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간판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간판은 오래된 색이 바래고 모서리가 닳았는데도 이상하게 멋스럽습니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가 됩니다. 반면, 또 어떤 간판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번쩍이던 것이 이제는 빛이 바래고, 글씨가 벗겨져 한껏 초라해져 있습니다. 같은 세월을 보냈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간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어떤 매장은 세월이 흐르며 더 아늑해지고, 오래된 가구와 벽이 오히려 공간에 깊이를 더합니다. 반대로 어떤 매장은 여기저기 손댄 흔적이 뒤죽박죽 섞여, 낡음이 멋이 아니라 피로함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한때 화려했지만 관리 없이 방치된 집처럼 말이죠.
이 차이를 만드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재질입니다. 금속, 목재, 주물처럼 시간이 지나며 질감이 깊어지는 재료가 있는가 하면, 저가 합성소재처럼 쉽게 변색되고 금이 가는 재료도 있습니다. 둘째, 디자인입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단순한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지만, 특정 시기의 트렌드에 기대면 몇 년 뒤에는 ‘옛날 느낌’이 되어버립니다. 셋째, 관리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질과 디자인도 방치하면 금세 빛을 잃습니다. 주기적인 청소, 보수, 코팅 같은 관리가 간판과 공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세월을 멋으로 바꿉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멋이 깊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점점 더 초라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타고난 외모보다 내면과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에게 재질에 해당하는 것은 건강과 기질입니다. 이것이 단단해야 세월이 주는 변화를 견딜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태도와 가치관입니다. 자기만의 기준과 철학을 가진 사람은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브랜드’가 됩니다. 관리와 보수는 일상의 습관입니다. 꾸준히 배우고, 관계를 다듬고, 몸과 마음을 돌보는 생활은 세월을 자기 편으로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환경 적응력—삶의 변화와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표정과 말투, 분위기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이 원리는 회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떤 회사든 시간이 갈수록 더 멋있어지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겉모습만 유지한 채 내공이 점점 사라지는 조직도 있습니다.
회사의 재질은 설립 철학과 미션입니다.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방향성이 있어야 합니다. 디자인은 회사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 브랜딩입니다. 단기 유행이나 트렌드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운영 방식과 문화를 지켜야 합니다. 관리는 관계와 기록에서 드러납니다. 고객·파트너·임직원과의 관계를 단순 거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네트워크로 유지하고, 역사와 사례를 축적하여 후배 세대에 전승하는 일입니다. 환경 적응력은 변화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힘입니다. 시장과 기술이 바뀌더라도 ‘그 회사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죠.
간판, 공간, 사람, 회사 ... 모두 세월이 지나면 ‘낡아지거나’ 혹은 ‘멋져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세월은 공평하게 시간을 주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 결과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멋있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하고 꾸준히 관리한 결과입니다. 진정으로 멋진 회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와 깊이가 더해져, “여기는 해가 갈수록 더 가치 있는 곳”이라는 말을 듣는 곳입니다.
길 위에서 오래된 간판을 바라보다가 문득 든 생각입니다.
시간이 만든 건 멋이 아니라, 멋이 될 수 있도록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쌓아가는 주체는 개인일 수도, 회사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이 우리 편이 되도록 설계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