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미루고싶은 마음
브런치 알림이 왔다.
이번엔 좀 다른 내용인데, 글 업로드를 한 지 60일이 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매일 수행할 목록에는 브런치 글 쓰기가 들어있었는데, 60일 동안 글 하나 올리지 못했다니. 그래서 고민말고 하나 써보기로 한다.
초안-퇴고-고치기의 반복으로 좋은 글이 나온다는 걸 알지만, 어째서인지 매 번 브런치 앱을 켜고 생각나는대로 쓰고 만다. 수정하고 연습할 계획까지 세우다보면 하루가 지나가버려서, 오늘처럼 60일만에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계획 짜는 건 좋은데, 실행하기가 어렵다.
지금 맛있는 말차 라떼를 마시고있다. 말차가루를 처음 사봤는데, 한 잔에 티스푼 하나 정도만 넣어도 진하게 타진다. 믹스 커피에 뜨거운물 녹을 정도로만 넣어 잘 섞어두고, 얼음을 넣어 식힌다. 그 위로 말차가루 탄 우유를 부었다. 우유통에 말차 가루랑 꿀을 넣고 그대로 흔들었더니 아주 편하다. 카푸치노처럼 거품도 생겼다.
어제는 <칠성 조선소>에 갔었다. 원래는 <비단 우유차>에 갈 생각이었는데, 가게 사정으로 일찍 마감했다.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나와서 무작정 걸었다. 문우당 근처에서 '맞다!칠성 조선소가 이 근처지?'하고 떠올렸다.
두 달만에 간 것 같은데, 푸른 청초호와 빨간 설악 대교가 새삼 멋지다. 왼편에 자그마한 항구가 있는 것도, 어느 호텔이나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지 않는 것도 좋았다. 창가 자리가 늘 인기지만, 왼쪽 벽 간이 테이블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는 게 나는 좋다.
지는 햇살을 받으며 호숫물에 일렁이는, 어선의 뱃머리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이번 주의 큰 이벤트는 '요시고 사진전'을 보러 가는 일이었다. 양평에 강을 바라보는 큰 스타벅스가 생긴 걸 알고부터 계속 가보고 싶었는데, 서울 간 김에 양평도 들르기로 했다. 이왕이면 양평오일장에 맞추어 날을 잡고, 숙소와 차표 예매를 했다.
속초, 고성, 양양에 여행 온 사람의 후기를 보면, 설악산 카페에 갔다가 고성 숙소에 체크인하고 다시 양양에 가서 밥먹고 오는 장거리 노선을 보고 놀라곤 했다. 아마 수도권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면 이런 노선을 짜지 않을 거다. 하루만에 서울역-양평역-강릉역-강릉 터미널-속초 터미널을 찍고 돌아오니, 인간은 얼마든지 열심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 대기 없이 사진전을 보고, 점심은 그 유명한 우래옥의 평양냉면을 먹었다. 몇 년 전에 경남 진주의 '하연옥'에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정갈하게 차려입은 신사 할아버지가 자리 안내를 하시고 직원들은 모두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예전에는 큰 마음먹고 가는 고급 음식점이었을 것 같다.
팟캐스트로 '비밀보장'을 자주 듣는데, 평양냉면 고수가 팁을 알려줘서 따라 먹어봤다.
1. 면을 섞지 않고 국물을 먼저 음미한다.
2. 이번엔 면만 섞어서 면수가 어우러진 국물을 맛본다.
3. 젓가락으로 면을 주리 틀듯 올려서, 면에만 식초를 뿌린다.
동치미 막국수와 함흥냉면의 고장에서 온 나. 첫 입에 달콤 새콤하게 올라오는 맛에 익숙해진 후라, '야 맛이 참 대단하다!'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고향의 겨울이 생각나는 맛이라고 느꼈을 뿐이다.
간만에 명절이라 귀한 소고기 덩이를 한나절 푹 고아 차례상에 탕국으로 올리고, 부엌 뒤켠에 냄비째 내 놓으면 찬 바람에 기름이 굳는다. 벽에 호롱불이 일렁이는 저녁이 되면 배 고프다 조르는 아이들. 그 때 김치는 행궈서 종종 썰고, 아침에 상에 올렸던 배도 채 썰고, 기름 걷은 고기 국물에 면을 말아서 한 그릇씩 나눠먹었던 고향의 겨울 맛. 나에게 그런 고향은 없지만, 잠시 이북의 고향집을 상상하며 남은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저녁 메뉴는 뜬금 없이 네팔 카레와 탄두리 치킨이었다. 동선에서 가까운 맛집을 찾다보니 그랬는데, 전부터 인도에서 먹는 것처럼 난을 카레에 찍어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여기에 난도 있고, 탄투리 치킨도 있고, 사장님이 네팔 사람이라고 해서 갔다.
알고보니 서울에 오면 자주 묵었던 '동대문 스파렉스 찜질방'과 같은 층에 있었다. 굿모닝 씨티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갔다. 아.. 찜질방이 운영 중단 중이다. 네이버 지도에선 아예 사라졌다. 전에 왔을 때도 손님의 절반은 쇼핑하다 쉬러 온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참 좋았는데 안타깝다.
누군가 블로그에 올린 리뷰를 보고 길을 찾아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찜질방을 왼편에 두고 우회전, 노란색 시트지가 붙은 가게 끄트머리에서 좌회전. 다시 우회전.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이 드디어 '에베레스트 레스토랑'이었다.
요즘 마트에서도 레토르트 식품으로 파는 '치킨 마크니'를 고르고, 통밀로 만든 납작한 빵과 탄두리 치킨 반 마리를 주문했다. 카레는 한국인 입맛에 무난하게 맞는 맛있는 맛이었다. 빵 하나를 먹고 모자라서 일반 난을 시켰다. 실제로 보니 길쭉하고 컸다. 탄두리 치킨은 사진보다 빨간 색이었다. 형광 빨강색에 닭고기가 절여진 느낌. 먹어보니 슴슴하면서 부드러운 카레맛도 나는 것 같아서 잘 먹었다.
엄마는 곁에 두면 틀림없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예민한 입맛의 소유자인데, 빨간 닭고기를 힘들어하셨다. 부드러운 살을 하나씩 나누어 먹고, 남은 퍽퍽살은 소스 찍어 난에 싸서 내가 야무지게 다 먹었다.
가기 전에는 갈까 말까 하더라도, 일단 떠나면 새로운 에너지를 만나게 된다. 메모장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득 적어 돌아오니, 쓸 이야기도 그만큼 많아졌다.
일단 하자. 일단 쓰자.
계획만 하면서 누워있기엔 오늘이 너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