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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8. 2021

아들을 잃어버렸다

나의 잘못을 덮기위해 아이를 원망하지 않기

저녁에 아들들과 아이스크림을 사기위해 집을 나섰다.

슈퍼로 가는 길은 두갈래, 

큰아들이 각자의 갈림길을 지나

어느 한 군데에서 만나자며 제안한다.

윤찬이가 용기를 냈다.

대견한 맘을 품고 헤어진다.

아이는 뛰어간다. 

1분이채 걸리지 않는 거리.

나는 그렇게 둘째 은찬이의 손을 잡고 

첫째를 만나러 간다.


둘째의 손을 잡고는 있지만 

카톡에 온 신경이 팔려서 무아지경이다.

그러다 어느순간 '아차'하고 정신이 든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가 아이와 만나러 가는 길임 인지한다.


허겁지겁 아이를 찾기 시작하는데

아이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도 몇명없는 그 시간에

찰나의 시간과 함께 아이가 허공으로 날아간 것 같다.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것 같아 두렵다. 

두렵다. 두렵다. 두렵다.

아이가 사라졌을까봐 두렵다.

내가 휴대폰에 빠져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자책이 밀려온다.

 

아이가 없다. 

안기도 버거운 둘째를 안고 여기저기 

'윤찬아~~~~~~~'를 외치고 다닌다.

'윤찬아~~' '윤찬아~~~'

무섭다는 말도 할 수 없을만큼 두렵다.

말하지 않아도 내몸에 딱 안겨있는 둘째는 

이미 내 불안을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다.


이제 막 엄마와 떨어지겠다 용기를 낸 윤찬이, 

아들에게 미안하다.

휴대폰에 빠져 내 아이를 보지 못한 내가 밉다.


혹시나 하는 맘에 아이를 들쳐안고 

황단보도건너 마트까지가봐도

아이가 없다.  

거리에도, 마트에도, 횡단보도에도

없다.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울고있는 아이를 상상하니 미칠 것 같으면서도,

결국 모든 것이 내 탓이 될까봐 그것이 가장 두렵다.


집으로 향한다. 

떨리는 맘으로 우리집을 보니 불이 켜져있다.

일순간 내 맘에 있던 불안이 안도로 바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두렵다.

무섭다.

그리고.... 다짐해본다.


'어디 갔었어!!!!!!!!!!!!!!!!'라고 

아이에게 윽박지르지 말아야겠다고..

내 죄책감을 털기위해

아이를 죄인으로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현관문을 여니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맘이 찢어지면서도 

아이가 집에 혼자 오겠다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미치게 고맙다.

아이를 보자마자 '괜찮다'고 아이를 토닥인다.

"집에와줘서 고마워. 다른데 안가고 집에 와줘서 고마워.

집에 돌아오겠다고 용기 내줘서 고마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이는 자기의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참을 운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고 

아이에게 다시 슈퍼에 가자고 제안하니 손사레를 친다. 

여전히 아이는 두렵다.

'엄마랑 아까 갔던 길을 가볼래?'라고 제안하니

아이는 그제야 일어선다.

 

두려웠을 아이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였음을,

너의 잘못이 아니였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두려움의 경험을 다시 재경험하면서

오늘의 경험을 '혼자가다가 엄마랑 헤어져서 두려웠어'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엇갈렸음에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자신은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왔음을

오늘의 기억으로 가져가길 바랬다.


두려웠던 경험의 '재맥락화'.

그 재맥락화를 통해 

아이는 오늘 일어난 일에서 두려움이 아닌 

자신이 해냈음을 기억했고,

때때로 올라오는 두려운 감정들을 

마주하고 표현 할 수 있었다.


'엄마 혼자 있어서 무서웠어'

'엄마 혼자 있어서 무서웠어'

'엄마 혼자 있어서 무서웠어'

이 말을 할 때마다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안아주고나니

아이는 더 이상 두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늦은밤, 아이가 퇴근한 아빠의 차가 

들어오는 알람 소리를 듣더니 

나에게 이리 말한다. 


'엄마, 아빠한테는 나 길 잃어 버린거 말하지마'


 눈치없는 애미는 또 떠벌릴려고 준비중이였는데,

저 말을 들으니 '이제는 정말로 내 품의 아이가 아니구나'

...를 다시금 깨닫는다.

끼고 돌봐야 할.. 그저 아이인줄 알았는데 

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독립된 존재였다. 


결국는 나는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쉬어가는 나무가 정도면 충분함을.....

바라보며 지지해주는 것이 내 역할의 전부임을 깨닫는다.


내 탓이 될까 두려워 참 많이도 캐물었다.

' 왜 그래?' '뭣 땜에 그런거야?'

자신의 모든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아들에게

경계없는 애미는 훅훅 많이도 찔러댔다.


한 발 물러서서 아이를 바라본다.

나와 별개의 인격체로.

아이는 결국 나와 독립된 존재임을 

아프지만 받아들여본다.

감정은 알아주되, 마음은 지켜줘야겠다.

아들이 지키고 싶은 비밀은 비밀대로 

잘 간직할 수 있도록 

그저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다려야겠다.


매순간 나와 내 아이가 크고 있음을 믿는다.

나는 이 시간이 그저 감사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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