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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Oct 30. 2023

엄마와 두발로: 마로니에 백일장 여행

2023/10/11 수요일, 대학로에서

 

 연재 기능을 알기 전 쓴 글이 있다. 2화 주제로 ‘마로니에 백일장’을 예고에 써 놓았기 때문에 여기에 링크를 첨부한다.




 연재 기념으로 덧붙여 써보는 이야기.


 바닷가 가까이 살고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년 이맘때엔 아침 해가 뜨는 걸 보고 걷는 아침 루틴이 있었다. 올해는 통 못보다가 6시 35분 시외버스를 타러 갈 때가 마침 해 뜨는 시간이라 볼 수 있었다.  해 뜨는 시간은 앞으로 점점 늦어져서, 내년 1월 1일이 되면 7시 40분 정도에 일출을 보게된다.


 아침 버스에 올라 곧 잠이 들었다. 엄마는 눈만 붙였다고 한다.


버스에선 잠이 안 와~

 동서울 터미널에 내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강변역으로 가는 횡단보도 건너기. 역에 들어가 일단 화장실부터 간다. 아무래도 터미널보단 깨끗하다.


 “여긴 예전에 꼬마김밥 가게가 있었는데 아직도 비어있네? 집세가 비싼가봐~”


 강변역에 들어서면 늘 하는 말을 엄마에게 건네고선, 화장실에서 10여분을 보내고, 개찰구로 들어간다. 엄마는 가방에서 교통카드를 꺼내어 어디로 들어갈지 잠시 주춤거렸다. 건너편 사람이 들어오고 있으면 빨간색  X가, 가도 되면 형광초록색 화살표가 뜬다. 교통카드를 찍고 발이 세개달린 출입구를 몸으로 밀며 오늘로 들어섰다.


 강변역에서 혜화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하고 보니 9시 45분쯤.

접수하면서 백일장 주최측에서 준비한 샌드위치, 음료도 받았다. 개회식에서 글제가 공개되고, 참가자들은 공원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엄마와 나는 아르코 미술관 벽 앞에 준비해 간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채소의 물기가 빵을 축축하게 적시기 전에 받은 샌드위치부터 먹었다.


 어쩌다보니 놀이터 앞에 앉게되었다. 놀러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길바닥에 철푸덕 앉아있는 어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산책 나와 기분 좋은 강아지, 벤치에서 아기 이유식 먹이는 젊은 외국인 부부, 파란 하늘, 빨간 벽돌. 낯설면서도 익숙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마로니에 백일장은 당일 오후에 결과가 나오고 바로 시상식을 한다는 특징이 있어서, 아예 저녁까지 대학로에 있을 생각을 하고 갔다. 대학로에 간 김에 학림다방에도 꼭 가고싶어서 코스로 생각해두고, 혹시 바깥이 불편하면 가까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글만 쓰려고 했다. 할리스 커피 쿠폰이 있어서 성균관대 앞으로 갔다.


 학림다방은 10년 전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에서 도민준이 창완 아저씨와 함께 갔던 오래된 카페다. 그맘때 찾아가보고 왠지 좋아져서, 대학로 갈 일이 있으면 들른다. 그런데 이 날은 결국 가지 못했다. 밥 먹고 창경궁까지 한바퀴 돌고 나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버렸다. 백일장 행사로 준비된 공연을 보며 시상식을 기다렸다.

 말로만 듣던 성균관대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진입로부터 또래의 20대 초반 학생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 이거였구나. 내가 예전에 듣고도 무심하게 흘려버렸던 어른들의 말. 젊고 어리다는,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에 대해 어른들이 이야기 할 때마다 ‘또 그 이야기네’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건 나의 젊음에 대한 부러움이라기 보다는, 지나가버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되는 찰나의 탄식이었던 것이다.


 2층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다 잊은 줄 알았던 그맘 때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다 안좋았던 것도 아니고, 모든 시간이 실패였던 것도 아니구나. 다시 돌아가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 다시 대학교에 다니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 지금 다시 대학생이 되면 또래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시간을 또 어떻게 보내게 될까?

 엄마와 나는 접수 시간 30분 전까지 각자 연습장을 보며 집중했다. 시는 짧은 시간에도 써 낼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원고지에 또박또박 글자를 적었다.


 접수대에 도착하니 산문 코너에만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원고지를 내고 이제 시상식까지 3시간 정도 여유가 남았다. 배가 고파서 밥부터 먹으러 갔다.

  엄마는 우동을 좋아한다. 점심 메뉴로 정해둔 몇 곳의 가게 가운데 학림다방 옆 겐로쿠 우동에 갔다. 구운 파 향과 달큰한 간장맛 국물이 어우러지는 온우동을 먹었다. 런치타임 막바지에 들어가서 서비스 유부초밥도 받았다.


 밥 먹고 소화시킬 겸 걸어 근처 창경궁에 갔다. 밥 먹고 바로 걷는 코스 또한 엄마가 좋아한다. 이렇게 걷고나면 많이 먹었다는 죄책감 비스무리한 것이 줄어든다고.


  창경궁에는 처음 가봤다. 도심에 이렇게 고즈넉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니. 코엑스 뒤 봉은사에 갔을 때처럼 신기했다. 입장료도 저렴하고(천원) 위치도 좋아서인지 한복 스냅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창경궁에서 문 하나만 넘으면 갈 수 있는 창덕궁 후원이 유명하다고 한다. 예약이 치열하다고 해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창경궁 안에 있는 대온실에 갔다. 가는 길에 춘당지라는 큰 연못이 있었다. 연못 둘레길을 걸어야 대온실로 이어지는데, 길 폭이 좁아서 둘이 스쳐 지나가기는 어려웠다.


 연못에 비친 나무가 아름다웠다. 단풍이 들면 얼마나 예쁠까.


 대온실은 말 그대로 큰 온실이었다. 안에 유자나무, 고사리 등이 있었다.


 다시 돌아나와 마로니에 공원으로 갔다. 팝페라 가수의 공연을 보며 시상식을 기다렸다. 5시부터 수상자 발표가 시작됐다. 입선부터 장원까지 호명되는 동안 상금도 올랐다. 10만원, 20만원, 70만원, 150만원 그리고 장원은 200만원. 상금 액수를 듣는 엄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내가 장원이면 반은 엄마, 반은 나 이렇게 나누면 되겠어.

잠시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은 꽝이다.

 

 다시 강변역.

터미널에 오기 전에 구경삼아 들른 잠실 백화점 식품관에서 비첸향 육포를 100그램 사왔다. 평소에는 어쩌다 한 번 이마트에 파는 것밖에 먹을 수 없으니까. 이걸로 충분히 행복하다.


 백일장 핑계삼아 다녀온 엄마와의 하루 나들이가 좋은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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