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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8. 2021

미디어 중독이 걱정된다면

아이가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보세요.

동영상을 보는 아이를 보면
동영상을 보는 건 아이인데,
내가 미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럴까요?

노트북을 요리조리 숨겨놓기도 하고,
갖은 핑계를 대면서 동영상 보는건 지연시켰음에도
동영상을 보고싶은 아이의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책에 충분히 몰입한 아이는,
결코 중독으로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 편하자고, 방치의 도구로
동영상을 노출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사실은 불안이 아닌 욕심이죠.
뭔가 삐까뻔쩍 있어보이는 것으로
몰입했으면 하는 내 욕심.
나의 부족한 인정욕구를 아이가 충족시켜줬으면하는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아요.

시덥잖은 장난감동영상이나 보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나요.
일어동영상이나 영어를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미치는 판에,
한글로 된 동영상을 내리 몇시간씩 보고있으니.
아이를 방치하는 것 같은 죄책감,
아이를 버려두는 것 같은 죄책감,
아이가 나때문에 망가질 것 같은 두려움,
그 온갖 감정을 대면하면서
아이를 바라보는데 미치지 않는게 다행이예요.


근데요, 아이는 볼 뿐이더라구요.
죄책감과 두려움은 나의 것일 뿐,
아이는 그냥 즐겁고, 행복해서 보더라구요.
표정을 봐보세요.
얼마나 행복한지..
눈빛을 봐보세요.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낄낄거리고 웃는 아이한테 물어보세요.
"행복해?"
아이는 망설임 없이 "응"이라고 대답할거예요.
그 대답을 들으면
정말이지 그래, 그거면 됐다 싶으실거예요.
단번에 '내 욕심이였구나'를
알아차리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가 나때문에 망가질것 같은
두려움과 죄책감을 내려놓아보세요.
우리는 신이아니기에 아이를 망가뜨릴수 없어요.
아이는 자신의 고유함으로 그저 나아갈 뿐이예요.

내 욕구를 입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우리는 화가나요.
통제하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저 참고 바라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부당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도저도 못해서 화가 나는 거예요.


내 속에 있는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행동으로 툴툴 거림이 나오고,
결국은 분노로 표현되는 거예요. 
두려움에, 죄책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요.
아이에게 거절당해도 상관없어요.
내 맘을 표현해보세요.

"엄마는 너가 이렇게 오랫동안 동영상 보면,
엄마가 너를 방치하는 것 같아서 힘들어."
"엄마는 너가 하나만 더 보고 껐으면 좋겠어"
"너가 동영상 보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엄마가 머리가 아파서 힘들어"

쿨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나와 아이 둘다 좋은 방법으로 가야해요.
좋은 부모인양, 통제없는 부모처럼 행동하고 싶지만,
내 맘이 부글부글 끓어오른채
아이에게 동영상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결국엔 이중언어가 아닐까요?

솔직하게 표현하고 요청해보세요.
"엄마가 힘들다고"
"엄마가 불편하다고"

아이는 망가지지 않아요.
그리고 아이가 원하지 않는것을 요청한다고 해서
내가 나쁜 엄마가 되는것도 아닙니다.
거절당해도 상관없어요.
엄마인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할 뿐입니다.
아이는 화가나서 입을 다물고 있는 엄마보다,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는 엄마를
더 안전하다고 느낄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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