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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조각처럼 빈틈없이 맞아가는 추리

디즈니플러스 <나인 퍼즐> 리뷰

by 투스타우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OTT로 노선을 바꾸는 영화감독들. <공작>,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도 그런 케이스다. <수리남>으로 드라마신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윤종빈 감독은 <나인 퍼즐>이라는 직접 쓴 극본이 아닌 추리 스릴러 작품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 나갔다. 무엇보다 <하이퍼 나이프>의 흥행 실패와 <넉오프>의 불발 이슈로 국내 OTT 시장에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디즈니 플러스가 사활을 걸고 있는 작품이기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다.




퍼즐처럼 맞혀가는 추리의 재미

<나인 퍼즐>은 과거 연쇄 살인사건의 목격자이자 현직 프로파일러인 윤이나(김다미)와 그녀를 의심하는 형사 김한샘(손석구>가 연쇄 살인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추리 스릴러 작품이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는 미스터리한 퍼즐 조각이 조금씩 맞춰지듯이,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범인의 윤곽이 하나둘씩 맞아 들어가는 과정이 상당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연쇄살인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면서 9명의 피해자가 거대한 사건에 하나둘씩 엮이는 과정과 그러한 비밀을 파헤치는 전개에서 흥미진진한 추리물의 재미를 그려낸다.

20250602093454.png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범인의 윤곽이 하나둘씩 맞아 들어가는 과정이 추리물로서 상당한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범인을 추리하는 프로파일러 윤이나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설정, 경찰팀 내에 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설정까지 추가하면서 추리의 범위를 흥미롭게 확장시킨다. 여기에 억지 설정의 전개가 아닌 개연성을 최대한 통제하는 디테일에서 추리물의 완성도마저 탄탄하게 다져 나간다. 근래 어떤 스릴러 물보다 추리의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만화 <명탐정 코난>을 보는듯한 재미를 국내 드라마에서 흥미롭게 구현해 낸다.

20250602125319.png 무엇보다 범인을 추리하는 프로파일러 윤이나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설정들이 추리의 범위를 흥미롭게 확장시킨다.


스타일로 장악하는 미장센

윤종빈 감독의 기존 작품들은 굉장히 직선적이고 투박해 보이지만, 그만큼 특유의 날것을 그대로 살려내는 감독이었다. 연출적인 재능보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능력에서 특출 난 감독이었다. 하지만 <나인 퍼즐>은 기존 윤종빈 감독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다. 남성미 강한 캐릭터도 전무하고, 날것의 연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직접 쓰지 않은 극본에서 가장 큰 차이를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미장센과 연출 쪽에 공을 들이면서 스타일로 작품 전체를 장악하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떤 부분에서는 극본의 강점마저 상쇄시킬 정도로 걸작 스릴러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연출적 야심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연속성을 기대하는 드라마 특성의 엔딩마저 전무했던 전작 <수리남>과 달리, 드라마적인 접근법을 가미하면서 한편 한 편의 완결성과 연속성마저 제대로 구현해 낸다.

20250602092946.png 미장센에 공을 들이면서 스타일로 작품 전체를 장악하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건 미장센을 그리는 미술과 의상이다. 배경은 현재인데 묘하게 근미래적인 비주얼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형사들의 복장과 경찰차 디자인, 주황색 취조실과 건물의 인테리어, 초록색 작업복과 자주색 죄수복, 수없이 등장하는 레드 포인트에 고층 빌딩과 낙후된 마을의 대비 등. 뭔가 기존의 형사물과는 다른 외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독특한 미장센을 선보인다. 물론 이러한 미장센이 리얼리티를 떨어트리는 단점도 있지만, 감독의 작가적인 스타일로 작품을 장악하려는 시도에서 나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았다.

20250602093108.png 형사들의 복장과 경찰차 디자인, 주황색 취조실과 건물의 인테리어~
20250602093046.png 초록색 작업복과 자주색 죄수복, 수없이 등장하는 레드 포인트 등. 근미래적인 비주얼로 독특한 미장센을 선보인다.

압도적인 초호화 캐스팅

또 하나 이 작품의 강점은 바로 어마 무시한 초호화 캐스팅이다. 범인일지도 모를 모든 인물들과 피해자들이 전부 초호화 캐스팅으로 꾸려지면서, 이들의 이야기와 캐릭터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명배우들의 출연은 이들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맥거핀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주고, 여기에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의 조합까지 선사하면서 보는 재미마저 더한다. 무엇보다 단순히 카메오 출연이라고 하기에는 그 출연 분량이 상당해서 웬만한 드라마 주연급들이 전부 조연으로 출연하는 신기한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20250602094356.png 이성민, 황정민, 이희준, 김성균, 현봉식, 지진희, 박규영, 이주영, 박성웅, 백현진, 노재원 등등.
20250602094644.png 어마 무시한 초호화 캐스팅으로 꾸려지면서, 이들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맥거핀을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물론 <나인 퍼즐>도

아쉬운 부분이 없는 작품은 아니다. 사건의 거대한 비밀을 숨기다 보니, 중반부까지 각각의 사건을 이어주는 연결성이 희미해서 연쇄살인이라는 드라마의 원동력이 다소 약한 느낌을 준다. 전반부의 살인사건들은 마치 각각의 사건들이 별개의 에피소드처럼 느껴지면서, 추리의 과정이 쌓여가는 쾌감을 제대로 선사하지 못한다. 특히 공장 에피소드는 초반부 몰입해야 하는 드라마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환기시키면서, 작품 전체에서 아쉬운 옥에 티처럼 느껴진다.

20250602094214.png 초반부 각각의 사건을 이어주는 연결성이 희미해서 연쇄살인이라는 드라마의 원동력이 다소 약한 느낌이다.

여기에 김다미의 추리하는 과정이 너무나 설명조라 그 친절함이 다소 루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명탐정 코난>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단점인 코난의 압도적인 능력이 윤이나에게도 주어지면서, 김한샘 형사에 비해 캐릭터 밸런스가 다소 무너지는 부분도 아쉽다.

20250602100149.png 김한샘 형사에 비해 압도적인 윤이나의 추리 능력!! 캐릭터 밸런스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보인다.

김다미의 연기톤을 다르게 했다면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역시 호불호가 느껴질 다소 부담스러운 김다미의 연기톤이다. 충분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지만, 만화 캐릭터 같은 이 연기톤이 리얼리티를 살린 다른 배우들과 부딪치면서 묘하게 이질감을 준다. 그래서 더 작품 전체가 만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250602130803.png 김다미의 만화 같은 연기톤이 리얼리티를 살린 다른 배우들과 부딪치면서 묘하게 이질감을 준다.

물론 계속해서 시청하다 보면 이 캐릭터에 익숙해지면서, 윤이나만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만약 이 캐릭터의 연기톤을 좀 더 진중한 캐릭터로 잡았다면 어떠했을까? 이미 현봉식처럼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시킬 배우들이 충분히 포진되어 있었는데, 드라마의 어두운 톤과 다르게 주인공 캐릭터를 가볍게 가져갈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윤이나의 캐릭터 설정은 작품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 보였다. 작년 스릴러의 걸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을 보면, 캐릭터의 분위기가 작품의 전체적인 톤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20250602095828.png 작품의 어두운 톤과 다르게 주인공 캐릭터를 가볍게 가져갈 필요가 있었을까?




왜 보다 어떻게가 궁금했던 아쉬운 결말

사실 가장 아쉬운 점은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10-11회의 결말부이다. 범인이 밝혀지는 하이라이트 동안 두 주인공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범인에게 휘둘리는 전개만 보여준다. 범인의 서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 살해 동기가 다소 모호하여 이렇게까지 연쇄 살인을 벌일 이유가 되는지도 의문스럽다. 무엇보다 범인의 살해 과정을 재연하지 않으면서, 공범 없이 이러한 연쇄 살인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개연성에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20250602100036.png 하이라이트 동안 두 주인공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범인에게 휘둘리는 전개만 보여준다.
20250602095951.png 무엇보다 범인의 살해 과정을 재연하지 않으면서, 개연성에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20250527100937.png 나인퍼즐 (2025. 디즈니플러스)

<나인퍼즐>은 오랜만에 감독과 제작진의 야심이 제대로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스릴러의 수작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과 개성 강한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느껴졌던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근래 어떤 스릴러 물보다 추리의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추리 장르물의 강점을 드라마에서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물론 후반부 끌려다니는 하이라이트와 김다미의 연기톤 등 여러 단점들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범인의 범행 과정에 대한 재연이 전무하면서, 어떻게 범행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개연성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준 여러 강점들에 그러한 단점들도 충분히 상쇄된다. 굳이 시즌2를 기대하진 않지만, 나름 인상적인 엔딩신이었다. 그동안 부침이 심했던 디즈니 플러스가 조금씩 부활의 날갯짓을 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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