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모자를 찾아서

콩카페 속초 엑스포점

by Julie

저번 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자를 잃어버렸다.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할머니 왕김밥을 사서, 7번 버스를 타고 설악산에 가려던 참이었다.


그 모자로 말할 것 같으면, 3년 정도 전에 한 땀 한 땀 내 두 손으로 떠서 만든 여름용 버킷햇이었다. 시중의 모자 사이즈와 내 머리 둘레가 잘 어우러지지 않아서 고심 끝에 직접 모자를 떠서 쓰게 되었다.


동생한테 생일선물로 여름용 뜨개실을 사달래서, 질긴 노끈 같은 실을 달래 가며 떴다 풀었다 며칠을 뜨개질과 씨름했다. 모자 하나를 완성할 즈음엔 내 머리에 맞는 모자 하나쯤은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밀짚모자 비슷한 재질에 만지면 깔깔한 느낌이 들어서, 겨울 빼고 햇살이 뜨거워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주야장천 쓰고 다녔다. 겉면이 햇빛에 바래서 안쪽 부분과 달리 옅게 바래버렸다. 새 모자 하나 만들어야지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닌데, 이렇게나 급작스러운 이별이라니!! 이왕이면 막 감고 나온 향기로운 머리 위에 썼다가 보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떡진 머리에 쓰고 있다 잃어버려서 모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디에 있니?

아프진 않니? 많이 걱정돼

귀여운 아기 은행잎 발견

잃어버린 걸 안 순간 걸어왔던 길을 한 번 되짚어갔다 와보긴 했지만, 찾지 못했다. 마지막 아쉬움을 털고자, 모자를 찾기 위해 한 번 더 그 길을 걸어가 보기로 했다. 오늘도 없으면 우린 인연이 아닌 거야.


설악대교를 건너 청호동 성당까지. 그날 걸었던 길로 들어섰다. 이쪽 길은 가로수가 은행나무인데 얼마 전 나기 시작한 잎이 제법 무성하다.

모자야~
모자야~?


둘리를 찾는 둘리 엄마처럼, 땅바닥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한 사람. 그게 나야..


저 앞에 키크니 4인방이 보인다. 왼쪽부터 차례로 호텔-오피스텔-호텔(예정)- 좀 비싼 호텔이다. 볼 때마다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 가깝지 않나 생각이 든다. 왼쪽 두 건물은 창문으로 음식도 나눠먹을 수 있을 듯.

마지막으로 모자의 감촉을 느꼈던 기억이 나는 청호동 성당까지 왔다. 마리아상 앞에도, 십자가 모양 마당의 길에도 없다. 아아.. 그는 갔습니다. 좋은 모자였습니다.


성당 계단 앞에 서서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울산바위를 바라봤다. 그래 이제 보내주자.


그리고 이제 달콤한 걸 먹으러 가자.

새로 생겼다는 그 카페는 어떨까?


올해 들어 써브웨이가 들어온 그 건물 뒤편에 베트남 커피로 한바탕 대한민국을 휩쓴 적 있는 <콩카페>가 들어왔다. 속초가 요즘 왜 이러지?


베트남 커피라 하면, ‘커피핀’이라는 독특한 추출 기구로 내린 커피에 연유를 섞어 진하고 달달하게 먹는 연유커피가 유명하다. 여기는 코코넛밀크로 만든 스무디에 커피를 부어주는 코코넛 스무디라테가 인기 있는 메뉴라고 한다.


제대로 된 연유커피는 이번이 두 번째로 먹어보는 것이다. 전에 여수에 간 적이 있는데, 로컬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문화공간이 있었다. 바로 옆에 베트남식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서, 눈앞에서 커피핀에 내려 주신 연유커피를 마셔본 경험이 있다.


연유커피라서 장이 약한 사람은 배가 아파지기 쉽다. 몇 해 전 <나 혼자 산다>에서 베트남 여행을 간 편이 나왔다. 박나래 씨가 현지 카페에서 연유커피를 먹고 자전거를 타다가 급한 순간을 맞이한 장면이 나왔었다.


카페 인테리어가 카키색 바탕에 빨간색 포인트로 묘하게 어디서 본 것 같은 조합이다. 더 공부를 해봐야 될 것 같은데, ‘콩’이라는 글자나 빨간색에서 예전 베트남 역사가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 그래픽 노블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을 봤다. 보트피플이라 불리는 베트남 난민출신 가정의 작가가 쓴 책이다. 미국에 이민해서 정착한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온 시점과 비슷한 시기의 베트남이 콩카페의 브랜딩에 녹아있는 것 같다.

연유를 섞으면 라떼처럼 변한다

그런데 여기 속초점 위치는 다소 생뚱맞다. 같은 건물 써브웨이처럼 큰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찜질방이 있는 상가동의 1층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여기는 베트남이다.

더위가 이어지고 있고, 햇살을 피해 콩카페로 들어온 나. 나는 배낭여행 중이다. 게스트하우스 짐 보관함에 큰 짐들을 넣어 잘 잠가두고, 가벼운 차림에 노트북과 책 한 권만 챙겨 나선 길. 뜨거워지는 햇살을 참기보다 잠시 쉬어가는 게 낫겠어, 하며 막 카페 문으로 들어선 참이다.

뜨거운 공기와 나른한 분위기.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처럼 보인다. 아, 저쪽 테이블에 앉은 젊은 친구들은 여기 사람 같네.

카페 주인은 영어를 좀 해서 언제나 활달한 얼굴로 스몰토크를 걸어온다. 고 구글맵 리뷰에서 보고 왔다. 지금은 뭐가 바쁜지 십 대 후반은 되었을 아르바이트생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입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걸 보니, 환기팬에 걸린 거미줄을 치우라는 이야기인가.

나무 합판으로 덧댄 벽 옆에 앉았다. 배낭을 내려놓으며 손으로 건드렸더니 텅- 하고 속이 빈 소리가 난다. 주문한 연유커피는 금방 나왔다.

찐하고 달달한 커피 한 잔. 노트북을 열고 이곳을 여행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쓰기에 지금처럼 좋은 환경은 없을 거야

(상상 끝)

2012년 네이버 웹툰 중에 <월남특급>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그땐 스마트폰 도입 초기여서 지금보다는 기능이 못했지만, 누워서 웹툰을 보는 정도는 괜찮았다.


한국에서 답답한 일상을 보내는 회사원 친구 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으로 도망친다. (훔쳐온) 어마어마한 금액이 든 돈가방이 있어서 한동안 호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뢰를 받고 찾아온 킬러와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하는 이야기.

나짱(나트랑)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그 웹툰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아직 가보지 못했다. 어떨까 그곳은?

나짱의 거리 한복판, 뜨거운 더위를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달달하고 찐한 연유커피를 홀짝이며 앉아있을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여기 콩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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