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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새 학년, 새 학기LA RENTREE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CE1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유치원 7세 반 Grande Section이 되었다. 일 년 전 불안과 기대를 안고 파리에 발을 내디뎠던 그맘때처럼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으슬으슬한 아침 공기를 마시니 작년 파리에 도착해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된다.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지 못해 에어비앤비 숙소를 옮겨 다녔고,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어려운 발음과 문법 심지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필기체의 압박에 시달렸고, 아이들이 프랑스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노심초사했다. 그때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알아듣고 이해할 수 없기에 소음에 가까웠을 불어를 억지로 견디며 얼마나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지. 하지만 그런 경험 덕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받아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배웠다.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른다고 치부하거나 통제하고 싶은 욕구의 실체를 파보며 우리 자신을 더 돌아보게 됐고, 아이들을 나와 다른 한 개체로 인정해 가며 더 많은 선택권과 자율권을 주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한 뼘 성장한 걸 느낀다.


아이들의 프랑스어 또한 우리와는 정반대로 눈에 띄게 늘었다. 어린이의 뇌가 어른보다 말랑말랑한 까닭도 있겠지만 인생 공부를 한답시고 학교를 밥 먹듯이 빼먹은 우리와 다르게 아이들은 학교에서 프랑스어 환경에 꾸준히 노출돼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친구들과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고, 선생님에게도 해야 할 말을 수줍게나마 하는 걸 보면 신통방통하다. 둘이 놀 때조차 불어로 소통하는 걸 종종 목격하는 데 신기할 따름이다. 


개학 첫날, 바캉스 기간 동안 공사로 운행이 중단됐던 6호선을 두 달 만에 탔다. 지하철 안에서 바라보는 에펠탑 풍경을 오랜만에 보니 아이들도 개학이라는 게 실감 나는지 수많은 표정 없는 파리지앵 직장인과 학생 사이에 섞여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프랑스 공립학교는 대개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형제를 둔 부모에게는 참 편한 구조다. 만 10살까지 의무적으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야 하는 프랑스에서 안 그래도 정신없는 아침에 아이들의 학교가 떨어져 있다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학교에 가니 학년별 반 배정표가 게시판에 붙어있었다. 첫째 아이 학교 앞에는 딱 봐도 1학년CP 학부모들로 보이는 어른들이 초조하고 긴장된 얼굴로 대기 중이었다. 첫째 아이는 두 달의 공백이 별거 아닌 양 그 틈을 비집고 자연스레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호들갑도 망설임도 그 어떤 ‘드라마’도 없이 약간의 상기된 표정과 함께 의연히 입장했다.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이의 작은 뒷모습. 아이가 자랄수록 이런 뒷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될 테고 저 말 없는 뒷모습에 익숙해져야 할 텐데 언제나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헛헛한 기분이 든다.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과 학부모와 바캉스가 어땠는지 안부를 주고받느라 혼이 다 빠졌다. 의례적으로 묻는 건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지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마주치는 사람마다 묻는 바람에 스페인과 노르망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푸느라 당이 다 떨어질 정도였다. 그래도 일 년이 지났다고 이런 수다스러운 프랑스 문화가 이젠 익숙하다. 하지만 아직도 비쥬만큼은 정말이지 도통 적응이 안 된다. 어쩌다 한번 하는 친부모와의 포옹도 어색한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볼을 비비며 인사하기란. 


9월은 학교에 내야 할 행정적인 서류도 많고, 학부모와 담임선생님 모임도 있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방과 후 활동을 등록하느라 몹시 바쁘다. 다행히 둘째 아이의 유치원 담임선생님은 작년 6세 반Moyenne Section 때와 같은 선생님이라 마음이 한결 놓였다. 선생님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직접 연락을 주고받던 관계고, 이미 일 년 동안 아이를 맡겨봐서 신뢰가 두터웠다. 반면 제일 친한 친구인 시몽이와는 다른 반으로 일부러 떨어트려 놓았다고 한다. 둘이 같이 있으면 장난이 과해져 종종 말썽을 부렸던 전력이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되었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따로 만나 아이들을 놀게 하자고 시몽이 엄마와 약속했다. 


첫째 아이는 2학년CE1으로 올라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1학년CP 때는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상황을 고려해 줘 숙제도 거의 안 하고 만고땡이었는데, CE1은 숙제 양도 많아졌고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하니 아이는 내심 걱정이 되나 보다. 프랑스는 노트와 교과서가 학교에서 제공된다. 교과서는 물려받아 재활용한다. 그래서 펜, 자, 연필, 지우개, 가위, 풀, 미술용품, 휴지 정도만 준비해서 가면 된다. 이번에는 작년에 썼던 걸 그대로 보내 따로 구입할 것도 없었다.


학년 초에 진행하는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모임에는 아이들을 데려올 수 없어 아이들을 짝지에게 맡기고 모임에 참석했다. 첫째 아이의 반에 들어가니 책상은 ㄷ자로 세팅돼 있었고, ㄷ중앙에도 책상이 놓여있었다. 내 아이가 다른 27명의 학생과 옹기종기 이곳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교실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있는 교구조차 소중해 보였다. 

작고 마른 체구의 40대 초반 담임선생님은 어깨까지 오는 금발 생머리에 헤이즐넛 색의 큰 눈을 가진 미인이다. 거기다가 유난히도 스타일이 좋아 항상 눈에 띄었다. 이날도 감색 원피스 위에 트위드 재킷을 세련되게 걸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는 교실에 들어오는 학부모를 웃으며 맞았다. 


한 시간 반 동안 선생님은 중간중간 질문을 받으며 2학년CE1 일 년 과정을 설명했다. 교장선생님도 잠시 깜짝 방문했다. 학부모를 향해 반갑게 인사한 후, 조퇴와 결석 때 어떤 절차로 학교와 소통해야 하는지 농담과 함께 3분 스피치를 마치고 나갔다. 친절한 빌헬 엄마가 노트를 공유해 주고 통역해 준 덕분에 아이들의 일 년 교과 과정이 어떤 식일지 대충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어쨌든 나의 목적은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의 ‘눈도장’이니 모임이 끝나고 모든 학부모가 선생님과 개별 인사나 대화를 마치고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선생님과 둘만 남아 첫째 아이가 숙제에 부담이 있는 걸 알리고 아이가 잘 지내는지 물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불편함에 선생님은 다소 어색해했지만 아이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할 수 있었다. 비록 모두가 웃을 때 웃지도 못하고 겨우 몇 마디만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담임선생님과 학부모의 모임이었지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으니 미션 완수다. 


첫째 아이의 활동은 고민 끝에 작년부터 수요일 오후에 해오던 ‘축구’를 다시 신청했고, 금요일 점심시간에 진행되는 ‘체스’를 신청했다. 그리고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사립 ‘축구 클럽’에 가입했다. 테니스와 유도를 놓고 고민했지만 아이는 끝내 축구만 택했다.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지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다 보니 축구로 한 우물 파는 격이 됐다. 이 시기가 되면 어떤 프로그램이나 아틀리에를 신청할지 학부모들은 고민에 빠진다. 음악, 미술, 운동, 연극, 언어 등 일주일에 한 번 참여하는 비용이 일 년 기준으로 평균 350유로 선이니 무엇을 하던 큰 부담이 없다. 심지어 학교나 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학교 급식과 마찬가지로 부모 소득에 따라 비용이 청구되니 우리 같은 경우에는 일 년에 30유로만 내면 된다. 

둘째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엄마 아빠와 함께 놀이터에 가는 게 제일 좋다고 해 아무 프로그램도 신청하지 않았다. 사실 파리에는 공원, 놀이터, 잔디가 지천이니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아이가 원하지 않고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굳이 특별 활동을 시키지 않아도 괜찮다.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왔고, 다시 분주한 일상이 시작됐다. 

익숙해진 루틴 속에 의미를 찾아가는 삶은 파리에서나 서울에서나 동일하지만 파리에서의 삶은 기한이 정해져 있어 늘 아쉽고 목마르며 더 소중하다. 오늘도 ‘파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파리이기에 가능한’ 일들을 찾아 헤맨다. 그게 단순히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 주저앉아 상념에 잠기는 일이든, 지하철에서 깊은 영혼의 울림을 노래한 허름한 옷차림의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 아티스트에게 다가가 네 음악이 얼마나 내 가슴에 여운을 남겼는지 이야기하는 일이든, 인종, 문화, 전통의 다름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먼저 다가가 커피 한잔하자고 용기 내는 일이든 내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여정 속에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학위를 따거나 경력을 쌓는 거 같은 뭔가 가시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도전이 아니기에 정답이 없어 방황하고 헤매는 시간이 많아 어렵다. 하지만 증명해 낼 수 있는 도전만이 우리 인생에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때때로 길을 잃은 기분이다. 이건 우리가 애초에 선택한 대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방증일 테다. 길 잃고 헤매는 그 시간이 우리 인생에 더 값지다는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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