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하나의 일을 해내고, 그 결과를 자랑하듯이 보여줬다. 그때의 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예전에는 내가 무엇인가 잘 해내면 기분이 들떴던 것 같다. 이제는 그 마음이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진다. 더는 보여줄 게 없는데, 나에게 다음 결과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쩌나. 그 작은 불안함은 곧 나를 잠식하고 괴롭힌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낸 후 퇴근 시간이 다가왔을 때 계획했던 일들을 모두 마쳤는지 확인해봤다. 지난주부터 미루는 일들이 너무 많다. 내일은 끝낼 수 있을까. 왜 이렇게 더디고 부족하기만 할까 하는 생각에 금세 마음이 우울해진다. 마음은 혼란스러움으로 요동치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삶을 즐기는 것만 같아 보인다. 나도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 말고,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한 노력 말고 내가 나여야만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한 속도로 나아가도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실험 결과가 있는지 여쭤보는 말에 “오늘은 실험을 못했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책과 불안함을 멈추고 나만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