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주
영국귀족의 생활(다나카 료조 저, AK)
귀족들은 그야말로 "유한계급"의 대표주자들이다. 이 책에 의하면, 선대가 받은 작위와 영지 등 재산은 장자에게 상속되는데 그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집사나 메이드 같은 가사고용인을 부리고 계절이 바뀌고 의회 회기가 시작되는 것에 맞춰서 "컨트리 하우스"와 "타운 하우스"를 오가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귀족의 자녀들은 장기간에 걸쳐 유럽여행을 하면서 귀족에 걸맞는 교양을 쌓기도 했다.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은 장자들은 호화롭게 생활을 한 일면에 가문의 재산을 유지해야 하는 책무도 무겁게 지고 있었다. 그전통이 현재에도 이어져서 유명 귀족가문(말버러, 스펜서 등)의 "컨트리 하우스"가 보존되고 있다. 아울러 귀족들과 그 후손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에 따라 전쟁 등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 솔선해서 전쟁에 참전하였다. 옛 것을 보존하고 현재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 계승하려는 의지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noblesse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높은 신분에 합당한 도덕적 의무"를 말하는 프랑스어다. 서양사람들은 이미 옛날부터 귀족 등 상류층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부에 합당당하게 사회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뜻이겠다.
"로마가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16년간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치렀을 때,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만 13명이 전사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 2,000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했다. 560여 년 전통의 영국 최고의 사학명문 '이튼(Eton) 칼리지'의 교내 교회 건물에는 전사한 졸업생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 1,157명, 제2차 세계대전 748명이다.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만만치 않다. 6 · 25전쟁 당시 미국 참전용사들 중 142명이 미군 장성들의 아들이었다. 심지어 핀란드에는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을 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법(法)'이 있다. 그래서 핀란드의 닷컴 백만장자인 야코 리촐라(Jaakko Rytsola)는 자동차로 시속 40킬로미터의 제한 구간을 약 70킬로미터로 달렸다가 50만 마르카(약8,700만 원)의 벌금을 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교양영어사전2, 2013. 12. 3., 강준만)"
우리나라의 지도층은 어느 정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지? 조선시대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양반을 비롯한 상류층과 그이하의 계층은 서로 반목하고 다툴뿐이었지 서로 화합하면서 궁극의 절대가치를 서로 공유하거나 만들어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조선에 위기가 닥치면 어느 임금은 백성보다 먼저 도망치기에 바빴고, 전쟁에 나서 용감히 싸운 일반 백성 중 세력이 커질 수 있는 자들은 골라서 반란 혐의를 씌워 사형시키기도 했다. 나라를 지키는 건 온전히 양반 밑의 계층의 몫이었다. 일본이 사무라이 같은 중간계층이 외국의 것을 배우면서 근대화를 앞당겼다면, 조선은 양반이 아닌 중인 이하 계층의 사회운동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고 근대화의 싹은 제대로 싹틀수도 없었다. 현대가 되었어도 상류층들은 사회문제에 적극 개입하기를 거부하면서 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녀들의 군입대 문제, 부의 재분배 문제, 부의 편중화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기득권에 영합할 뿐이었지 개선의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경제발전에만 가치를 둔 나머지 고유의 우리것은 다 사라지고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온기없는 문화만 남게되었다.
유럽의 경우를 우리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영국 귀족들이 프랑스 혁명 같은 유럽의 신분제를 뒤흔든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중류층 이하 계층의 별다른 반발 없이 현재까지 제도를 유지한 것은 자신들의 고유의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통해 도덕적인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이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어가면서까지도 컨트리 하우스로 대표되는 귀족적인 문화와 자신이 속한 가문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노력이 없는 우리나라의 상류층을 비교할 때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