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24시 대나무숲입니다.
episode 2
내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은 여러 개의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곳이다. 취객이 많은 유흥가도, 직장인들이 많은 오피스상권도 아니다. 평일 오후 3시가 되면 키가 계산대만 한 초등학생들이 몰려와 4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 가고, 금요일과 주말 저녁에는 집에서 마실 술과 안주를 사가는 사람들이 거쳐간다. 이미 알바생인 나보다도 가게를 잘 아는 단골손님들이 주로 드나드는 곳. 카운터의 시선을 빗겨 난 안쪽에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도 2-3개 있다. 매일 사람들의 만남이 생겨나고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가 모인다. 마치 옛날 구멍가게의 현대판 같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기계처럼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나는, 비유하자면 원래부터 거기 붙어있던 벽시계 같다. 손님들은 알바생의 귀를 그리 의식하지 않는 듯 각자의 사담을 나눈다.
‘자자. 금은동 주민 여러분. 여기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금은동의 대나무숲입니다. 여기 대나무숲 주인은 철저한 익명성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여기 숲이 넓고 사각지대가 많아 혹 말씀 나누실 때 주의 부탁드립니다. 아 참고로 ‘대신 전해드립니다 ‘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편안하게 이용해 주세요. ‘
언제나 셋이서 함께 와 라면을 먹고 가는 여중생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 왔다. 긴머리, 중간머리, 단발머리 학생들인데, 마침 오늘 중간머리 소녀에게 고민이 생겨 버렸다. 왜 그 소년은 저렇게 예쁜 소녀에게 8시간 동안이나 답장을 안 해주는 걸까? 게다가 먼저 다가와 놓고서는 말이다. 소녀들은 머리카락을, 아니 머리를 맞대어 본다.
긴머리 소녀: 걔가 밀당하는 게 아닐까?
짧은 머리 소녀: 에잉. 시험 기간인데 바쁘겠지.
긴머리 소녀: 야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진짜 좋아하면 8시간 동안 답장을 안 하진 않지.
‘그렇지!’ 긴 머리 소녀랑 통했다. 중간 머리 소녀는 중간에서 머리가 터지려는 모양이다. 그때 중간 머리 소녀가 라면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탄산음료를 집어 계산대로 온다. 나는 그 소녀의 눈치를 보며 속으로 괜차나요? 마니 놀랫쬬?, 겉으로는 계산되었습니다를 외친다.
소녀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사이, 옆테이블에서는 어느덧 2명이었던 아주머니들이 3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같은 학교에 아이를 둔 엄마들의 모임인 듯하다. 근데 아무래도… 빨간 모자 아주머니네 9살 아들은 나보다도 똑똑한 게 분명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그 애랑 말싸움을 한다면 난 이길 자신이 없다. 9살 꼬마도 그 아이를 키우는 빨간 모자 아주머니도 모두 파이팅… 생각하며 비어 버린 컵라면 매대를 채운다. 시계의 짧은바늘은 어느새 9를 가리키고 있다. 어머. 우리 집 애는 참 별나. 키우기가 힘들어. 하는 말들 사이사이에, 애정이라는 빨간 잼 듬뿍, 마음이라는 뽀얀 버터가 녹진하게 흐르고. 엄마들 서로가 서로의 커피 되어 주며, 늦은 시간까지 닫을 줄 모르는 작은 카페가 여기 성업 중이다.
매장의 작은 테이블에서는 참 많은 이야기들이 앉았다 간다. 그 자리의 도란도란함이 좋다. 예약을 하고, 차려입고 가는 레스토랑이 아니고 회식처럼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모일 수 있는 식당도 아니다. 참. 그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만 앉으면, 왜 묻어 두었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새 밖으로 나와 있는 건지. 그 기묘한 의자에 앉은 사람들에겐 시계도 보이지 않는가 보다. 몇 시인지도 잊을 만큼 이야기가 한가득 쌓여간다.
그런 곳인 것 같다. 크지 않은 작은 만남이기에 자리할 수 있는 곳. 계획되지 않은 것과 갖춰 입지 않은 옷, 가벼운 마음들이 반겨지는 그런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