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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Aug 04. 2021

살아있을 때 물 한 잔이라도 더 줄 수 있다면

먼 미래의 내가 지금의 엄마를 만난다면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냥 아무 일 없다 치고

순리적으로 따져본다면

나보다는 먼저 온 이들이 먼저 가지 않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는 흔적을 남기고 간다 하더라도

죽은 자에게 속시원히 어떤 얘기를 물을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다.

.

.

.

중학교 2학년 때 사춘기에 흠뻑 젖어있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와 시장 갔다가 집에 가는 길,

신호등에 서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언젠가는 외할머니도 떠나시겠네?"

인간의 필연적인 유한한 수명과 운명에 눈물이 났다.

외할머니와 관계성이 그리 깊지도 않고,

명절 때 잠깐 보던 사이었는데 말이다..


그 당시

나도 언젠가는 우리 엄마를

보내줘야 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2년 뒤 내가 고1 때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본 우리 엄마는 꽤나 담담해 보였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동생에게 들은 말로는 내가 외할머니 장례식장에 오기 전에

엄마가 그리도 오랫동안 슬피 울었다고 했다...

.

.

.

지금의 나는 30대, 우리 엄마는 60대.

엄마가 그 언젠가 떠나기 전에 대화해보고 싶다.


주제는 다양하겠지만.. 첫 시작은 원망일 것 같다.

"그때는 왜 그러셨어요?" 하면서 말이다.


이유를 듣고 싶은 일들이 많다.

이유를 들으면 엄마가 이해될 것 같다.


사과를 받고 싶은 일들도 있다.

내 마음속 엄마에 대한 아픈 응어리들을 다 풀고 싶다.


나와 동생을 위해 헌신했던 엄마를

인생 엉망진창으로 살았던 여자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오해를 풀고 싶어서.


나를 사랑해주고 위해줬던 엄마를

내 인생을 아프게 만든 장본인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끝은 감사와 미안하다는 얘기를 할 것 같다.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준 것에 대해,

한 여자로서 지기 버거운 인생의 무게를 견뎌준 것에 대해,

엄마의 속사정을 모르고 막말하며 상처 줬던 것에 대해..

생각도 나지 않는 나의 아득한 아기 시절

어르고 달래고 먹이며 사랑해주고 보듬어준 그 시간에 대해


엄마와 그런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그날이 오기 전에.


마치 먼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에 와서

그리웠던 엄마를 만나 대화하듯이..

그런 순간이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정말 후회하기 전에..


어른들이 하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닐 때가 많다.

죽은 뒤 제사 지내면 뭐하냐

살아 있을 때 물이라도 한 잔 더 떠다 주는 게 낫지.


살아 있을 때 한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나눌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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