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존중 대신, 신뢰와 기대가 무너질 때 터져 나오는 대중의 분노가 담긴 표현이다. 그런데 기자 개인이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해 이 낙인을 얻게 되는지는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 사례를 떠올려보자. 어느 기자가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일정을 굳이 꺼내 질문을 던졌다. 투명한 언론 활동이라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이는 공개석상에서 지켜야 할 기본 취재 윤리를 벗어난 것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공적인 자리에서 해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이는 곧 기자 개인의 전문성 부족으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비판이 이어지자 그 기자는 스스로 성찰하거나 사과하기보다, 대변인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택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기보다는 자기 보신에 치중한 행동으로 읽히면서, 대중의 반감은 더 거세졌다. 결국 사람들은 “이쯤 되면 기레기 아니냐”는 냉소를 내뱉게 되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기자가 ‘기레기’라 불리는 과정은 단순히 잘못된 보도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반성하지 않는 태도, 공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 그리고 대중이 기대하는 윤리적 기준을 저버린 순간에 낙인은 굳어진다.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이 워낙 높기 때문에, 개인의 실수는 곧바로 집단적 상징이 된다. 그래서 일부 기자의 행동은 전체 기자 집단을 욕먹게 만들고, 언론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한 번 붙은 낙인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언론을 향해 쌓아온 분노와 불신이 응축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떻게 이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첫째, 투명한 보도 과정 공개가 필요하다. 기사가 어떤 취재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어떤 근거로 사실을 확인했는지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작은 노력은 신뢰를 회복하는 시작점이 된다.
둘째, 실수에 대한 겸허한 인정과 빠른 시정이 중요하다. 모든 기자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수를 했을 때 억울하다고만 주장하거나 법적 대응에만 의존하면 여론은 등을 돌린다. 반대로 책임을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보여주면, 비판은 줄고 신뢰가 쌓인다.
셋째, 기자의 전문성 강화와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단순히 속보 경쟁에 몰두하기보다,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는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자 개인의 역량이 곧 언론 전체의 신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넷째, 언론사 차원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클릭 수에 매달리는 보도 관행, 광고와 기사 경계가 모호한 현실, 정치 권력과의 유착 관계는 결국 또 다른 “기레기”를 양산한다.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개인이 아무리 성실해도 전체 낙인은 반복된다.
나는 언론 관련 단체에서 자문 활동을 했고, 또 연구자로서 뉴스 분석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 경험 속에서 확인한 사실은 명확하다. 한국 사회에서 “기레기”라는 낙인은 단순히 몇몇 기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언론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구조적 실패의 결과라는 점이다.
대중은 언론이 사회적 감시자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이나 이해관계에 휘둘린다고 느낄 때, 그 분노를 특정 기자 개인에게 집중시킨다. 그래서 한 번의 행동이 전체 기자 집단의 문제로 확대되고, 결국 언론 전반에 대한 혐오로 확산된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는 대표성 편향과 일반화 오류가 작동하는 전형적 현상이다. 일부 기자의 잘못을 언론 전체의 속성으로 일반화하고, 그 대표 사례에 “기레기”라는 낙인을 덧씌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이미 언론에 대한 신뢰 기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기레기”라는 단어는 한 개인을 욕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 전체의 언론 불신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특정 기자가 낙인을 받는 과정은 결국 언론 전반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낙인을 지우는 유일한 길은 성찰과 변화다. 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언론 전체가 책임을 자각하고 변화를 선택할 때, 비로소 “기레기”라는 말은 서서히 힘을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