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환상속에서 사는 책육아맘
책육아를 한답시고
아이의 책을 그렇게 사모으고,
내 책을 그렇게 사모면서도
나는 정작 책을 읽지도,
책이 나를 변화시킬거라고 믿지도 않았다.
책보다는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보았던
티비와 미디어가 더 좋았고,
책은 언젠가는 풀어야 하는..
마음속의 짐처럼 느꼈다.
책 읽는 내 모습은
나에게 환상이였기에, 꿈이였기에
가까이 하고 싶지만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꿈은 이루어 질 수 없다 믿었기에.
거실을 책 읽는 공간으로 꾸며놓고
책읽는 나를 상상하는게 좋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꺼내 읽겠다 마음먹으면
읽는 족족 문자는 날아가고,
잠이왔다.
책 읽는 그 순간에도
내가 무능함하다 느껴지니
책으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아이에게 책육아를 하면서
집에 책이 넘쳐나게되었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책을 읽어주면 책을 보았고
나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책 읽는 나에 대한 환상,
그 환상이 이루어 없다고 믿는 내가 있었기에
늘 나는 이런 의문을 품고 살았다.
'책이 진짜 인생을 바꿀 수 있어요?'
아이에게 책육아를 해준다는 명분으로
그렇게 읽어주면서도
나는 이런 의문을 품고 살았다.
책을 읽으면
기억나는 부분보다
잊혀진 부분이 많은데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책을 읽는 시간이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을 쓰다보니
나는 정말로 목적없이 책육아를 했구나,
결국 나는 똑똑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아이에게 책을 그냥 쏟아부은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런 내가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냐'에 질문에
비로소 대답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주체 일 때, 비로소 책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책이 도구라는 사실을 잊었다.
책육아를 하며
어느 순간 책이 전부가 되어버린 것 처럼,
나는 책 자체를 전지전능한
무엇으로 봤나보다.
'책'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였다.
책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선택', 그 '의지'가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였다.
책을 읽고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겠지.
내가 하은맘 책을 읽고, 푸름아버님 책을 읽고
책육아를 시작한 것 처럼.
그러나 나는 그것을 우연으로 치부해버렸기에
여전히 익숙한 tv가 더 좋았나보다.
나는 이제서야 책을 읽는 나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내 인생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니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공중에 흩뿌려지듯이 날라가던 문자들이
내 맘에 콕콕 박히기 시작했다.
책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내가 환상속에서 살아가니
책을 환상으로만 남겨두어야 했었나보다.
책 안의 녹여진 저자들의 경험이
내게 용기를 준다.
지혜를 준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비로소 책이
내 인생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