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 획득의 쾌거를 거둔 종목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야구 종목이다.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9전 9승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거두기까지 참으로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 냈다. 김경문 감독의 지도 아래 이승엽, 이대호, 강민호, 류현진, 김광현 등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은 미국, 쿠바, 일본 등을 연파하면서 준결승에 올랐고 예선에서 한국에 패해 절치부심으로 준결승에 임한 일본대표팀에 초반 2점을 먼저 실점을 했으나 4회 이후 6 득점하면서 6대2로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올라 쿠바마저 3대2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짜릿함과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예선전에서 23타수 3안타의 2할이 채 되지 않은 극도의 부진을 보이던 이승엽 선수의 8회 극적인 투런 홈런은 베이징 올림픽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이승엽 선수에게 홈런을 맞은 후 일본의 중계진이 11초 간 침묵을 했다는 이야기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다. 이후 이승엽 선수는 결승전에서도 홈런을 쳐내는 등 역시 간판타자로서 정말 필요한 시점에서 제 역할을 해 주는 국민타자로서의 위상을 유감없이 발휘해 주었다. 최근에도 케이블 TV를 보면 당시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방송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지금 보다라도 그때의 짜릿함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승리 뒤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작고 하셨지만 하일성 전 KBO 총재께서 필자의 회사에서 강연을 진행하신 적이 있다. 그때 말씀하셨던 내용이다. 올림픽이 진행되던 베이징의 날씨는 찜통더위에 높은 습도를 보이고 있어서 선수들의 건강 및 컨디션 관리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고 한다. 특히 취침 시간이 더 문제였는데 에어컨을 켜놓지 않고서는 더위와 습도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에어컨을 켜놓은 상태로 취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을 알겠지만 밤 새 에어컨을 켜놓은 상태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무겁고 여러모로 컨디션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래서 당시 하일성 당시 KBO 총재께서는 스태프들에게 밤새 선수들의 숙소를 돌면서 에어컨 상태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며칠 후에 스탭을 불러서 에어컨 조절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니 스태프들이 하는 말이 이택근 선수가 밤새 선수들 숙소를 다니면서 에어컨을 조절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일성 총재께 전달을 했다. 그래서 하일성 총재께서 이택근 선수를 불러서 물어봤다고 한다. "너도 국가대표인데 왜 잠도 안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몽유병 환자처럼 방마다 다니면서 에어컨을 조절하고 있냐?"라고 이야기했더니 이택근 선수 왈 "저도 국가대표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전이 아니기 때문에 경기에서 팀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 부분이 늘 마음에 걸리고 동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선수들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자라는 생각에서 에어컨을 조절하게 되었습니다. 큰 일은 아니지만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경기에 나가더라도 후반에 대타나 대수비 요원으로 출전하기 때문에 제 컨디션 조절은 문제없습니다." 당시 이택근 선수는 넥센 히어로즈의 대표적인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팀을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보탬이 되고자 자신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하일성 총재는 할 말을 잃었고, 우리는 우승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경기장에서 경기를 뛰는 선수들만이 승리의 주역이라고 할 수 없다. 덕 아웃에서 목청껏 선수들을 응원하는 백업 멤버들과 타자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는 배팅볼 투수, 불펜진의 투구를 도와주는 불펜 포수 그 누구 하나가 자기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면 승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새벽에 선수들의 컨디션을 위해 에어컨을 조절하는 역할을 자청한 이택근 선수의 진정한 팀플레이는 한국야구의 금메달의 원동력이 아닐까?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이 이룬 큰 성과 뒤에는 반드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궂은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다. 강한 팀, 이길 수밖에 없는 팀은 그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내려놓고 기꺼이 임하는 누군가가 있다. 모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자고 달려드는 조직은 결국은 스스로의 문제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진정한 팀 플레이는 바로 나를 내려놓고 진정으로 팀을 위해 희생하는 구성원에 의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며, 그러한 구성원들의 가치를 높여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기업이야 말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팀워크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