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feat. 남산타워)
대구 촌년이
서울 남산타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서울은 코베어가는 곳이고,
깍쟁이가 살고,
도도한 사람들이 살고...
나와는 다른 사람이 살것 같은 생각을 하며
25년을 살았다.
그리고 26살이 되던날
서울은 아니였지만
처음 수도권이라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서울은 나에게 여전히
우월의 상징이자
질투의 대상,
두려움의 대상이다.
서울역에서 내가 가장 타기 두려워하는 택시를 타고,
어두컴컴한 과학관에 들어갔다가
무서워 하는 아이들 덕에 택시비만 날리고
경로를 틀어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타워로 향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는데도...
나도 모르게 두려웠다보다.
한바퀴 다 둘러보고 집으로 가려는데
아이들에게 연신 '빨리빨리'를 말하며,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한다.
아이들은 쪼금만 앞으로 가도
'나두고 가지 말라'고 지랄하고,
나는 '내가 버린적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지랄하고.
평소에도 나는 뭐가 틀리면 '빨리빨리'라는 말을 자주한다.
단순히 일처리의 속도가 아닌
두려움의 빨리빨리.
약먹은 닭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거리는......
보는 사람까지 두렵게 만드는
빨리빨리.
포탄이 터질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의 '빨리빨리'
뭔가 사단이 날 것 같아 도망가야 할 것 같은 맘의
'빨리빨리'.
두려우면 나는 뭔가 서두르며 여기서 일을 종결하고 싶어 한다.
두려움을 느끼기가 너무 무서워서,
두려움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서 두려움을 잊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나의 두려움을 그대로 흡수하고
함께 두려워 한다.
남산타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길,
유난히 내게 같이 가자고 말하던 윤찬이.
나의 두려움을 함께 느낀 내 아들.
결국 빠른 발걸음으로 아이들을 재촉하던 내 모습은
'보호자'(그것이 결국은 나에게 신랑이였으리라) 없이
낯선곳에 있어야 하는,
아이 둘을 데리고 세상으로 나온 내 두려움의
자동적인 반응이였다.
나를 지켜줄 이 없는 곳에서
나홀로 아이둘을 지켜야 하는 부담감과 두려움,
그 두려움을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나는 '같이 가자고' 징징되는 아이에게
버럭 할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을 바라보고,
그 '두려움' 내가 알아줄 수 있었다면
'두려움'은 '허상'이 되었을텐데.
아이에게 내가 왜 우주인지,
거울인지 와닿지 않았다.
아이는 나와는 다르게 커야한다고 믿어의심치 않기에,
나와 같은 모습을 보면 분노가 나던 나였기에
내가 거울이라는 것이, 와닿지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두려워 떨고 있는 엄마를 보고
함께 두려워하며
'보호자' 없이 자신들을 돌보고 있는 엄마가
'버림받음'의 두려움으로 자신들을 돌보고 있음을
단번에 눈치채고 있었다.
닭에서는 병아리가 나옴이 당연한데,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함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나는 내가 닭이라 병아리가 닭처럼 크는데도,
왜 닭처럼 크고 있냐고,
더 멋진 공작이 되지 않느냐고 지랄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가 '의식'으로 올리지 못한 무의식,
즉 두려움을 그대로 비춰준다.
'빨리빨리'라는 말을 습관처럼 말하고 있다면,
그 안에 있는 두려움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