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앞에서 울어버리기
가만히 있으면 계속 자책을 하게 되어서 그걸 끊어내는 방안, 그러니까 '행동'의 일환으로 심리 상담을 예약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다.
43살 현재 미혼에 애인이 없는 나는 MBTI로 따지면 f인 사람으로서, 나보다 더 F인 아버지와 T... 중에서도 왕T인 어머니 사이에서 단 한번도 나의 힘듦을 토로하며 위로 받아본적이 없었다. 친오빠랑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래서 전문가와 만나보면 어떨까, 아니 사실은 큰 기대까진 없었지만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행위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의 이 상태의 시작을 '고양이와의 이별'로 보고있는데, 그러다보니 상담 선생님이 어떤 질문을 해오자마자 눈물콧물이 터져나와버렸다. 그래서 알았다. 아, 아직 이별이 끝나지 않았나보다... 상실의 5단계 중 '수용'까지 잘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슬픈 감정이 아직 진하게 남아있었나보다.
내가 26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함께했던 내 껌딱지... 알고보니 성인이 된 이후의 내 '애착 인형' 같은 존재였다는걸 깨달았다. 그 아이가 내 무릎에, 가슴팍에 올라와있거나, 팔을 베고 누워있던 시간... 변함없이 아기같은 외모 때문에 영원할 것만 알았던 그 털뭉치가 사라져버린 것... 조건없이 언제나 나에게 온기를 나눠주던 존재의 부재는 나를 지탱하던 '애착'이라는 큰 기둥이 무너져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이 회사의 재정난... 3개월치 월급과 퇴지금을 한 푼도 못 받는 상황이 경제 시스템을 붕괴시켰고, 그렇게 나를 지탱하던 축들이 무너진 상태에서 나는 지금 아주 형편없어졌다.
앞서 가족 얘기를 했었는데, 내가 정서적으로 기대지 못하는 것 또한 내가 만든 관계라는 것도 알게 됐다. 물론 어려서부터 서로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거나, 이해하고 위로하는 가족 분위기가 아니었다. 권위적이면서 감정적인 아버지, 순종적이면서 이성적인 어머니... 부모님에게 따지거나 화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고, 각자의 이야기만 하기에 나를 주제로 한 대화가 불가능한 우리집.
거기에 어려서부터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한 적 없었고, 특히 아이는 낳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나는 부모님께 경제적이든, 정서적이든 의지할수록 그분들께 어떤 '도리'를 다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뭐든 알아서 하는 방향을 택했었다. 이직도, 이사도 다 결정 후 통보. 결국, 의지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내가 더 강화시켰던 것이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면 또한 다시 깨달았다. 예를 들어 모두가 너무나 힘들었던 회사 생활에서 과도한 업무로부터 팀원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부분에서 상담 선생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순간 팀원 개개인들도 그걸 이겨내려 각자의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모든 개인은 자신을 위해 산다고. 죄책감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너 스스로 큰 노력을 했을거라 여겨진다고. 너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고.
이제 10년도 다 되어가는 얘기지만, 그 팀원들과 관계가 결과적으로 나빠진 것도 아니었는데... 그들도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그들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시절 나는 나를 끊임없이 의심했었다. '내가 이 팀의 팀장이 아니었다면?', '그때 이런 의사 결정을 했었더라면?' 등등.
한시간의 대화를 통해 선생님은 내가 예민하고, 자책하며, 과도하게 책임감을 느끼는 등 나의 기질을 어느 정도 파악하셨다. 다행이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을 따라 '버터플라이 허그'라는 이름의, 양팔로 스스로를 감싸고 한손씩 토닥토닥 나를 감싸주는 행위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을 따라 "ㅇㅇ아, 괜찮아, ㅇㅇ아, 사랑해" 등 나에게, 그리고 떠난 고양이에게 사랑한다고, 괜찮다고 소리내 말했다.
솔직히 그게 대단한 어떤, 위로감을 느끼게 해주진 않았다. 이미 나의 고양이가 떠나던날 밤, 밤새도록 귓가에 속삭여줬던 말들이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다시 만나자"였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다른건 몰라도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다시 만나자" 이 말을 들으면 나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거라 생각할정도로 밤새 반복해서 귓가에 속삭였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줬었다. 하지만 뭐든 잘 안돼서 심리상담 센터를 찾았던거다...
한번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처음보는 타인 앞에서 한참을 울고,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 행위 자체에서 조금은 후련함을 느꼈다.
그 후련함을 원동력으로 일과 관련된 제안서를 다듬고, 미팅을 다녀왔다. 그 미팅에서도 나의 절박함이 드러났는지, 상대방은 나에게 매우 정중하게 "선을 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너의 권리는 계약서 등의 문서로 꼭 챙겨라" 등의, 필요한 조언을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아니었다. 하지만 귀가 후 다시 나는 동굴로 들어와 몇 시간이나 또 스스로를 혐오했다. 자책과 인정과 다짐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반복되는 패턴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잘 자고 일어나는 것 밖에 없다. 부디 내가 뒤척이지 않고 편안한 수면에 이르기를. 이 불쾌감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오늘도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