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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도 오묘한 애증의 사제관계

디즈니플러스 <하이퍼나이프> 리뷰

by 투스타우

<하이퍼 나이프>는 시놉시스와 캐릭터 설정이 매우 돋보이는 메디컬 스릴러 드라마이다. 국내에선 보기 힘들었던 메디컬 스릴러란 장르에 살인마 의사들의 이야기. 여기에 박은빈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 예고되어 있어서 드라마 마니아들에게 오픈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물론 빌런들의 이야기로 꾸려진 피카레스크 장르의 단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닮은듯 다른 색의 데칼코마니

<하이퍼 나이프>가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시놉시스와 캐릭터들의 매력이다. 독보적인 뇌 수술 권위자인 의대 교수와 사이코 패스 같은 성격 때문에 의대에서 퇴출된 천재 여제자. 교수의 뇌에 문제가 생기면서 퇴출시킨 옛 제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흥미를 자극한다. 더 흥미로운 건 이 두 의사가 실력만큼이나 사이코패스의 성향마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는 것이다. 즉 사람도 쉽게 죽이는 살인마 의사들이 서로를 원하면서 때로는 죽이고 싶은 애증의 관계가 흥미롭게 구현된다. 자신과 닮은 교수의 치부를 드러내려는 제자와 수술 때문에 제자의 치부를 감추려는 교수의 사제 관계가 그동안 국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오묘한 관계를 그려낸다.

20250402130439.png 교수의 뇌에 문제가 생기면서 퇴출시킨 옛 제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20250402130329.png 무엇보다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두 사이코패스 의사의 오묘한 애증의 관계가 흥미롭게 구현된다.

보는 재미를 더하는 배우들

여기에 관록을 보여주는 설경구의 힘 있는 연기와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박은빈의 연기가 작품의 흥미를 배가 시킨다. 안면 근육 하나하나 마저 자신의 캐릭터로 활용해 내는 설경구는 그 특유의 연기로 최덕희라는 권위적인 살인마 교수를 완벽하게 그려낸다. 역시나 인상 깊은 건 박은빈. 밝고 명랑한 캐릭터의 대명사처럼 보여졌던 박은빈의 사이코패스 연기는 확실히 보는 재미를 더한다. 선한 이미지의 배우가 악역을 그릴 때 더해지는 파급력과 그 안에서 귀여운 매력까지 더하면서 박은빈만의 남다른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구축한다. 마치 때로는 아이 같은 순수한 악마를 보는 느낌이다. 물론 이 파격적인 연기가 박은빈에게 잘 어울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20250409143755.png 안면 근육마저 자신의 캐릭터로 활용해 내는 설경구는 그 특유의 연기로 최덕희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그려낸다.
20250402124821.png 밝고 명랑한 캐릭터의 대명사처럼 보여졌던 박은빈의 사이코패스 연기는 확실히 보는 재미를 더한다.




공들인 연출

김정현 감독의 연출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미장센이야 기본이고, 두 캐릭터의 컬러감을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설정한 부분부터 눈에 띈다. 벤츠나 롤스로이스를 과감하게 박살 내는 연출에서 감독의 의지와 디즈니 플러스의 자본력을 엿볼 수 있으며, 첼로와 실로폰 등 다양한 악기의 변주로 캐릭터의 감정을 대치시키는 음악도 신선하다. 무엇보다 매회 인물들의 감정을 복기시키는 각기 다른 엔딩크레딧의 연출은 이 작품의 백미이다.

20250409143954.png 미장센은 기본이고, 두 캐릭터의 컬러감을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설정한 부분부터 인상적이다.
20250402130044.png 첼로와 실로폰 등 다양한 악기의 변주로 캐릭터의 감정을 대치시키는 음악도 신선하다.




공감할 수 있는 서사의 부족

문제는 빌런들의 대립을 그리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단점이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악과 악이 부딪히는 이런 장르에선 인물들의 행동에 공감하기 힘든 단점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그들의 악행들을 어떻게든 설득시키는데, <살인자 ㅇ난감>의 이탕의 서사가 그런한 부분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하이퍼나이프>에서 극의 중심을 이끄는 정세옥과 최덕희의 행동에는 공감할 수 있는 서사가 부족해 보인다. 정세옥은 그저 수술 중독으로 뇌수술이 하고 싶은 거고, 최덕희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수술을 받기를 원할 뿐이다. 물론 결말에 가서 최덕희의 숨겨놓은 서사가 드러나지만, 그렇다고 해도 두 캐릭터의 행동은 여러 부분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감이 어려우니 응원도 어렵고, 그러니 어떤 도파민이나 카타르시스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20250402130231.png 극의 중심을 이끄는 정세옥과 최덕희의 행동에는 공감할 수 있는 서사가 부족해 보인다.
20250402130931.png 공감이 어려우니 응원도 어렵고, 그러니 어떤 도파민이나 카타르시스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결국 중반부로 갈수록 예상 밖의 전개가 펼쳐짐에도 이러한 반전들이 놀라움을 선사하기보다는 '왜?'라는 물음표만 남기게 된다. 서사가 필요 없는 빌런이라면 공감할 필요도 없지만, 이 작품의 빌런들은 극을 이끄는 주인공들이다. 이 작품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느린 호흡의 문제도 있지만, 바로 캐릭터에 대한 공감의 서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감은 없고 파격적인 사건의 전개만 읽히는대서 오는 지루함이었다.

20250402131236.png 이 작품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느린 호흡도 있지만, 바로 캐릭터에 대한 공감의 서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어코 설득시키는 두 인물의 관계

다행히 후반부로 갈수록 오묘하고도 알 수 없었던 애증의 관계가 조금씩 정리되면서, 비로소 두 인물의 서사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최덕희의 진심이 후반부에 드러나면서, 이 둘의 관계를 완성시키는 흥미로운 결말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존경이든, 아니면 자신을 닮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든 어쨌든 두 사람의 감정이 공유되면서 인상적인 하이라이트를 완성시킨다. 특히 8회의 결말부 울부짖는 두 사제의 대립은 연기뿐만 아니라, 파격적이면서도 오묘한 경이로운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20250403130113.png 후반부로 갈수록 알 수 없었던 애증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비로소 두 인물의 서사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20250410151340.png 그것이 사랑이든 존경이든 아니면 자신을 닮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든, 기어코 이 둘의 관계를 완성시킨다.




20250402124721.png 하이퍼 나이프 (디즈니 플러스. 2025)

<하이퍼 나이프>는 두 사이코 패스 의사의 치열한 대립과 애증의 관계를 그려내는 국내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드라마이다. 특히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듯 다른 두 의사가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감춰주는 과정에서 그려지는 사랑과 증오의 관계가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는 손이 아닌 죽일 수도 있는 손이라는 걸 보여주면서, 그동안 봐왔던 의학 드라마와는 다른 이중적인 의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는 장르적 재미에 가려지고, 그저 두 캐릭터의 대립과 이를 연기하는 두 배우의 열연으로 작품이 채워진다. 물론 이 작품의 전개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연출부터 음악까지 부족함 없는 완성도를 선보인다. 공감되지 못했던 두 캐릭터도 후반부에 가서는 어떻게든 그 감정을 설득시킨다. 결국 극을 이끄는 두 빌런 캐릭터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이 작품의 호불호로 크게 작용될듯 보인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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