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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May 16. 2020

잠시 머묾과 계속 있음의 시각차

함께 온 사람들과 둘러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카페에서 손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일이 되었다.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은 동적인데 나는 카페의 소품인 인형처럼 서 있다. 풍성한 들판의 가장자리를 유유자적하게 거니는 나들이객의 모습과, 수확을 앞둔 들판의 복판에 서 있는 농부의 모습이 대조적인 것처럼, 나의 카페 도전기는 흡사했다. 나에게 카페는 잠시 머무르는 목적으로 가야 되는 곳이지 계속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껏 어디서 무엇을 한들 그렇지 않았나, 보는 것과 해보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꿈은 아니었지만,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로망이었다. '한 번쯤'이라는 경망스러운 생각의 대가였을까, 취미가 아니라면 죽을 각오로 임해야 된다는 혹독한 경험을 치러고 있다. '한 번쯤'이라는 단어는 놀이공원에서 자신 없는 놀이기구를 도전할 때나 사용했어야 했다. 누군가에겐 로망인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제는 잘 살아 낼 수 있는 다른 일에 관심이 쏠려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이왕이면 폼 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선택의 시야는 좁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차고 넘쳤다. '할 일은 많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게, 시야를 넓혀서 보라는 얘기로 들렸음에도, 위안이라도 찾듯 계속 같은 말과 생각을 반복한다.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욕망은 계속해서 쉬운 것을 쫓고 있고, 남에게 닥친 불행이 나만은 비켜가기를 기도하며 살고 있다. 무엇을 이뤄야 한다면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해야 한다.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는 손님, 가벼운 눈 인사를 하는 손님,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바로 메뉴판을 찾는 손님 등등, 사소하지만 손님들의 반응에 따라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춤을 춘다. 손님에 따라 카페 분위기에 대한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앤티크 한 소품들, 조명과 찻잔에 눈을 빼앗기는 사람들은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한창인가 하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의 숫자만큼 표현의 방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내 눈엔 그저 매일 보는 같은 광경일 뿐 점점 흥미를 잃어간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점점 빠져든다.

손님이 말이라도 걸어오면 행복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말을 걸어오면 말이 많아진다. 그것도 잠시, 손님이 자리를 정하고 나면 같이 온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 집중한다. 나의 역할은 금세 끝이 나고 다시 외톨이가 된다.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을 낱낱이 풀어 헤쳐서 감상해 본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어 간다. 절망의 수렁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생각을 건져 올리기 위해 미친 듯이 책을 본다. 그리고 기록한다.

가끔씩 의지와 상관없이 가까이 있는 손님들의 대화가 귀로 전달되기도 한다. 다행히 또렷이 들리는 대화는 대부분 비밀스럽지 않다. 그리고 남의 얘기를 한다는 것에 더욱 재미를 느끼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손님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거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손님들이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무임승차하는 듯한 나의 모습이 부조화스럽다. 그렇다고 귀를 막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가 목으로 넘어가는 동안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대화가 반복된다. 첫모금의 커피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혀의 미각을 깨운다. 커피 한 잔이 주는 각성의 효과는 커피향과 함께 지쳐있는 정신을 깨운다. 커피는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만남은 기쁨과 함께 위로가 되기도 한다. 때론 커피 한 잔이 주는 삶의 삭막함을 깨우는 가치는 그 색깔만큼 진하다. 여기까지는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대화의 긍정적인 면이다.

대화가 길어지거나 서로의 생각이 맞지 않게 되면 잠시 대화가 길을 잃고 어긋나게 된다. 감정의 요동을 조절하기 위해 커피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 커피 한 모금으로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다. 표현에 대한 단어가 거칠어지는 것은 생각의 복잡함이다. 자기 얘기도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데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다. 일상 속 남 걱정은 본인 불만족의 산물이 아닌가 싶고,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자리에 없는 사람의 얘기를 할 때는 극히 일부일 수도 있는 얘기를 전부인 양, 그것조차도 전해 들은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간접경험의 느낌을 살려가며 조금은 과장되게 그리고 최대한 사실적인 것인 양 전달해야 된다. 하지만 남 얘기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허점을 노리는 이야기를 통해 자기를 합리화 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놓여있었다.

잠시 머물다 가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얘기이니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다. 분노의 마음도 없고 마음이 가라앉지도 않는다. 오히려 같이 마주 앉아 험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맘속으로 손님들의 대화에 슬며시 끼어들어 본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요, 오해가 아닐까요, 그 사람도 변명의 기회를 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렇게 얘기하는 당신의 진짜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지네요...', 시각차를 좁힌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차이 #다름 #시각차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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