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셋의 흔들림에 대하여
많이 흔들려본 사람이기에, 언제든 다시 흔들릴 거라 예상했다. 예상이라기보다… 늘 마음 한켠에 각오하듯 품고 있었다는 게 맞겠다. 하지만 어떤 큰 일이 나를 무너뜨리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닥쳐올 땐—
마흔셋의 나이라 해도, 그저 힘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더라.
지금 나는 아주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올초 16년 6개월을 함께했던 나의 반려묘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 떠났다. 작년 여름까지만해도 신장 외에 참 건강하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신부전이 악화되고 간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면서 한달반의 짧은 투병 끝에 깊은 잠에 들었다.
스물여섯, 첫 사회생활에서 만난 아이였다. 혼자인 서울에서 언제나 내 곁에 붙어 있던 다정한 껌딱지. 그 아이를 보내고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이상 울었고, 번아웃과는 다른 이상한 몸의 반응들을 겪으며 정말 병원에 가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 존재를 떠나보낸다는 건, 단지 한 생명을 잃는 게 아니라 내 삶의 어느 한 조각이 사라지는 일이었다. 상실의 5단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을 아주 충실히 밟은 끝에 나는 겨우, ‘일상 비슷한 무언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즈음부터 회사의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3월부터 5월까지, 꼬박 3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했고 회사는 이제 단 1원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실업급여라도 받기 위해 퇴사했다. 작은 규모의 회사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방만하게 운영될 수 있었을까. 억울함과 분노, 하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백수가 되었다.
16년간 영화·드라마 마케팅 일을 하다가 ‘이제는 기획을 해야겠다’며 방향을 튼 지 정확히 1년째. 무모했고, 어쩌면 오만했던 나는 수많은 고민과 갈등 끝에 “이제 진짜 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품은 찰나였다. 하지만, 돈이 없는 회사에선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전엔 작은 마케팅 에이전시를 운영했었다. 작게나마 안정적으로, 우리만의 색으로 잘 굴러가던 회사였다. 그 회사를 접는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의아함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나는 “더 이상 마케팅이 아닌, 기획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디딘 곳이 낭떠러지였을 줄이야.
추천으로 입사했던 덕분에 마케팅 16년, 기획 0년의 경력으로도 ‘기획제작 실장’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1년짜리 경력만 남았다. 다시 그런 기회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닿았다. 처음에는 '회사를 차리겠어!'라고 호기롭게 외쳐봤지만, 얼어붙은 투자 시장에서 최신 기술력으로 뭘 해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신생 제작사로서 투자금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이쯤되니 화살은 스스로에게 향했다. 나는 왜 2년짜리, 3년짜리 경력만을 쌓아왔는가. 조직을 거부하는 것은 '안될 것 같아서' 회피 성향이 발현된 걸까. 나 도대체 할 줄 아는게 뭔가. 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지? 분명 일에서 재미를 찾는 나였는데...
'기획'을 하고 싶어!!라고 외칠수록, 회사를 차릴거야!라고 선언할수록 자꾸자꾸 의심이 피어오른다. 진짜 하고 싶은게 맞아? 니가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는 것 같은데? 차리고 싶다고 회사가 차려져? 누가 너한테 투자를 해주겠어?
나는 지금, 넘어진 게 쪽팔려서 고개도 못 들고
무릎 꿇은 채 땅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무엇이든 남기기로 했다. 분명히 나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만들고 쌓아왔던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내 과거를 부정하고, 나를 부정하고, 시간과 노력을 열심히도 부정하다못해 비난하고 있다.
지금 나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너무 싫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글은 점점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여정이 될 것이다. 과거의 빛났던 나를 파묘하는 날도 있을 것이고, 언젠가 있을 어떤 형태로의 성취도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싫어서 쓰기를 다짐한다. 나는 나를 덜 미워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