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해도 싸울 일은 확 줄어요
바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동거나 결혼을 하면 기본적으로 같이 살 집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집을 구하는 것에 있어 많은 대화를 나눴고 어느 정도 기준점에 합의를 보았다.
첫 번째 현재 살고 있는 집보다 커야 한다. 그의 살림과 나의 살림이 합쳐져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집에 그의 물건이 반정도 와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커야 했다. 우리 집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베란다는 반이상을 창고로 사용하고 있고 물건이 뒤죽박죽이다. 적어도 투룸은 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침실과 옷방은 따로 구분했으면 했다. 사실이건 두 번째 이유고 싸울 때 각자 공간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소곤소곤) 이건 별표 돼지꼬리 땡땡이니 꼭 기억해 두자. 나중 싸움 편에서 다루겠다.
두 번째 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면 좋겠다. 사실 이 부분은 서울 아니고서야 지방에서 완벽한 인프라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어렵다. 광역시의 중앙에 살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으나 우리가 지방으로 이사 가는 마당에 무슨 인프라를 찾나 싶겠지만 나에게는 중요하다. 왜냐면 나는 정말 답도 없는 슈퍼 깡촌에서 무려 7년을 살아봤기 때문이다. 밤에는 고라니가 사람처럼 비명을 질러댔고, 자전거를 타면 그 옆으로 같이 뛰어다녔다. 산책하다가 멧돼지 너구리가 발견되는 곳이었다. 21세기에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내가 직접 목격도 하고 친구들도 겪은 이야기다. 벼 밖에 없는 시골 그 자체에 대학교 대학원 지어놨기 때문에 전원기숙사였다. 말 다했다. 새벽에 배가 고파도 간단한 컵라면도 사지 못했고, 답답한 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지 못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편의점이나 마트였다. 아참 명심할 것은 혼자 살 때보다 장을 두 배 이상을 봐야 하니 대형마트들의 배송 시스템을 고려해야 한다.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있으면 좋다. 요즘 온라인에서 장을 보고 4만 원 이상이면 무료배송이 되는 세상이니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싶다. 아 그리고 집 주변에 그와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공원이 있으면 좋겠다. 역시 사람은 초록초록이들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 숲의 대단한 피톤치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녹색은 보고 살고 싶다.
세 번째 거실 전망이 트여있으면 좋겠다. 엄청난 바다뷰나 고층의 항공뷰 같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앞에 있는 건물과 적어도 거리는 확보가 됐으면 한다. 전부터 앞에 건물이 막혀있거나 창이 너무 작아서 하늘을 반틈만 볼 수 있거나 이런 집에서 살다 보니 많이 답답했다. 정말 거실 문을 열면 바로 앞건물의 벽돌이 보이는 집도 허다했다. 심지어는 거실문을 열면 앞건물 안방이 마주 보고 있어 문 열고 하이파이브가 될 정도도 있다. 아무리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쫌... 이제는 적어도 앞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면 좋겠다.
네 번째 복층은 절대 놉이다. 이것은 그가 복층을 살아봤기 때문이다. 복층에 로망이 있던 그는 20대 후반에 복층의 꿈을 실현시켰다. 좋았던 것은 딱 일주일뿐... 그는 복층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난방과 공간활용을 꼽았다. 층고가 높아져 개방감은 있을지언정 그 공간만큼 다 데우려면 난방비가 어마무시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평소에 틀었던 보일러 온도보다 훨씬 높게 설정을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일하고 왔는데 2층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것이다. 주로 손님 올 때 나 쓰고 창고로 전락해 버렸다고 했다. 비싼 돈 주고 창고를 굳이 내 머리 위에 지은 셈이다. 나도 복층 숙소를 여러 번 써본 결과 나와 맞지 않았다. 복층은 우선 천장과 가깝기 때문에 공간이 갑갑했다. 눈을 떴는데 왜 천장이 코앞에 있는지 이것은 마치 벽이 나를 찌부시키기 1초 전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2층까지 올라가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구부정하게 다니는 자체가 너무 불편했다. 이건 뭐 직립보행도 아니요 4족 보행도 아니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어정쩡하게 허리만 혹사당했다. 물론 예쁘게 꾸며놓고 자신의 아지트처럼 잘 사용하는 사람도 더러 보았다. but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아 무조건 복층은 놉이었다.
다섯 번째 남향일 것. 이건 정말 필수 중에 필수다. 북향집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가? 북향집에서 사람이 살면 사람이 곪는다. 기본적으로 햇볕이 안 들어와서 사람이 하루종일 우울하다. 겨울에는 죽을 맛이다. 나는 집안인데 밖에 서있는 듯한 공간을 초월하는 기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그 당시 1.5룸인데 난방비가 13만 원씩 나왔다. 플러스 북향집은 곰팡이가 잘 핀다. 왜냐? 해가 없으니 마르지를 않는다. 락스와 자외선 살균기가 필수템이다. 오죽하면 친구가 살균기를 선물해 줬다. 고맙다 친구야 지금도 잘 쓰고 있어. 사랑한다. 이렇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에게 큰 영향을 받는 미약한 생물이다. 그 뒤로는 남향, 남서향 남동향을 살아봤다. 집에서 오전 시간에 활동이 많은 사람들은 남동향을 추천하고 오후 시간에 활동이 많다면 남서향을 추천한다.
여섯 번째 신축일 것. 신축에서도 살아보고 구축에서도 살아봤는데, 역시 뭐든지 새것이 좋더라. 예전에 돈 아껴보겠다고 구축에 들어갔다가 교체하고 수리해야 하는 것만 한가득이었다. 물론 집주인 보일러 에어컨 수리비를 지불해 주지만 그 외에 나머지 것은 전부 임차인인 내가 다해야 한다. 하수구에서 심하게 냄새가 올라왔다. 오래된 구축은 거의 다 그럴 것이나 이 원룸은 심했다. 특히 여름철에 올라오는 하수구냄새는 트랩을 설치해도 위에 뚜껑을 덮어놔도 열기와 함께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결국 집주인에게 이야기하고 배관설비전문가를 불러 문제를 해결했다. 그 과정이 무려 2개월이나 걸렸다. 나는 매번 연차를 써야 하고 그분과 시간을 잡아야 하고 옆에서 일일이 설명을 들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보일러 고장 수도꼭지 물샘 변기 갈라짐 등등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이후 절대 구축은 들어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밖의 생활을 15년쯤 해가니 어느 정도 집에 대한 부분은 도가 트기 시작했다. 그도 나와 같은 입장이라 이런 부분은 금방 합의가 되었다. 물론 그는 더 열악하게도 살아봤기에 구축도 상관없다고 했으나 나와 같이 사는 시작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맞다. 공간에 대한 부분은 내가 더 예민하다. 혼자 살면서도 매년 더 쾌적한 집으로 이사를 다녔다. 이번에도 지금보다는 쾌적했으면 한다.
그동안 상대가 어떠한 집에서 살아봤는지, 주거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뭔지 상세히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이러한 대화는 서로 살아온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한쪽이 알아서 다 해라고 말하는 편이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같이 상의를 해서 정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상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내가 괜찮은데 어떤 부분은 상대방이 안 괜찮을 수 있다. 함께 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첫 단추다. 분명 이야기하다 보면 같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긴다. 그것을 잘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기준점이 확실히 생긴다.
아참 무엇보다 0순위인 것은 서로의 예산이다.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서로 감당이 가능할 정도의 집을 골라야 한다. 집에 대한 가치관에 따라 매매를 원하는 사람, 월세 전세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와중에 대출이 싫은 사람, 월세 전세의 금액 등등 정말 나눌 대화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살 결심을 하고 집을 보러 다니게 되는데....
과연 그 꿈은 이루어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