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는 날

정신과 상담 2회차

by Two Legged Creature
비교적 명확한 우울증입니다.


지난 주, 친한 지인의 권유로 정신과를 찾았다. 지인은 사람의 몸과 음식에 대해 연구하시는 분인데, 그 분의 눈에는 내 상태가 걱정된지 꽤 되었었나보다.


'약에 의존하게 될까봐'를 이유로 병원엔 안 가고 싶었었다. 내 주변에 우울증 약을 먹는 이들이 몇 있는데 그들에게도 '너무 의존하면 안 좋을 것 같아'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더랬다.(어리석었다)


병원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그 지인의 권유가 아주 명확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1. 밥을 잘 챙겨먹고, 2. 잠을 자고, 3. 할 일을 하는 상태다. 심지어 밥도 단백질, 녹색 채소 등을 고려해서 먹고있고, 잠은 7~8시간을 지키려 한다. (줄이려고도 해봤지만 허약한 내 체질의 한계다)


아무튼, 일상 생활 면에서 어느 정도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에 멘탈 이슈는 자율신경계, 교감신경 등의 기능 때문이므로 이것은 약을 먹어 치료될 것이라는 것.


평양냉면집에서 냉면을 먹으며, 이런 얘기들을 듣는데 또 국물에 눈물을 한사발 빠뜨렸다.


그날 바로, 집 근처에 예약 없이 당일 방문만 가능한 정신과를 찾았다. 나는 좋게 말하면 스스로의 성향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게 나쁘게 발현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자책하는 식으로 이어지는데 그러다보니 나름의 원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있는 상태였다. 지금의 상태를 물으시는 의사 선생님께 올 초에 오래 함께 살았던 고양이를 떠나보냈고, 이어서 회사 월급이 밀려 3개월치 월급과 퇴직금 한 푼 못 받은채 퇴사를 하게 되었고, 준비를 하고 있는게 있지만 성취 경험을 한 게 오래되었고 현재의 무쓸모를 견디기 힘들며, 술을 마시고 평소에 안 하던 실수를 하게 되고, 자주 눈물이 터지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를 눈물을 훔치며 줄줄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 약 드셔보시겠어요?"라 물었고, 나는 거기에 "저 우울증인가요..?"라고 되물었다.


조금 AI 같았던 선생님은 "비교적 명확한 우울증입니다."라는 답변을 내놓으셨다. 그리고 약을 처방해주시며 "저도 오래 먹어본 약인데 꽤 괜찮습니다."라고 하며 혹시 따라올지 모를 부작용들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래, 나는 지금 조금 아픈 거다-'


바로 약을 한번 먹어보라길래, 병원에서 나와 알약 두알을 먹고 20분을 걸어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에 도착했을 때쯤, 꽤 재밌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뭐야, 왜 생각이 안 뻗어나가?

이거 마치 머리 속에서 줄줄 새던 수도꼭지를 꽉 잠근 것 같잖아?

뭐야~~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깔끔하게 사는거야?

신기한데???


그래서 꽤 오래 우울증 약을 먹는 친구 두 명에게 "뭐야뭐야 너무 신기하다~"고 호들갑 떨며 잠깐 수다도 떨었다.


생각을 덜 하게되니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경제성이 생기더라. 그날 나는 스벅에 들렀다가 복싱을 등록하고, 집에 와서 반품할 물건이 있어 우체국까지 들리면서 만보 쯤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8일째. 처방 받은 약이 한 봉지 남았다.



외로움과 DMN


약효는 이틀째부터 조금 익숙해지더니 약간의 미식거림이 며칠 있었고, 최근 며칠은 밤새 어떤 상황이 동반되는 꿈을 꾸는 탓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내내 피곤한 상태가 이어졌다.


또 이건 약의 부작용인지는 모르겠고, 지금의 정신 상태가 고양이를 떠나보낸 이후랑 비슷한데, 약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있달까.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 얘기를 듣다가 갑자기 집중력이 약해지면서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이것은 약을 먹으니 괜찮아지더라.


우울증 진단을 받고 관련 유튜브를 이것저것 보고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와닿는 것은 DMN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리 뇌에는 쉼, 휴식과 관련된 DMN이라는 영역? 혹은 역할이 있는데 이것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과거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게 된다던가, 과도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이어지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이 외로울 때 더욱 활성화된다는 것.


1월말에 고양이를 보내고, '아, 나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딱 하나의 순간이 있었다. 당시 고양이를 간병하던 나는 긴 설 연휴 직전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이번에는 집에 내려갈 수 없다."고 말씀드렸었다. 처음에는 데리고 내려오라 하셨지만, 평소와 달리 차분하고 단호한 나의 태도에 부모님은 상황을 파악하시고 더이상 묻지 않으셨다. 내 고양이는, 설 연휴가 시작된 주말, 일요일 정오에 떠났다.


이틀을 꼬박 옆에 데리고 있다가 아이를 화장하고 유골함과 함께 시골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 곳에 있어야 할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내 고양이가 떠나기 일주일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엄마아빠는 고양이를 간병 중인 내가 영향을 받을까봐 일부러 얘기를 안 하셨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댁에서 그 아이를 보았을 때, 속으로 '그러고보니 너도 벌써 12살이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니, 어쩌면 떠날 때 언니가 못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낯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정말 마지막이었더라.


그렇게 설에 모인 사람들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추모하며 눈물을 훔쳤더랬다.


하지만 가족의 힘은 대단하다고. 그 '가족의 힘'이라는걸 절감한 며칠을 보낸 것이 내게 약이었을까 독이었을까.


슬퍼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제 명에 살다 간 거라고 생각하자'라며 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고스톱도 치자고 꼬셔냈다. 설 연휴 동안 나도 아빠, 고모와 고스톱을 신나게 쳤다. 웃기도 웃었다. 그렇게 이틀, 3일을 보내고...


다음 날이면 나는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그때는 출근도 해야했고, 집에는 둘째 고양이가 있었으니까.


그날은 점심으로 물메기탕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그 샤워기 물줄기 아래에서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부모님과 같이 밥을 챙겨먹고, 고스톱도 치고, 웃을 수 있었던 이 곳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모든 상황과 감정을 감당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그 두려움이 어떤 물리적 힘처럼 다가왔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부모님께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그때부터였다. 조금 달랐다.


서울로 올라온 나는 아침저녁 출퇴근 길마다 울었는데, 그 사이사이 잠시 머리 속이 엉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답답하고,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웠다. 둘째 고양이 건강검진 결과(이상 무!)를 들을 때도 그랬고, 퇴근 길 버스 안에서도 갑자기 머리 속에서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엉키듯 시끌벅적해져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야 정렬이 되는 듯 했다.


그때도 펫로스에 관한 유튜브를 많이 찾아봤고, 이 증상이 심해지거나 지속되면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상실의 5단계에서 '수용'과 '인정'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한 날부터 나는 괜찮아졌었다. 그때는 그랬다.


4~5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 상태가 되었다.


우울증 약은 8일치를 처방 받아왔고,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다. 머리 속에서 갑자기 어떤 수다 파티가 벌어지는 것은 약을 먹으면 괜찮아졌다.


트리거가 뭐였을까-를 되짚어보면, '아 나는 혼자 감당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막막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억텐을 끌어올리며 잘 버텨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부모님이 서울로 오신 날 아빠의 어떤 걱정의 방식이 의도치않게 내 버튼을 눌렀고, 엄마의 위로 방식이 내가 혼자임을 각인시킨 듯 했다.


사실은, 부모님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흔셋. T엄마를 둔 F의 투정인데, 그 정도로 버튼이 눌리고 멘탈이 터질만큼 좀 지쳐있었나보다.


그렇게 깨어나버린 '혼자인 감각'이 내 안의 불안을 키워버린 듯 하다. 어차피 관은 1인용이라고 생각해오던 나였는데, '존재의 외로움에 대한 불안과 공포'라는 보이지 않는 몬스터를 만나버린 것이라고 포장해보고싶다.


그래서 오늘은 또 다시 병원 가는 날.

오늘은 지난주에 갔던 곳 말고, 다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병원도 여러군데 가보는 게 좋다더라고.


어떤 선생님일지, 내 상태를 어떻게 진단해주실지도 궁금하고, 약을 받아오게 된다면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하다.


나는 분명히 안다. 나는 혼자이고, 혼자가 아니라는걸.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혼자이기에 나를 스스로 잘 보살펴야하고, 혼자가 아니기에 때로는 기대기도, 의지하기도 하면서 그 속에서 균형을 찾아야한다는걸. 그게 참 어렵지만, 오늘도 다시, 머릿속에 새겨지도록 또, 되새긴다.












매거진의 이전글생전 처음 심리 상담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