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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8. 2021

아이의 마음에는 '차선'이 없다.

채우지 못한 엄마의 욕구


광화문광장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본죽으로 갔다.
아이들에게 죽 하나를 나눠먹게 하고
나는 비빔밥을 시켜먹어야지...
그 생각을 하니 마냥 설렌다.

아이들에게 '새우죽 시킬까?'하고
인심 좋게 물어본다.
은찬이는 냅다 새우죽을 먹겠다 얘기하는데
대뜸 윤찬이가 자기는 호박죽이
먹고 싶다고 얘기한다.

오 마이 갓.
대본에 없었던 상황이 발생했다.
죽 하나, 비빔밥 하나를 시켜 먹어야 되는데...
그래야 돈도 아끼고
내가 원하는 것도 먹을 수 있는데...
단호박죽이 웬 말이냐.

윤찬이에게 설마설마하며 물어본다.
"너 단호박죽 먹을 거야?"
"응"

윤찬이에게 또 설마설마하며 물어본다.
"윤찬아 너 정말 단호박죽 먹을 거야?
새우죽 먹으면 안 돼?"

결국 아이는 말이 없어지고....
나는 찔린다.

결국 마지막이라고 물어보며
똑같은 질문을 한다.
"윤찬아 엄마가 이번에 진짜로 물어보는 거야.
네가 대답하는 거 시켜줄게"

윤찬이 입에서는 '단호박죽'이라는 말밖에
나온 적이 없는데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대답이기에
다 리셋시켜버렸다.

아이는 한참 뜸 들이다가
종전과 똑같은 대답을 한다.
"단호박죽"

답답한 애미는 아들이 처음부터
단호박죽이라고 얘기했음에도
귀를 쳐 닫고 듣지를 않는다.

'엄마!!!!!!!!!!!!!!!!!!!!
제발!!!!!!!!
단호박죽 사달라고!!!!!'
이렇게 귀청 떨어지게 대답해야 알아먹으려나.

얘는 처음부터 자기 욕구를 분명히 표현했음에도
내 마음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다른 마음이 있을 거라며
혼자 착각... 혹은 염원하며,
아이의 마음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묻겠다고
삽질하고
진심으로 대답하면 들어주겠다고
협박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새우죽과 단호박죽을 주문했다.
좋은 엄마라는 거짓 타이틀과
돈을 아꼈다는 거짓 자부심만 남은 채
내 외면당한 욕구는 갈길을 잃었다.

비빔밥이 계속 생각이 난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예전 같았음
늘 익숙한 패턴처럼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했으니
기어코 아이를 야려보며 기어코 한마디 했을 거다.

"너 다 안 먹기만 해 봐."

내가 먹지 못한 것은 다 너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아이를 괴롭혔겠지.

내가 먹고 싶은걸 시키지 못하니 서러웠다.
아니, 서럽다기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마음 편히 못 시키는
나 자신이 애잔했다.

그게 뭐라고!
결국 내 욕구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가서 낙지 비빔밥을 주문한다.
8500원에 천 원을 추가해서 돌솥비빔밥으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내 것을 채우기로 선택한다.

주문하고 돌아오니
내 욕구를 온전히 채우지 못해
아이의 욕구를 눌렀음이
더욱더 여실히 보인다.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선
누군가의 욕구를 눌러야 했던
내 과거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가지면 너는 못 가져.
네가 가지면 나는 못 가져

채우지 못했던,
알아서 못 받는다 생각하고 내 욕구를 죽였던
내 어린아이.
그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설쳐된다.

욕구를 채우는 법을 몰라서,
다른 사람의 욕구와 내 욕구가
함께 채워져도 괜찮다는 걸 배우질 못해서,
내가 하면 꼭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 같아서
늘 내 욕구에 타인을 데리고 왔다.

내 어린 자식의 욕구를 눌러야
내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윤찬이의 욕구가
내 욕구를 방해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세 개 시키면 음식이 남을게 뻔하기에
내 욕구와 아이의 욕구,
둘 중 하나는 굴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아이의 욕구와 내 욕구
모두 채우겠다 선택하고 나니
남기면 아까워 어쩌나라는 생각 대신에
애초에 반 그릇씩 포장한 상태로 달라고 하면 되겠구나,
라는 새로운 대안이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각자가 먹고 싶은걸 먹으면서도
미리 소분하여 포장한 것은
저녁으로 먹울 수 있는..
내가 편리해질 상황들이 눈에 보였다.

내 욕구에 충실하면
돈이든 상황이든 모든 것이
불리하게 돌아갈까 겁이 났었는데
막상 내 욕구를 바라보고 선택하고 나니
어느 하나도 어긋남 없이 평온해졌다.

윤찬이에게도 다시 한번 사과했다.
한 번에 들어주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요즘 부쩍 더 그러는 나를 바라보며
내 아이가 말하는 '현재'에 집중해보자 ,
아이의 '지금 이 순간'을 존중해주리라 다짐해본다.

늘 아이의 대답에서
다른 차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누차 되묻는 나.
마지막으로 묻는다며,
진심으로 대답하라는 나.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 앞에서 아이가 느낄 무력감을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하다.

모든 것은 내가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채우겠다' 선택하고 난 후에
더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느꼈기에
'아이'의 욕구가 느껴졌고,
'내'가 나를 채웠기에
'아이'의 욕구를 바라보고 채워 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욕구를 놓치지 말자.
아이가 '지금'하는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아이는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엄마는 엄마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엄마의 마음이 아이의 '차선'이 될 수 없다.
아이를 믿어보자.
아이의 마음에는 '차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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