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과정과 교육 시스템이 남긴 그림자
직업의식 약화라는 분명한 현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직업 태도를 두고 “왜 이렇게 금방 포기하는가”, “왜 쉽게 이직을 선택하는가”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단순한 기성세대의 불평으로 치부하기에는 근거가 분명하다. 공무원 사회에서 2년 차의 이직 의향이 두 배 이상 치솟고, 대기업에서도 신입사원의 3년 내 퇴사율이 30%를 넘는다. 스타트업에서는 더 빠르다.
직업에 대한 충성도, 인내심, 책임감이라는 전통적 직업의식의 기준으로 본다면, 젊은 세대의 직업의식은 분명히 약해졌다. 긴 호흡으로 버티며 한 직장에서 전문성을 축적하는 모습보다, “맞지 않으면 떠난다”는 태도가 일반화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요즘 청년들이 버티질 못한다”고 말하는 건 부정확하다. 직업의식 약화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주입된 가치관의 결과다. 그리고 그 성장 과정의 가장 중요한 배경에는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있다.
첫째, 성과 = 점수라는 등식이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성적을 위해 달려왔고, 좋은 성적은 곧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으로 연결된다는 공식 속에서 살았다. 여기서 ‘직업’은 스스로 성찰하며 발견하는 의미 있는 활동이 아니라, 경쟁의 최종 보상으로만 인식되었다.
둘째,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남았다.
노력과 성실함은 점수 앞에 무력했고, 성적이 낮으면 과정은 변명으로 취급되었다. 이 경험은 직업 세계로 이어졌다. 반복·숙련·인내라는 직업적 덕목이 가치를 잃고, 즉각적 성과가 없으면 곧 “헛된 일”이라 여겨진다.
셋째, 직업관의 외주화다.
“좋은 대학만 가면 좋은 직장이 따라온다”는 신화가 직업의 의미를 가정과 학교가 대신 정해버렸다. 청년 스스로 직업의 의미를 탐구하고 설계할 기회는 없었다. 직업은 내 삶의 선택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정해주는 ‘루트’였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오랫동안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곧바로 사교육이 투입되어 부족한 부분을 보정했고, 시험에서의 낙제는 재응시와 과잉 준비로 만회되었다. 심지어 친구나 또래 사이의 갈등조차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어른이 나서서 조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젊은 세대는 작은 실패를 감내하고, 그 실패를 스스로 극복하는 경험을 거의 쌓지 못했다. 그래서 직장에 들어와 맞닥뜨리는 좌절이 종종 생애 최초의 ‘진짜 실패’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기보다는, “아마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이라며 탈출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실패에 대한 내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는 직업의식을 단단히 붙들어 줄 기초 체력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입해왔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을 선택했을 때 어떻게 책임지고 지속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학생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좇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맞닥뜨릴 어려움과 반복, 책임의 무게를 견디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의미는 늘 강조되었지만, 그 의미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외면되었다. 자율은 존중되었지만, 자율이 곧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다는 점은 교육에서 빠져 있었다. 공동체에 기여하는 직업관 역시 희미해졌다. 직업은 더 이상 사회와 연결된 책무가 아니라, 개인의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망으로만 정의되었다.
그 결과 직업은 즉각적 보람을 주고 개인의 행복을 곧바로 보장해야 하는 수단으로만 남게 되었다. 만약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직업을 버리거나 바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 성적 중심의 서열화가 학생들의 시선을 직업의 본질이 아닌 출발선으로만 향하게 만들었다. 직업은 자기 성찰과 탐구의 과정이 아니라, 좋은 대학과 안정된 직장으로 가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동시에 실패를 경험할 기회가 차단된 채 성장하다 보니, 작은 좌절에도 쉽게 무너지고 버티는 힘과 복원력이 약화되었다.
또한 스펙 경쟁은 직업을 삶의 의미나 공동체 기여와 연결하기보다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신분과 지위 확보의 수단으로 왜곡시켰다. 자율성 교육을 강조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만 주어지고 책임은 빠진 불완전한 자율만 남았다. 여기에 더해 직업을 공동체와 사회를 위한 책무로 바라보는 시각은 교육 현장에서 점차 사라졌다. 결국 직업은 사회와 연결된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피난처 삼는 안전망으로만 축소되었다.
이 다섯 가지 요소가 맞물려 오늘의 젊은 세대를 형성했고, 그 결과 직업을 대하는 태도는 점점 가볍고 불안정해졌다. 직업의식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토양 위에서 길러진 것이다.
직업의식의 약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우선 과정 중심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결과만을 중시해왔다면 앞으로는 실패와 반복의 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얻은 극복의 경험을 성적으로 인정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과정 자체를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현장 경험을 제도화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공공기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스타트업에서 실제 업무를 경험하는 기회가 교육 과정 속에 깊이 포함되어야 한다. 교실 안에서만 배운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다루면서 직업의 의미를 체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자율과 책임을 함께 가르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자율은 선택의 자유만 강조했을 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지 않았다. 프로젝트 학습이나 팀 과제 속에는 반드시 결과에 대한 책임과 사후 피드백 과정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자유와 책임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적 직업관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직업은 단순히 개인의 생계를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직업은 사회를 지탱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반이라는 메시지가 일관되게 전달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직업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고, 책임을 나눈다는 인식을 가질 때 비로소 직업의식은 단단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세대의 직업의식은 분명 약해졌다. 그것은 그들이 특별히 나약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실패를 제거하고 점수만을 강조하며 책임 없는 자유를 주입했기 때문이다.
직업의식은 단순히 오래 버티는 힘이 아니다. 실패를 견디고, 책임을 감당하고, 반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다. 이 태도는 교육과 성장 과정에서 길러져야 한다.
이제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라는 구호를 넘어, “네가 선택한 일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 교육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직업의식은 다시 단단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