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워 코지 플레이스>
고양이는 강아지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살아오며 언제나 가까웠던 쪽은 강아지였던지라, 처음엔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법을 잘 몰랐다. 게다가 실제로 가까이에서 본 고양이는 제법 크기도 해서, ‘밝은 빛을 받으면 세로로 확장되는 동공이 무섭다’ 거나, 동네 어귀에서 야옹하고 우는 울음소리 정도로 고양이를 접해왔던 나에게는 살짝 낯선 느낌을 주는 존재였다.
고양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반려 고양이를 만나게 된 덕분이다. 꽤나 크고 포동포동한 검은색 고양이는, 강아지들과 달리 대번에 다가오거나 짖지도 않고 그저 행거 아래 몸을 숨기고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한참 시간을 보낸 후에 자기 기분이 내킬 때에야 나타나서 슬며시 나의 종아리에 자기 몸통을 비비며 지나갔다. 친구 말로는 그게 고양이의 인사방법이라고 했다.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는 내가 ’ 쓰다듬어 준다 ‘는 기분이었다면, 고양이는 그 반대의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어려운 일에 성공한 것 같은 기쁨이 느껴졌다.(이래서 너무 쉬운 것보다 살짝 어려운 것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인가)
그런 고양이가 매년 이맘때면 우리 집 마당에 나타난다. 자그마한 아기 고양이들이다. 아마도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이 보통 이 무렵에 새끼를 낳는 것 같은데, 그 자식이 커서 또 새끼를 낳는 건지 꼭 고만큼 작은 고양이들이 나타난다.
어느 아침 양치질을 하다가 문득 바깥을 봤더니, 혼자서 뒹굴고 발을 깨물며 놀고 있는 아기 고양이 한 마리. 저만치 떨어진 곳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아기 때는 그 개구진 느낌이 비슷하다. 동네 출신의 엄마에게 경계하는 법을 배운 것인지, 문을 여는 소리에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오늘, 교동 만천리에 있는 <아워 코지 플레이스>에서 그 동네의 또 다른 고양이를 봤다. 카페에서 챙겨준 밥을 먹고 있는데 별로 경계심도 없다. 이쪽은 신경도 안 쓰고 그릇에 얼굴을 묻고 있다. 고양이는 자신이 있는 환경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하얀 고양이는 문 앞에 오도카니 앉아있다가 손님 들어서는 길에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할 때가 있다. 친구(카페 사장)가 허락해 주면 들어오는데, 언젠가는 가장 편한 소파자리에 누워 편하게 잤다. 그 자리 나도 앉고 싶었는데... 가까이 가면 고양이가 비켜날 수도 있고, 어쩌면 사이좋게 같이 앉을 수도 있겠지만, 편해 보여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왜 고양이를 보면 내 마음도 편해질까? 햇살이 잘 드는 마당에서 뒹굴뒹굴하거나, 온몸의 힘을 뺀 채로 어딘가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그때 저절로 웃게 된다.
(또 다른 날 이른 아침 빨래 널러 나갔다가,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랑 놀고 있는 귀한 모습을 포착했다. 아기고양이는 총 4마리였고,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평소엔 그 시간에 빨래를 널지 않는다. 고양이 입장에선 평소에 평화롭게 자기들끼리 보내던 시간에 갑자기 인간이 나타나서 놀랐을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 고양이 만나는 행운이 자주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