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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결론의 유혹과 부작용

by 두드림

불완전한 결론으로 의논을 시작할 때 생기는 보이지 않는 부작용들


우리는 일을 하다 보면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일단 내 방식대로 결론을 내고 결과를 만들어 갈까, 아니면 괜히 헛걸음하지 말고 먼저 요청자와 의논부터 할까?”

겉보기에 후자는 훨씬 더 안전해 보입니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요청자의 의도를 빨리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잘 보이지 않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불완전한 결론만 가진 채로 의논을 시작하면, 단기적으로는 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 협업, 성장 모든 면에서 큰 부작용을 낳습니다.


1. 책임을 미루는 듯한 인상

불완전한 결론은 결국 “저는 여기까지밖에 못했고, 나머지는 요청자가 판단해주세요”라는 메시지와 비슷합니다.
작업자의 마음속에서는 “괜히 잘못했다가 혼나느니, 미리 물어보자”는 안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청자의 눈에는 책임을 지지 않고 결정을 떠넘기는 태도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맡은 직원이 아무 분석도 하지 않은 채 “이 지표를 쓸까요, 저 지표를 쓸까요?”라고만 묻는다면, 요청자는 “스스로 고민은 해봤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런 태도는 신뢰를 줄이고, “스스로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낙인이 찍힐 위험이 있습니다.


2. 대화가 추상적으로만 흘러간다

의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체성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결론만 들고 오면 대화는 금세 추상적으로 흐릅니다.
“이 방향도 가능하고, 저 방향도 가능하다”라는 말이 반복될 뿐, 기준점이 없으니 결론은 모호해집니다.

반대로, 설령 틀린 결과라도 “이렇게 해봤는데 이런 문제가 생기더라”라는 초안이 있다면, 대화는 훨씬 빠르게 현실적인 지점으로 내려옵니다. 추상적인 가능성의 세계에서 맴도는 것과 실제 시도에서 배운 구체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3. 요청자의 부담이 커진다

요청자가 원래 기대하는 것은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입니다.
그런데 불완전한 결론만 들고 가면 요청자는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왜 이 일을 하기로 했는지, 어떤 방향이 맞는지,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

결국 요청자가 판단자에서 작업자의 공동 작업자가 되어버립니다. 이는 요청자의 리소스를 불필요하게 소모시키고, 협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립니다. 요청자는 점점 피로감을 느끼고, “왜 내가 이 일을 다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4. 시행착오를 피하려다 오히려 늘어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시행착오를 피하려고 시작한 행동이 오히려 더 많은 시행착오를 낳습니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결론은 추가 가정과 가설을 계속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논의가 길어지고, 방향이 자꾸 바뀌고, 결국 여러 번 재작업을 하게 됩니다.
만약 작업자가 작은 시도라도 했다면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었을 문제를, 불완전한 결론만으로는 몇 차례나 반복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즉, “안전하게 가겠다”는 선택이 결국 “더 많은 시행착오”라는 역설로 돌아옵니다.


5. 성장 기회를 잃는다

일은 단순히 성과만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시도하고, 실패하고, 피드백을 받아서 다시 개선하는 과정에서 작업자는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불완전한 결론만 들고 의논한다면, 이 학습 과정은 사라집니다.
작업자는 늘 요청자의 판단에 의존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 판단할 힘을 기르지 못합니다. 장기적으로는 팀 내에서 의존형 인력으로 남게 되고,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6. 조직 문화가 위축된다

만약 팀원 모두가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조직은 점점 “먼저 시도하지 말고 물어봐라”라는 문화에 갇히게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결과보다 의견 조율을 우선시하며,

혁신보다는 안전을 선택하는 조직.


결국 아무도 선뜻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지 않고, 작은 실험조차 꺼리게 됩니다. 그 결과 조직은 안정적일지 몰라도 정체되고 무기력한 팀으로 변해갑니다.


작은 시도라도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의 시도, 초안, 작은 실험 결과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것이 있어야 대화는 구체적이 되고, 요청자는 더 날카로운 피드백을 줄 수 있으며, 작업자는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결론은 ...

불완전한 결론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패처럼 보이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부작용을 많이 남깁니다.

신뢰를 잃게 하고,

대화를 추상적으로 흐르게 하며,

요청자의 부담을 늘리고,

시행착오를 오히려 늘리고,

성장 기회를 앗아가고,

조직 문화를 위축시킵니다.


따라서 의논 자리에 가져가야 할 것은 불완전한 결론이 아니라, 불완전하더라도 나름의 결과물입니다.
결국 협업은 빈손으로 시작하는 대화가 아니라, 작은 시도에서 출발하는 대화일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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