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 Oct 18. 2021

내 똥은 내가 직접 닦아야 합니다.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나요?


아이와 한글 학습지를 하고 있어요.

'한글떼기 하고 싶다!!'

'한글 좀 제~~발 떼라!!'를 

외치기만 하고 실행은 못해 

마음으로 얘를 

찐따, 찌질이 취급 하고 있을 때,

아이의 동의를 얻어 한 6살때쯤?

학습지를 시작했어요.


학습지를 시작하면서 느꼈죠.

내 마음속에 나 스스로 그려놓은

'<애 잘키운 건 이런거야>라는 틀이 참 강했음을요.


나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 덫에 스스로 걸려

나를 단죄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끊임없이 그 틀처럼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내가 상상한

그 모습처럼 인정받고 싶었어요.


아무튼 그렇게 집착하던

어떠한 한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와 한글 학습지를 시작했어요.

지겨울만한 일상속에서

하나의 이벤트처럼

때론 나를 위한 위안처럼

그렇게 아이와 진행하고 있는데요.


얼마전부터 선생님께서 

공책에 한 4문장 정도를 쓰는 

숙제를 내주기 시작하셨어요.

문제는 이 쓰기를 시작하면서

아이와 힘겨루기가 시작되는거예요.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는 넘치고,

그 중간 중간 잠깐씩 하는 것이

'쓰기'라는 숙제라니.


아이의 하기 싫은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서도,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라는 사실이

자꾸만 저의 '인정욕구'를 건드리는거예요.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그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은

정의감이 올라와요.

어느순간 아들이 아닌

엄마인 내가 학생이 되어있어요.

선생님과 한 그 '약속'을 지켜서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요.


아이는 몇자 안쓰고

힘들다고, 하기 싫다고

징징대기 시작해요.

그리고 최후의 수단,

'엄마가 안알려줬잖아'를 남발하며

제탓을 하기 시작해요.


저는 언제나 그말이 고비예요.

"엄마가 언제 안알려줬어?

정말 안알려줬어??(질척)

엄마는 그 말들으면 정말 엄청~~ 서운해"


결국 제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아이대로 서운해서

"엄마미워"를 외치며 방으로 들어가요.


아이에게 충분히 시간을 준후에..

방안으로 들어가

아이와 대화하기 시작해요.

사실 그 쓰기양은 선생님이 윤찬이와

함께 정한 양이였거든요.

그래서 나도모르게 

아이에게 '니가 정했잖아'라는 말로 

아이를 질책하곤 했어요.


아이와 얘기했어요.


"윤찬아,

'하기 싫다'라는 맘을 품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야.

엄마도 하기 싫을 때가 있어.

그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거야.

그런데 행동하는 것은 달라.

너가 선생님과 쓰기양을 정한 것도

잘못했다는 얘기가 아니야.

하지만 정했기에 책임이라는 건 필요한 것 같아.

..


(그전에 쓴것을 보여주면서)

이거보면 힘들었지만

막상보면 어때? 뿌듯해?

(응)

힘들었지만 보면 뿌듯하지?

엄마도 그래.

윤찬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뻐.


..


그런데 윤찬아,

그래도 엄마는 너랑 관계가 나빠지면서 까지

이걸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아.

윤찬이가 원하는걸 말해봐" 라고 말했어요.


사실 앞의 말은..

쓰면서도 잘한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어찌보면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핑계였을 수도 있겠다 싶고...


그런데 결국 그것이 내 욕심이라면

내려놓아야함음 알기에...

내 욕심임을 인정하고

내려놓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한글쓰기가 뭐라고,

아이와 관계가 나빠질 필요가 있을까...

(초2가 된 지금, 아이는 한글을 참 잘 쓰고 있습니다 ㅎㅎ)


그런데 그 말에 아이가 움직이더라구요.

문장을 쓰되

한 6단어 남겨놓고

여기까지 쓰겠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이왕 쓸꺼 다쓰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용기를 낸 아이의 아이의 욕구를 인정해주자.

그리고 쓰는 모습을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가 쓰겠다는 양을 다쓰고

6글자를 남겨두니

어찌나 끝맺음을 맺게하고 싶은지..

6글자를 쓰게 만들고 싶었어요.


"윤찬아 우리 6글자 남은거 마저쓸까?"

"(정색하며)싫어"


"아~~ 윤찬아~~

엄마가 똥 안닦은 것처럼 찝찝해ㅋㅋ

제발 닦아줘"

"(아이웃음 ㅋㅋㅋ)


"(웃으니 왠지 될것 같은 마음에 더 질척)

윤찬아 제발~~~~

엄마 찝찝해.

엄마 똥 쫌 닦아줘~~~

제~~~발~~"


"(웃으며)싫어(자리뜸)"


이게 아닌것 같은데도

계속 질척거리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아들이 결국 단호하게

웃으며 '싫어'라고 말하니

신기하게 안도감이 들더라구요.


약간.. 고장난 자동차 같달까요?

이게 아닌 것 같은데도

멈춰지지가 않아요.

자꾸 완성시키고 싶어요.

끝맺게 하고 싶어요.


결국 아이가 나를 멈추게 하더라구요.

아이의 단호한 '싫어' 한마디가

나를 멈추게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그래, 왜 윤찬이가

내 똥을 닦아 줘야하지?'


나도 모르게 내가 닦아야 할 똥을,

나의 찝찝함을 아이에게 해결해달라고,

윤찬이에게 닦아 달라고

내 엉덩이를 들이밀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순간 

'싫어'라고 말한 윤찬이에게

고맙더라구요.

자신의 경계를 넘어간 엄마에게서

자신을 지켜준 아들이 고맙더라구요.


생각해보면 아들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런 경우가

참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처리해야 할 내 수치심, 내 욕구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며

책임지라고 했던 경우가 허다하네요.


내가 닦아야 할 내 엉덩이를

남에게 들이밀어

남을 괴롭게 했어요.

'경계침범'이 뭐 다른게 있을까요.

이런게 '경계침입'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튼 '쓰기'로 시작해

'경계침입'까지

깨달음을 가져봅니다.


몸도 마음도 쳐져서

아이에게 노는 것 대신

유튜브를 보자고 얘기 했어요.

하루종일 영상을 본것 같은데

다시 유튜브를 보자고

얘기하니 찔리더라구요.


그래서 제 죄책감을 덜고자

아이에게 '영어로'

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웃긴건

제가 지쳐 있을 때는

아이도 쉽게 제 뜻에 따라주지 않더라구요.


'에라 모르겠다.'

'너희 알아서 해라.'

라는 마음이 올라와 윤찬이에게 

그냥 윤찬이 보고 싶은거 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연신 저에게

'엄마 고마워.

너무너무 고마워' 라고 말합니다.


참.......

이게 뭐라고...

여러감정이 교차합니다.


육아엔 답이없네요.

정확히 말하면...

내 내면의 상처는 끝이 없네요.


결국 아이를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전 17화 아이에게 의무적으로 공감하지 마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