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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8. 2021

아이에게 의무적으로 공감하지 마세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거짓공감



아이에게 의무적으로 공감하지 마세요.

내 마음이 움직일 때 진심을 다해 공감해주세요.


내 마음이 화가나서 미칠 것 같은데,

화만 내는 아이에게 억울해 미칠 것 같은데,

심지어 아이를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올라와 참기조차 힘든데

어떻게 진심을 다해 공감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아이옆에서, 혹은 아이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대답해보며 자신의 진짜 마음을 찾아가보세요.


`누구야 정말 힘들지?

너한테는 이게 최선인데 아들은 왜 이렇게 화만낼까..

화만 내는 아들한테 엄청 서운하고 억울하겠다...

(응, 정말 억울해)

쟤 던져버리고 싶지? 그지? 그냥 확 던져버릴까?`


이렇게 몇번 말을 걸고 대답하다보면

화가 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래.. 그래도 아들인데 던지는건 좀 너무하다.

쟤도 분명 억울한 마음에 그랬을 거야.'


공감은 내 마음에 걸림돌이 없는, '진실'한 마음일 때 그 힘을 발휘합니다.

내가 아이의 마음이 되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받아줄 때

아이는 엄마에게 버림받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와 연결될 엄마의 코드가 전선이 다 보일 정도로 다 망가졌는데도,

'해야한다'는 마음 때문에 억지로 아이의 콘센트에 연결한다면,

결국엔 다치는 것은 아이와 내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해야한다`는 의무맘으로 아이에게 공감하지 마세요.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아이에게 공감하지 마세요.

아이는 엄마의 마음이 정말 나에게 향해있는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차립니다.


차라리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세요.

"엄마도 화가나서 너를 위로해 줄 수가 없어" 라구요.

아이에게도 분노할 시간이 필요하고, 상실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감정을 느낄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한 번 되돌아 보세요.

내가 하고 있는 공감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저는 늘 아이의 맘이 '해결' 될 때까지 공감해주려 노력했습니다.

아이의 감정이 내려가는 것이 보여도,

끝내 입에서 괜찮아라는 말이 나와야지만,

아이가 나에게 안겨야지만 내가 할 일을 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숨을 쉬고 버거워함이 느껴지더라도

옆에 있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나두는 것이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아이 스스로 감정을 해결 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감'을 해주면서도 늘 스스로 지쳤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정말 징하다 징해...

제발 좀 끝내고 엄마한테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얘기해줘..


공감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 속에 내 마음을 감추고는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말을, 감정을 끊임없이 유도했습니다.

그것이 아이의 입을 틀어 막는 것일 줄은,

그것이 아이의 감정을 차단시키는 것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나를 위해 아이의 마음을 갈취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지지해줄 뿐,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없습니다.

화가난 아이의 마음이 누그러졌다는 생각이 들면,

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해결 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음을 믿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도 문제를 지니고 사는 인간임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엄마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비쳐주는 등불일뿐,

결국엔 감정을 느끼고 통과해야 하는 것은 아이입니다.


<제 일상의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은찬이가 아빠와 큰방에 들어가서는 문을 닫는다.

윤찬이는 약이 오른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하지말라고 표현하던 와중에 은찬이 얼굴을 때려버렸다.

'퍽' 소리가 나고 은찬이가 우는데 정말이지

윤찬이를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 말고는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은찬이를 때린 윤찬이를 두 팔로 붙잡고 마구 흔들어 댔다.

"엄마가 때리는 건 안된다고 했지!!"

아이를 잡은 두손이 부들 부들 떨린다.

머리속으로는 아이를 집어 던지고 싶고 똑같이 때려주고 싶다.

참을 수가 없다.


눈치 챈 신랑이 나보고 나가라고 한다.

이성을 찾아야 하기에 나온다.

그 와중에 윤찬이와 은찬이를 분리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신랑보고 은찬이를 거실로 나가 달래라고 얘기하고 윤찬이에게 간다.


아, 근데 도저히 공감할 수 가 없다.

때린 이 아이에게 분노가 나서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는 그냥 밖으로 나왔다. 부엌으로 향해 원래 하던 일에 몰두한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다.

은찬이는 울다가 잠들었고, 윤찬이는 큰 방 침대에 누워  

'엄마 미워'를 반복하며 계속 울어댄다.

근데 그 울음이... 내가 온마음을 다해 슬픔을 털어내었울음같다.


'엄마 미워.. 은찬이가 잘못했어..'

그런데 엄마 미워라는 그 말이 '엄마 사랑해'라는 말처럼 들린다.

'엄마 내 마음 좀 알아줘, 제발 날 좀 바라봐줘, 제발 사랑해줘...'


아무튼 그 말이 아무리 사랑해로 들려도 지금 내 마음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다른 일을 집중하면서도 아이의 울음을 듣고 있는데

아이가 대뜸 울다가 그런말을 한다.

"일부러 그런거 아니야"


뭔가 마음이 누그러져서 아이에게 갔다.

여전히 아이는 몸으로 나를 찾고 있지만,

엄마 미워, 엄마랑 안 놀아줄꺼야라는 말을 반복하며 나를 밀어내는 것 같다.

아.. 도저히 옆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부엌으로 나왔다.

그리고 윤찬이에게 말했다.

"윤찬아, 엄마 지금 너무 화가 많이 나서 윤찬이 마음을 알아줄수가 없어."


윤찬이가 "뭐라고?" 라고 다시 묻는다.

"윤찬아, 엄마가 지금 은찬이를 때린 행동이

너무 화가나서 윤찬이를 공감해줄 수가 없어.

윤찬이가 실컷 울고 화내고 은찬이에게 했던 행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나와, 그 때 엄마가 안아줄께"


사실은 조건이 걸린 말이였고,

어쩌면 오류 덩어리의 말일 수도 있지만

저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였다.


어쨌든 아이는 또 실컷 울고 화내더니 "엄마 이제 괜찮아졌어"라는 말과 함께

모든 감정을 쏟아붓고는 평화로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에게 버림 받지 않기 위해 그친 울음이 아니라,

정말 모든걸 쏟아부은 그런 울음.

나는 아이에게서 그런 울음을 봤다.


정말 놀라웠다.

일이 생길 때마다 공감해줘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를 악물고 아이에게 말했다.

"윤찬아, 엄마가 ~ 해주길 바랬는데 속상했구나.

엄마도 몰라서 그랬어. 미안해, 미안해,미안하다구~~"

속상했구나, 미안해 라는 말을 늘 아이에게 반복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을 알아달라며, 아이에게 사랑을 구걸했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 따위는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

내게서 멀어져 버린 아이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늘 아이 옆에서 죄인이 되어 사과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의 그 마음 때문에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것 같다.

실컷 뒤집어져서 우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였으리라.

나를 벗어나는 아이가 싫었기에

나는 늘 아이를 내 손안에 놓고 가두려했다.

마음껏 울지도 슬퍼하지도 못하게 했다.


공감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는 감정착취.

내 감정을 진심으로 표현하고,

아이에게 화는 났지만 연결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아이의 감정이 흘러가는대로 바라봐주었더니

오히려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털고 나왔다.


여전히 나는 바라봄과 방치의 경계가 어렵다.

아이를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진정 아이를 사랑하는 길임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신발끈을 묶어주는 부모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에 대해 자각할 수록 나는 신발끈을 묶어주고도 남는 부모였다.


아이가 울 때 3초 안에 달려가자. 이것은 진리다.

하지만 달려갈 수 없을 땐 잠깐 나를 보면서 쉬어가자.

지친 나에게 말 걸어주며 위로해주고 충분히 쉬었다가자.

나를 돌보는 그 시간에 죄책감 따위는 가지지말자.

나를 돌보고 위로해 주는 그 시간이 곧 아이를 사랑하는 시간임을 안고가자.

바로 달려갈 수 없는 그 시간동안 내가 나를 위로해주자.

버리는 것이 아니고 쉬어가는 것임을..


지친 우리를 위로해 주며,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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