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강남 S백화점 1층에 입점한 브랜드명을 나열해놓은 웹사이트를 보고 있다면 아마 월급루팡으로 오해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회사에서 이 행동을 한 뒤 ‘前 카피라이터입니다’(이 매거진의 다른 필자, 이하 前카피)에게 말하자 前카피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고 말하며 자기도 적용하겠다고 했다.
이 행동은, 그러니깐 내가 ‘레퍼런스’를 찾을 때 생각해낸 업무 아이디어다. ‘레퍼런스’, 광고회사에 입사하고 단언컨대 가장 많이 들은 외국어다. ‘레퍼런스’는 아이디어를 낼 때 참고할 만한 영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양한 국내, 해외 브랜드들이 앞서 집행한 캠페인 영상이나 광고 영상, 혹은 드라마나 영화 속의 장면 등 광고 제작에 참고할 만한 모든 영상 자료를 통칭하는 단어다. 강남 S백화점 1층에 입점한 브랜드 명을 하나하나 비메오나, 유튜브 등 영상 검색 사이트에 쳐보면 그 브랜드의 광고 영상 등을 볼 수 있었고 이것은 나름 나의 ‘레퍼런스 찾기’ 꿀팁이었던 셈이다.
입사 초, ‘레퍼런스를 찾으라’는 상사의 말이 그리 좋진 않았다. 솔직히 ‘베끼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고, 아이디어란 발명하는 것이지 발견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건방지게도 그저 내 머리 하나로도 좋은 카피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알게 됐다. 모든 아이디어는 결국 원래 존재하던 방대한 데이터에서 무언가를 끌어내어 재가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파고의 대국이 있던 날(입사 만 1년 6개월 차), 창의적인 일만은 인간이 더 잘할 거라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빅데이터가 창의적인 일도 인간보다 더 잘 할 것 같은데? 많이 알고, 많이 보고, 많이 읽어야 거기서 또 새로운 게 생각나거든.”
가끔은 하루에 3000개 이상의 영상을 볼 때가 있다. 운 좋게 한 번에 적절한 레퍼런스를 찾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으니. 또 가끔은 기존에 집행된 카피를 계속 따라 써보는 날이 있다. 무엇을 써보아도 새로운 카피에 적용할만한 아이디어의 단초를 주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힘들었지만, 결국 방법은 끝없이 영상을 또 보는 것, 뭐라도 계속 읽어보는 것뿐임을 결국 나도 받아들였다.
어쩌면 광고 만들기란, 뉴턴처럼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멀리 바라보는 우아한 창조’가 아니라, 거대한 숲에 숨어있는 적절한 약초를 찾아나가는 고된 어드벤처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어느 날 “심 봤다!”를 외칠 날을 기다리며.
Written by 전, 카피라이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