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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Feb 18. 2022

나의 여고시절이 좋았던 이유

야자타임이 그렇게 좋았다.

인문계고등학교의 < 야자 >

즉, 야간 자율학습시간은 내 인생의 한 줄기 빛이었다.


집에서 잠자고 쉬고 거의 오전 7시~밤 10시

하루를 학교에서 내내 보내니

학교에서 생긴 일만으로도 소녀들의 수다는 가득 찼다.


그게 너무 좋았다.

똑같은 교복, 같은 교실, 같은 배움, 공통분모의 대화거리.


가난도 한부모도 상관없었다.

수다를 떨기 위한 특별한 경험도

즐거운 일상의 대화거리도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선생님 얘기, 야자 끝나고 집에서 본 인기 드라마 얘기,

친구사이에 있었던 일들이면 배꼽 잡고 웃기에 충분했다.


매일 일정한 시간표대로 움직이니 정서적으로도 안정됐다.

학교라는 곳에서 보호받는 것 같았다.


점심, 저녁도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야자가 끝날 때까지 어른들이 있었다.


나는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서

세상의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것만으로 공부에 동기부여가 되고

그것만으로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다.


.

.

.

.


중학교 때는 학교 끝나면 어떤 옷을 입고 놀지,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창피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는 학교 가면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내 얼굴의 우울함이 티가 날까 봐 매일 웃는 연습을 했다.


새벽마다 술 마시고 나를 깨워 하소연하는 엄마.

내가 사 준 옷이다, 내가 사 준 거다 하면서

친아빠를 찾아가라며 그 새벽에 나가라고 소리치던 엄마.


방문을 잠그고 자는 척하려면

나올 때까지 문을 두드리던 술 취한 엄마...


새벽 내내 시달리다가 아침에 잠깐 자고 학교에 가면...

세상 피곤하고 우울한 나와

가족들과의 즐거운 일상 에피소드로 대화를 하는

같은 반 친구들을 보면 의기소침해졌다.


늘 고민이었다.

연예인 얘기 말고...

나도 진심을 나누며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지만

인생의 무게가 나를 눌러 힘들었다.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주변에 누가 알랴.


내적인 나의 세계는 우울로 가득 차가고

외적인 나의 세계는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갔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을 한 게

그렇게도 좋았다.


질한 나를 가릴 수 있는

교복과 수업과 공부와 시험으로 가득 차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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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 어느 한 날 이화여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시크한 친구가 나 보고 어디 사는지를 물어봤었다.


그 친구의 아버님은 부동산 중개인이셨다.

그 친구는 꽤 부유한 가정의 친구였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집은 월세 살이었다.

학교와는 직선상에 있는 15분 거리 정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나의 가정형편을 물었건 것도 같다. 내가 아파트에 사는지 궁금했던 건 아닐까?


아무튼 나는 학교에서 쭉 걸어가면 저 끝이 우리 집이라고 했다. 나는 위치를 묻는 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감사했던 게 내 대답을 들은 친구의 시선 끝에는 아파트가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경제적으로 무시당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다.


아무튼 내 여고시절은 같은 공간, 같은 교복, 같은 일정으로

가난과 한부모 가정과 우울함을 벗어나

내게 행복을 줬던 기억이 가득했다.


그 기억이 서글프면서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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