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료, 멘토링, 중간 운영 조직의 혁신을 고민하면서
공공 자문회의에 몇 번이라도 앉아본 사람은 안다. 회의가 열리기 전, 수십 쪽짜리 자료를 읽고, 빠르게 변하는 산업 맥락을 붙들어 해석하며, 현장의 저항과 실행의 난점을 가늠한다. 그러나 그 준비의 시간은 대개 기록되지 않는다. 회의는 정해진 틀대로 흘러가고, 방 안의 공기는 무난한 합의와 안전한 발언으로 채워진다. 회의가 끝나면 돌아오는 것은 오래된 단가표에 묶인 ‘수고비’ 한 장이다. 자문료가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전문성은 의전으로 대체되고, 회의는 면피의 절차로 전락한다.
이 글은 자문료의 현실화, 공공 자문 시스템의 전문성 회복, 창업가·학생을 위한 자문 체계의 재설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키운 중간 운영조직의 문제를 함께 짚는다. 마지막으로, 자문 시스템을 좀먹는 낡은 서류 문화—같은 자료를 반복 제출하고 종이로 출력하는 관행—을 근본부터 손보자는 제안을 덧붙인다.
자문료 문제는 단순히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 보상이 건네는 사회적 신호가 문제다. 낮은 자문료는 곧 “당신의 지식과 시간은 존중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현업에서 바쁘게 뛰는 전문가일수록 이 신호에 민감하다. 그들은 참여를 주저하거나, 최소한의 형식적 기여에 그친다. 반대로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운 사람들, 행정과 관계를 맺어온 익숙한 인물들이 자리를 채운다. 회의의 깊이는 얕아지고, 정책의 방향을 바꿀 만한 발언은 사라진다. 그 빈자리를 장면과 행사, 사진과 보도자료가 메운다.
자문료가 현실화되지 않는 배경에는 두 가지 힘이 버티고 있다. 경직된 규정과 리스크 회피다. 단가표는 수년째 업데이트되지 않고, 담당자는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감사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규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사람은 위험을 떠안지 않는다. 그러니 관성대로, 관행대로, 무난하게 흘러간다. 그 무난함이 전문가를 회의실 밖으로 내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형식적 회의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실제로는 내부 검토만으로 충분한 절차 변경, 서식 손질, 이미 합의된 지침의 확인까지 자문회의로 끌어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문가 의견을 들었다”는 증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증빙은 실패했을 때의 방패다. 그러나 그 방패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의 시간은 소모되고, 현장 담당자는 회의 준비와 사진 촬영, 보도자료 작성에 시달린다. 회의가 늘어날수록 남는 것은 종이뭉치와 기록뿐이고, 줄어드는 것은 집중과 실행이다.
위원회 구성도 문제다. 교수와 은퇴 관료 중심의 위원회는 신분과 권위의 안전지대다. 명단을 올리기 쉽고, 책임을 분산하기 좋다. 그러나 실행의 난제를 해결할 사람들은 바깥에 있다.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나고, 규제의 벽에 부딪혀 본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원회에 불러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공적 회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발언이 일방향으로 흐르거나, 자신의 경험을 과도하게 일반화해 균형을 잃는다. 몇 차례의 어수선한 경험 이후 행정은 다시 안전한 선택으로 되돌아간다. 전문가 생태계는 이 진자운동에 지친다.
창업가와 학생을 위한 자문·멘토링 프로그램도 사정은 같다. 각종 경진대회, 선도대학, 정부 지원 사업에는 멘토링이 필수처럼 붙는다. 그러나 멘토 선정은 불투명하고, 일정은 “횟수 채우기”에 맞춰 배치된다. 창업가는 보고용 멘토링에 시간을 쓰느라 제품과 시장 검증이 뒷전으로 밀린다. 학생 대상 진로·창업·취업 멘토링도 비슷하다. 실질적 도움보다 행사와 기록이 앞서고, 보상은 열악하며, 기준은 모호하다. 멘토가 존중받지 않으면 조언은 얕아지고, 프로그램은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끝난다. 이 영역에서 자문료의 저평가는 더욱 치명적이다. 전문가가 떠나면 남는 것은 원론과 당부뿐이다.
이 모든 흐름에 기름을 붓는 존재가 있다. 중간 단계의 운영조직이다. 정부는 직접 실행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산하기관, 중간지원기관, 협단체에 사업을 위탁한다. 출발은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조직들은 명단과 일정, 절차와 성과 지표를 쥔 게이트키퍼가 된다. 전문가 풀은 그들의 장부 안에서 관리되고, 배분되고, 회전한다. 측정하기 쉬운 것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고, 측정하기 위해 더 많은 회의와 서류가 늘어난다. 운영비와 행사비는 커지고, 전문가에게 돌아갈 자원은 줄어든다. 필터는 두꺼워지고, 현장의 목소리는 약해진다.
자문 시스템의 낙후성은 기술 문제보다 불필요한 서류 남발에서 비롯된다. 같은 서류를 형식만 바꿔 반복 제출하고, 이미 제출한 자료를 다시 종이로 출력해 내야 하며, 부서가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요구된다. 기업은 사업자등록증, 재무제표, 경력증명, 실적표를 여러 기관에 여러 번 제출하고, 전문가는 학위·자격·논문·발표 이력을 반복해서 묶는다. 그 종이는 다시 전산에 입력되고, 또 다른 폴더에 보관된다. 부담은 기업과 전문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관도 같은 데이터를 반복 처리하느라 예산과 인력을 낭비한다.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이중·삼중의 비효율이 제도화된 셈이다.
자문료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로 바꿔야 한다. 물가와 최저임금, 전문직 시세를 반영하는 자동 조정 규칙을 제도화해야 한다. 주기적으로(예: 2~3년마다) 단가가 자동 업데이트되도록 만들면 담당자가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가 없다.
지급 구조는 단순해야 한다. 회의 참석, 사전 검토, 주제 발표·보고서 제출, 종합 검토의 네 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에 시간대역을 곱해 자동 정산한다. 증빙은 디지털로, 과정은 간명하게, 비용은 투명하게.
사소한 절차 변경과 서식 손질은 서면 검토나 온라인 의견 수렴으로 충분하다. 창업·학생 멘토링도 “횟수 채우기” 관행을 없애고, 핵심 세션과 과제 기반 피드백으로 전환해야 한다.
모든 자문을 추적하면 과부하가 걸린다. 전수조사가 아니라 표본으로 한다. 대표성 있는 일정 비율만 뽑아 정책 반영 정도, 실행 변화, 학습 효과를 점검한다.
자격증 하나가 아닌 경력·성과·저술·논문·평판을 모두 담는 입체적 프로필이 필요하다. 최신성 가중치를 두어 최근 활동을 중시하고, 자문이 끝날 때마다 짧은 루브릭 평가를 기록해 평판이 누적되게 한다. 이 DB와 자문료 지급을 직결시켜 중간조직의 권력을 줄이고, 전문가와 수요자가 직접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국가 통합 제출 DB를 만들어 한 번 제출한 서류는 유효기간 안에서 재사용되게 해야 한다. 전자문서와 전자서명을 표준으로 인정하고, 반복 제출 요구를 시스템이 차단하도록 설계한다.
창업 멘토는 실제 창업 경험이, 학생 멘토는 산업 전환·현업 과제 설계 경험이 데이터로 기록돼야 한다. 멘토링을 봉사가 아니라 전문 서비스로 간주해야 한다. 프로그램은 횟수가 아니라 산출물로 평가해야 한다. 물론 산출물에 대한 비용을 충분히 지급하면서.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누가 전문가를 존중하는가. 자문료 한 장에, 종이 서류 한 뭉치에, 사진 몇 장의 기록에 전문가의 시간이 갇혀 있다면, 우리는 아직 존중하지 못한 것이다.
자문료를 산식으로 현실화하고,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서류를 없애고, DB로 연결하자. 그 작은 전환이 신호를 바꾼다. 신호가 바뀌면 사람과 시간이 움직인다. 그리고 사람과 시간이 움직일 때, 공공 자문은 의전의 장면에서 실행의 설계로, 면피의 절차에서 사회적 합의의 도구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