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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8. 2021

기관을 못 믿는 기관 늦둥이맘

나도 못믿고 아이도 못믿고 기관도 못믿는

아이와 참 많이 떨어지고 싶었다. 

일찍 결혼하고 아무도 없는 경기도로 터전을 잡고 나홀로 신랑 하나만 바라보며 아이를 키우던 시절. 늘 익숙한 티비가 나의 친구였고, 그저 말못하며 누워있던 아이가 참 귀찮고 버거웠던 시절. 14개월에 처음 하은맘 책을 읽고 푸름아버님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냥 살아있는 식물인간이였다. 


두려움에 그 어떤 것도 하기가 힘들었다. 나라에서 양육수당으로 20만원 정도가 나왔는데, 그 돈은 어린이집에 보내면 지원금처럼 사용된다고 하니, 그당시에 나는 어린이집은 당연히 보내야 하는 곳 인줄 알았다. 아이를 망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나는 아이와 떨어져 있을 '숨구멍'도 필요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파트 1층에 있는 어린이집을 보았다. '잠깐만 아이와 떨어질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처음가보는 어린이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과하게 상냥한 원장선생님, 아이가 모유수유 중이고 나와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그저 맡기기만 하라던 원장선생님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냥 밖으로 나와버렸다. 독립과 의존의 모순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이였던 것 같다. 떨어지고 싶었지만 떨어뜨릴 수 없었던, 그 역사가 참 길었다. 


 18년 8월 9일. 엄마, 아빠라는 울타리를 한번도 벗어나보지 못했던 아이가 처음 유치원이라는 곳을 갔다. 설레는 맘, 기특한 맘, 신기한 맘으로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는 사진찍기 바빴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엄마, 아빠 모두와 떨어져 낯선곳에 가는 아이는 얼마나 긴장되었을까.. 그 마음을 맘껏 헤아려주기 보다는 적응은 잘 할 수 있을까, 안간다고 하면 어쩌지 라는 그 불안이 내 마음에 더컸던 것 같다.


 점심시간 쯤에 원에서 전화가 왔다. 식판만 챙겨오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가지고 오지 않아 윤찬이에게 식당에 가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받아오라고 선생님이 얘기를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윤찬이가 책상을 엎고 소래를 고래고래 질렀다고. 어머님이 좀 오셔야겠다고. 


도착하자마자 엉엉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랬다. 진정이 되지 않아 아이를 안고 심호흡을 시켰다. 원장수녀님과 얘기하면서 아이와 떨어지기가 어려운 내 마음을 말하며 눈물 흘렸다. 당황스러웠지만 고마움도 있었다. 뒤집어지고라도 나를 찾아주는 아이에 대한.. 고마움.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내 외로움. 그렇게라도 연결되고 싶은 마음. 잘 적응 할 수 있을까에 의문을 아이는 그렇게 몸소 보여줬다.


아이는 이날 한 번을 끝으로 다시는 책상을 뒤엎지 않았다. 불안감, 두려움을 온 몸으로 표현한 아이는 오히려 장소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세상이 두려운 엄마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온 몸으로 흡수한 아이는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불안을 표현했다. 그리고 서서히 세상에 대한 안전함을 배워갔다.


그렇게 1년반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고, 유치원 생활의 매듭을 지을 수가 있었다.


하원후에는 일절

유치원 친구들 얘기를 하지 않던 아이는

신기하게도(?) 반 친구들이 뽑아준

배려상을 두번이나 받았다.

친구이름을 물어도 잘 알려주지 않던 아이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하다.


늘 어머님이 걱정이 많다며

윤찬이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해주셨던

1년반동안 윤찬이를 지도해주셨던 

윤찬이의 평생 only one일

유치원 담임 선생님.


"윤찬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FM이예요.

근데 또 할말을 해요"라는 원장 수녀님 말씀을 들으며 

아이는 무사히 유치원을 졸업할 수 있었다. 

참 감사하게 다가오던 졸업식이다. 



 유치원을 보내면서 나는 특별할 것 없는 내 양육법에 대한 자부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세상과 아이에 대한 믿음을 배울 수 있었다. 아이를 원에 보내지 않았을 때, 그 힘들고 고달프게만 느껴졌던 시간들 속에서 내가 아이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위로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들이였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었음을.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더 많이 주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더 사랑받고 있었음을. 내가 아이를 세상에서 지켜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아이뒤에 숨어 있었음을 깨닫는 시간들이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고 참 많이 울었다. 영원한 아이로 남고 싶었던 마음, 학부모이자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를 대면하는게 때때론 참 비참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정도로 어른이 되고싶지 않았구나'. 그리고 그 마음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른이 되어가기로 선택했다. 


특별함에, 수치심에, 자부심에 어쩌면 하찮게 여겼던 아이의 유치원 생활. 내 그 마음이 하나씩 깨질때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믿는것과 다르면 하찮게 여겼던 그 마음이 다 티가 났겠구나..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그 때는 정말 아무도 믿지를 못했다. 선생님도 다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두려움에 내 눈이 가려져 있었을 땐, 정말 눈에 뵈는게 없었다. 이제서야 선생님들의 노고와 사랑이 보인다. 나만 내 아이를 생각했던 것이 아님을. 갇혀있을 때는 바라 볼 수 없었던, 선생님의 노고와 사랑, 그 배려가 이제야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글로나마 그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다가올 아이의 초등생활.

그 시간 속 내 내면은 

또 어떨게 요동칠지 두렵지만,

그저 아이의 곁에서

아이의 편에서

아이의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저 나는 그 시간속에서 

최선을 다할뿐.


마무리와 시작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저와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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