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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Nov 29. 2021

셋이서 나란히 눕던 날이 가끔 그립다

엄마 아빠 나

고된 하루를 마치고 셋이서 나란히 누웠다.

나 - 아기 - 남편


이렇게 셋이 나란히 누울 때면

아득한 저 옛날이 아른아른 눈물 사이로 떠올라 떨어진다.

엄마하고 아빠와 나란히 누워 잠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을 느꼈다.


키 크고 힘이 센 아빠와

포근하고 따뜻한 엄마 옆에 누우면

까만 밤이 무섭지 않았다.


창밖에 쌩쌩 울리는

오토바이 경적소리도 내 단잠을 쫓지 못했다.

엄마 - 나 - 아빠 이렇게 셋이 나란히 누워 잘 때면

그저 안도감이 들면서

이 두 사람과 영원히 함께이길 바라며

행복한 단꿈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꿈은 다섯 살 인생에 와장창 깨졌다.


반지하방 월세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는지..

내 다섯 살 인생 여름의 어느 날, 내 동생이 태어난 그 해

엄마는 아빠에게 돈을 벌어오라 소리쳤고,

도박으로 살림을 꾸리던 아빠는 그렇게 집을 나갔다.


일곱 살 때까지 아주 가끔 한두 번

아빠를 만나러 간 날에는 엄마와 나와 어린 동생과

집이 아닌 바깥 한강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어두운 밤 한강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헤어질 때는 아빠는 절대 집으로 함께 가지 않았다.

대신 아빠는 나에게 늘 과자세트를 선물했었다.

1995년 나에게는 과자세트가 꽤  비싼 선물이었다.


그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빠가 사준 과자세트를 먹었었다.

아빠가 옆에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나중에 엄마에게 듣고 보니 

그 당시 아빠가 그렇게 오고 간 것은

돈을 빌리려 했던 것이란다.


그 후 오랜 시간 아빠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엄마 - 나 - 아빠 이렇게 나란히 눕던 자리가 변했버렸다.
나 - 동생 - 엄마 이렇게 셋이 나란히 누워 잤었다.


까만 밤이 나를 삼켜버릴까 봐 무서워서 잠이 안 왔다.

파란 새벽은 시리고 차갑고 외로웠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남몰래 울다 잤었다.


셋은 셋인데 그 전과 너무 다른 셋이라

그게 현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때가 많았던 때였다.


아빠가 가출한 지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빠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의 스타일은 너무 달랐다.

나도 아빠도 우리 가족도 예전 같을 수는 없었다.

어떤 좋지 않은 이유로 결국 엄마와 합의 이혼을 했다.


나도 아빠와 인연을 끊었다.

.

.

.

.

지금은 아니지만 허무맹랑한 10대 때의 나는

다섯 살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옛날 옛날 한 집에 엄마와 아빠와 아기가 살았데요'하며 시작된 이야기가 동화책에서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데요'라는 행복한 결말을 그려내고 말리라 다짐하며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시간은 돌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행복을 찾으니

굳이 다섯 살의 나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졌다.


그냥.... 아주 가끔씩

이렇게 나 - 아기 - 남편 셋이서 나란히 누워있다 보면

문득 행복했던 다섯 살의 내가 나타나 엄마와 아빠를 부른다.

다섯 살의 내가 나타나 그때의 아빠를 만나고 싶어 한다.


5살 꼬마에게는

33살의 아빠와 엄마 사이 잠들었던 그때가

그리도 꿀같이 달콤한 꿈이었나 보다.


1995년 그때 아빠를 만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며 그때를 그리며

후에는 영영 잊힐 1995년 아빠를 그려본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지금의 아빠는 만나고 싶지 않다.

내가 한없이 사랑했던 95년도 그 아빠를 자꾸 밉게 만드니까...


더 늦기 전에 한 번은 볼까 싶으면서도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마저도 잃어버릴까 봐 싫다.


그냥 가끔 이렇게 혼자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의 아빠 품에 엄마 품에 기대어 누워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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