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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리고 나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리뷰

by 투스타우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이하 가족입니다) 타인 같았던 가족들이 서로의 오해와 비밀들을 풀어나가면서 가족 간의 소중함을 알아간다는 상투적인 주제의 드라마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까지 더해져서 웰메이드급 가족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무엇보다 가족과 개인이라는 쉽게 풀 수 없는 현대 가족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접근하면서 놀라운 주제의식까지 보여준다. 2020년 여름, 대작들의 러시 속에 안방극장에 한줄기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

<가족입니다>는 21세기 가족상을 놀라운 디테일로 그려내면서 온 가족이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무엇보다 가족 개개인들의 이야기가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하면서, 위로와 공감을 주는 힐링 드라마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극의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막장스러운 반전 스토리를 첨부하면서 보편적인 가족 드라마들과는 괴를 달리한다. 마치 50부작의 막장 주말연속극을 고퀄리티 미니시리즈로 재편성한 듯한 느낌이다. 자칫 이러한 스토리가 막장 드라마로 변질되며 비공감을 줄 수도 있지만, 작가의 필력과 연출력, 그리고 배우들의 명연기로 이러한 막장 요소들을 어느 정도 보기 좋게 포장하는 데 성공한다.

20200716135910.png <가족입니다>는 장년층부터 청년층까지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 드라마이다.



명대사 퍼레이드

이 드라마가 높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척했던 가족들 간의 문제들을 수많은 명대사로 자각시켰기 때문이다. 가장의 소외와 졸혼을 준비하는 부모, 행복하지 못한 중년의 결혼 생활과 청년들의 개인주의까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세대 간의 문제들을 캐릭터들의 대사들로 적재적소에 꼬집고 지적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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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인데, 우리는 가족인데...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휴지통이 필요해서 온 거네.
혼자 간직하기엔 너무 버거워서
누구한테든 말하고 비워버리려고

네가 왜 울어?
그거 천박한 호기심이야!


하나하나 따져 묻고, 대답하라고 괴롭히고
감정이 요동치는 게 연애예요?
나는 이 나이에 그런 어린 연애는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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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남이 찾지 못하는 급소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언제든 강력한 한방을 날릴 수 있다.




소통의 부재 : 단절

<가족입니다>는 가족들 간의 소통의 부재를 키워드로 삼아 끊임없이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건 이 단절된 가족상이 오히려 멀티극 같은 효과를 주면서, 한 드라마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적 요소가 된다. 노부부의 이야기부터 둘째의 로맨스 이야기까지 하나의 드라마에 3~4개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주지만, 단절된 가족들 간의 소통의 부재가 이러한 이야기들이 섞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전개가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부분은 억지스럽게 가족 이야기로 엮어 나가는 주말연속극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인데, 그래서 더욱 자연스러운 전개처럼 느껴진다.

20200716142002.png 각각의 스토리들이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와 맞물려서 서로 어설프게 엮이지 않는다.
20200716142402.png 이는 오히려 멀티극의 성향을 띠면서, 다양한 스토리들이 자연스럽게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장치적 요소가 된다.

단절된 가족상은 이 작품의 연출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데, 절제된 듯 건조하게 담아내는 화면이나 음향 효과에서 이러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화면 전환에서도 페이드아웃이나 자연스러운 전환 없이 단호하게 끊어내는 신에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고 하는 단절의 키워드를 유추할 수 있다.

20200716144341.png 절제된 듯 건조한 연출로 단절된 가족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단절의 폐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단절된 가족상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극 후반부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다양한 반전과 비밀들로 중반부 이후까지도 충분한 여력이 남아있었던 이 드라마는, 그런 비밀들이 오픈되고 오해와 갈등이 매듭지어지는 순간에서도 리얼리티 하게 단절된 톤을 유지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후반부까지도 따로 놀면서 극적인 유대감 없이 흐지부지 끝을 맺는다. 이는 다른 웰메이드 드라마처럼 여러 이야기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지 못하고, 후반부까지도 각개전투식으로 매듭짓는다. 물론 이렇게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개인주의적인 가족의 모습을 유지한 후반부가 큰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후반부 극적인 긴장감이나 하이라이트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맥 빠지는 전개로 보인다.

20200715134237.png 예를 들면, 첫째 부부가 이혼한다고 어머니한테 이야기하는데...
20200715134342.png 어머니는 첫째를 이해하고 지지하면서 이야기는 무덤덤하게 마무리된다.
20200715135159.png 이는 이혼 이야기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kbs 주말연속극과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가족 그리고 나

이 작품은 시종일관 가족 구성 개개인이 주변을 살피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결국은 개인이란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의 제목인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결국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보편적인 가족 드라마처럼 가족의 소중함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것 이상으로 나의 소중함, 개인의 소중함도 강조한다. 그렇게 개인의 소중함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마지막까지 저울질하면서 어렵지만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다다르려고 노력한다. 진정한 좋은 '나'가 되기 위한 과정 속에는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해답은 작가도 물음표로 남기면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은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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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뭘까요?
나는. 우리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배우들의 명연기

이번 작품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바로 배우들의 명연기이다. 모든 웰메이드 드라마가 그렇지만 이번 작품도 역시 각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라는 3박자가 완벽한 합을 이루면서 훌륭한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생활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한예리는 어느새 이 정도까지 성장한 배우가 되었고, 놀라운 감정 전달력을 보여준 추자연의 연기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김지석과 신재하의 캐릭터 소화력도 좋았고, 김태훈의 도도한(?) 연기도 아주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이중적인 모습을 완벽히 그려낸 정진영의 명연기와 원미경의 이상적이면서 너무나 완벽했던 어머니의 연기는 이 드라마의 핵심이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20200717091103.png 원미경과 정진영!! 연륜과 내공이 느껴지는 이 둘의 연기를 보는 것만 만으로도 정말로 즐거웠다~




20200716112149.png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2020.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전통 가족극을 표방한 다양한 장르의 퓨전 드라마였다. 막장의 요소도 스릴러적인 요소도 있었으며, 그 어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보다 설렘 가득한 요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드라마로서 놓쳐선 안 되는 가족의 소중함을 그 어떤 가족극이나 주말 연속극보다 더 완벽히 그려냈다.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개인의 소중함도 강조하면서, 가족과 개인이라는 현대 가족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고든 작품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그리고 드라마의 순기능을 제대로 보여준 좋은 드라마였다. 힘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과 부부들 그리고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이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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