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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지 씀 Apr 26. 2022

고교시절의 나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어땠을까.


처음 입학할 때까지는 설렜던 것 같다. 물론 그때 우리 엄마께서는 우울감에 빠져계셨다. 5지망인 학교여서 처음 들어보는 동네였고 버스로는 40분이 걸렸다. 당연히 집에서 가까운 1지망 학교에 배정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5지망인 청란여고에 입학하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설렜다.


청란여고. 학교의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시금치 색의 교복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참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돌아보니 나름대로 멋들어진 교복인 것 같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초록색 교복이 나올 때마다 우리 학교를 떠올리곤 한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엔 그렇게 크게 기억에 남는 일들이 없었다. 사실 안 좋은 추억들이 더 많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마음이 여렸기에 상처도 많이 받았고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 순간에 절친이었던 친구와 절교도 해보고 참 파란만장했다.


그럼에도 난 공부를 꽤나 잘했다. 입학할 때 심화반에 배정받았다. 심화반은 지하 1층에 있었는데 지하실 같은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야자를 한 번도 빼지 않은 학생이었지만, 심화반이라기엔 딴짓을 너무 좋아했다. 어쩔 때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다가 걸리고, 어쩔 때는 졸다가 의자가 뒤로 넘어갔는데 선생님께 걸려서 청소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추억 몇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천문 동아리였다. 처음에 신입생으로 교내 천문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는 선배 분들이 계셨다. 그 다음년에는 내가 부장이 되어서 면접도 보고, 후배들을 알려줬다. 동아리를 핑계로 야자를 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HACT라는 천문연합에도 가입했었는데, 대전의 다른 고등학교 천문 동아리 학생들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일요일마다 모여서 활동을 했다. 가장 큰 행사는 대전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관측회였다. 2학년 때 천문연합 회장이 되어서 관측회를 주최하게 되었다. 그때 스폰을 받으러 시내 학원 이곳저곳에 찾아갔던 게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기도 했고, 그렇게 돈을 지원해줬던 학원도 신기하다. 어쨌든 천문 동아리의 관측회는 무사히 마쳤고 그때의 기억은 참 반짝반짝 빛난다.


두 번째는 각종 대회에서 상장을 휩쓴 것이다. 크게 글짓기 대회와 과학 대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글짓기 대회는 교내 대회도 많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교외 백일장이었다. 국어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백일장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해서 백일장에 나갔다. 그때 당시 나가기만 하면 상을 꼭 받아왔고 그때 받았던 상금도 나름 쏠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학 대회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논문 대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소논문을 썼던 게 신기하기도 하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해양 플라스틱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주제로 소논문을 작성하고, 해당 내용을 요약해서 ppt를 발표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외에도 매번 나에게 힘을 주셨던 과학 선생님이 계셨다. 천문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셨는데 졸업할 때 페이퍼 커팅 아트를 해서 선물로 드렸던 것이 생각난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한 분은 나와 같은 아파트를 사시는 영어 선생님이셨다. 그분이 야자 감독을 하실 때마다 나를 태워다 주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참 외롭고 우울했었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빛났던 순간들이 많은 것 같다. 분명 이 글을 적으면서 떠오르지 않았어도 소중한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대학원 시절도 매일과 같이 힘든 일들이 계속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빛나는 순간들이 있을까. 문득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때는 지금보다 책임을 져야 할 일도, 혼나야 할 일도 별로 없었으니까.


지금의 나는 책임감이 늘어났고, 그만큼 부담감도 커지고 있다. 사실 오늘도 너무 힘이 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시간들도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잘 이겨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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