이 훨씬 줄었다. 딱 할 일만 하고 더 이상의 교류는 없다.
동업하자는 친구와의 대화, 관계가 틀어진 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투석환자를 거울 삼아 꼬여버린 나를 발견했다.
꼬이고 꼬인 나를 어디부터 풀어가야 할지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성향과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이 말이 딱 떠올랐다.
토사구팽 [兎死狗烹]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출처: Daum)
지난날 내 삶을 뒤돌아보면
본능적으로 나는 사람들을 토사구팽으로 대했다.
그게 내 인생의 철학인 것 마냥 그랬다.
특히 중학교 1학년 때는 같이 다니는 친구를 종종 바꿨고,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 때 절친을 맺은 친구와 절교했었고, 그 절친의 소중함을 깨닫고 화해했으나 대학생 때 학과 생활로 바쁘다는 이유로 그 친구를 홀대했다.
호감 가고 잘 보이고 싶은 친구에게 인상 좋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고분고분 상대와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본성을 계속 숨길 수는 없었나 보다.
친구를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은 듯 대했다. 상대에게 원하는 만큼의 반응을 받지 못하면 서운해했고, 그 서운함을 내면 속의 보복성으로 키워갔다.
다 큰 성인이 어린아이 마냥 칭얼거리며 귀찮게 굴듯이
상대에게 귀찮은 일들을 만들거나, 묘하게 기분 나쁘게
굴거나,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나를 떠나간,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이런 내 모습에 지쳐갔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이런 성향을 소시오패스로 정의하고 있었다. 상대를 잘 대하는 척 하나, 상대의 단물을 빨고 버리는 인간 상대를 이용해 먹는 인간.
내가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나를 바꿔갈 수 있을까 방법론을 찾게 됐다.
-의식적으로라도 마음의 고개를 숙이기
-상대를 존중하기, 상대를 만만하게 보지 않기
-착하다고 하면 저도 한 성깔 하는 면이 있다고 알려주기
-한 성깔 하는 면도 욱해서 상대에게 말로 칼을 내리꽂듯 표출하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차분히 얘기할 수 있도록 심호흡하며 마음 가다듬기
-바쁠 때는 말 못 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상대와 대화해보기
-내가 느낀 감정대로 상대의 행동을 결론짓지 말고 팩트 체크하기
-고분고분 모든 부탁을 들어주지 말고 거절할 때는 거절해서 의사표현 연습하기
장점이 많은 데 단점이 커서 쓰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생에서 장점은 더 개발하고 단점도 고치고 개발해 변화되고 싶다.
내가 인생을 사는 이유는 사람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컸다. 늘 마음속 깊은 곳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부터가 정말 사람이 돼야 한다.
더 뇌가 굳고 몸이 굳기 전에 변화를 이루어 내 이상대로 다정하고 지혜롭고 긍휼 한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토사구팽 하는 나를 경계하자.
사람이 귀한 것을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