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다가도 뭔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러다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땐 그저 쉬고 싶어 진다. 오늘도 그랬다. 연휴 동안 드라마를 정주행 하다가 나 자신이 한심해 보여서 반려받았던 이모티콘을 다시 보완해서 심사 신청을 했다. 다시 만드는 동안 나는 일을 하기가 싫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쉬기 시작했는데 아까의 감정이 반복된다.
다가오는 내일이 두려움에도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 길뿐이다. 또 다른 길들을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만한 자신이 없다.
어떠한 일을 해도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기분은 참 슬프고 막막하다. 이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 노력하지 않으면서 삶이 달라지길 바라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안다. 이대로 계속해서 우울하기만 한다면 내일도 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
요즘에는 기대되는 일이 없다. 마치 나의 삶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삶을 지켜보는 것처럼 멀찍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달 마지막 주에는 실험실에 드디어 장비가 들어올 예정이다.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장비를 들어오기 전에 실험실을 정리해서 공간을 마련해놔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한테 말해야 하나.’, ‘장비가 실험실에 들어오게 된다면 실험 조건을 다시 잡아가야 할 텐데.’와 같은 생각들이 주를 이룬다. 꼭 내가 해야 하는 일임에도, 곧 하고 있을 일임에도 그 일들이 나에겐 모두 짐처럼 느껴지고 외면하고 싶다.
이런저런 일들로 학교 상담실에서 최근에 상담을 받을 때 내가 연구라는 걸 진로로 삼고 싶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끝까지 노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두지는 않으나, 나의 대학원 생활이 의욕이 불타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가 없다. 나의 시간들을 이곳에 버리고 있는 기분이다. 일주일 중에 그나마 설레는 일을 생각해봤을 때는 손글씨 폰트 제작을 신청해놓고 완성이 되기를 기다릴 때, 이모티콘 심사 신청을 해놓고 통과되기를 기다릴 때뿐이었다. 이런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잘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나의 미래가 너무 걱정된다.
고민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제 혼자 밖에 나서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영화를 보고, 사진을 찍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와선 사진을 보정하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당장에 털어놓을 곳이 없는 상황에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게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권미선 작가님의 책 제목처럼, <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게 크게 잘못된 일이었던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일단 잠시 자고 다시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