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파인:촌뜨기들> 리뷰
윤태호 작가의 작품을 실사화했을 때, 얼마나 큰 이슈와 흥행이 되는지 우리는 이미 많은 작품들로 잘 알고 있다. 영화 <내부자들>과 <이끼>, 그리고 드라마 <미생>까지. 윤태호 작가의 또 다른 걸작 <파인>의 실사화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의외로 오랜 시간 동안 영화판에서 간을 보던 이 작품은 결국 해외 OTT라는 거대 자본을 만나 드라마로 실사화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한 만큼 윤태호 작가의 힘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좌초한 보물선에서 골동품을 꺼내려는 도굴꾼들의 얽히고설킨 싸움을 그리는 <파인:촌뜨기들>은 1976년 발생한 신안 앞바다 보물선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도굴꾼 이야기는 영화 <밀수>나 <도굴>이 떠오르고, 악당들을 내세워 사기꾼들의 대결을 그리는 구성은 <타짜>를 보는듯하다. 거기에 수많은 캐릭터들의 열전은 마치 <범죄와의 전쟁>을 떠올리면서 첫인상은 다소 식상한 느낌을 준다.
그런 식상함도 잠깐, 원작의 힘과 그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캐릭터들로 인해 이 작품의 진가는 바로 드러난다. 바닷속에 잠긴 도자기를 꺼내려는 도굴꾼들의 단순한 이야기에 수많은 인물들의 캐릭터성을 집대성한 원작의 매력이 만나 흥미진진한 전개가 펼쳐진다. 피카레스크 장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하지만 신념과 정으로 똘똘 뭉친 인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재미가 기가 막히게 그려진다. 여기에 구수한 사투리로 살아 숨 쉬는 시골 촌뜨기들의 캐릭터 열전이 오락적 재미마저 확실히 책임진다. 귀에 쏙쏙 박힐 정도로 인상적인 대사들과 잊고 있었던 욕을 다시 듣는 재미도 있고, 이를 소화하는 배우들을 보는 재미까지 더해 말 그대로 제대로 감칠맛이 난다. 캐릭터들의 매력만 놓고 본다면 올해 나온 드라마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이 작품은 이 놀라운 촌뜨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안짚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배우들의 힘이 대단했던 작품이다. 누가 더 빙신같이 연기 잘하는지, 마치 대결이라도 하는 것 같은 연기 열전이 보는 내내 웃음꽃을 피게 만든다. 류승룡과 김의성, 김종수와 김성오 그리고 이동휘 등 베테랑 배우들이야 충분히 예상 가능한 열연을 펼치지만, 양세종의 양아치 변신과 홍기준의 묵직한 황선장 연기는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그 귀여웠던 임수정이 욕망에 달려드는 여사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해 내면서, 표리부동적인 모습으로 야욕에 빠져사는 회장 부인 연기를 기막히게 연기해 낸다. 내년 백상 여우조연상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변신이었다.
신인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신비로운 마스크와 제스처로 선자 연기를 소화한 신예 김민은 새로운 스타 탄생을 보여주는 것 같고, 느릿하면서도 의뭉스러운 연기톤으로 복근을 신묘하게 연기한 김진욱은 근래 어디서도 본적 없는 캐릭터를 선보인다. 벌구를 연기한 유노윤호도 빼놓을 수 없는데, 광주 출신답게 구수한 사투리 연기와 특유의 오버스러움이 만나 벌구란 캐릭터를 완벽히 연기해낸다. 이 정도면 천지개벽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유노윤호의 연기 변신이었다.
이 작품은 왜 제목을 '파인 촌뜨기들'로 했을까? 단순히 시골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보물 찾기를 이야기함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은 상류층이 깔아놓은 판에 서로 먹고 먹히는 시골 사람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결국 자본 사회에 잠식당하는 가난한 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빗대어 쓴 제목이지 않을까 싶다. 과거 인생역전을 꿈꾸며 서울로 상경했던 시골 사람들의 한탕 주의와 낙오의 시대를 묘사하면서도, 여전히 대기업 자본주의에 잠식당하는 오늘날 가난한 자들의 비애를 투영한 듯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촌뜨기들의 욕망과 악행들이 불편해 보이지 않고, 안타까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골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는 '파인(巴人)'의 뜻이 이 드라마에 정말로 잘 어울리는 이유이다.
<파인 : 촌뜨기들>도 다소 아쉬운 단점들이 있다. 극본이 이상했을지언정 오락적 재미는 분명했던 <카지노>의 강성윤 감독답지 않게 이 작품의 호흡은 제법 느리게 연출된다. 초반부 호흡에 비해 뒤로 갈수록 루즈해지면서, 다소 지루하단 느낌도 받게 된다.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빌드업을 쌓아 올리는 과정은 나쁘지 않았으나, 다소 그 리듬이 아쉬웠다. 다행히 느리게 쌓아 올린 빌드업이 후반부 아사리판 나는 결말로 제대로 터지면서, 중반부 아쉬웠던 리듬을 만회한다. 차라리 8부작 정도로 속도감 있게 편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가져보지 못했던 거대한 돈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과정은 좋으나, 그러한 묘사들이 기대와는 다르게 다소 밋밋하게 그려진 점도 아쉽다. 코믹한 매력을 드러내는 감칠맛 나는 캐릭터들 때문에 잔임함이 상쇄되었는진 몰라도, 개인적으로 몇몇 인물들의 죽음은 훨씬 더 잔인하게 그렸어도 좋았을 거 같았다. 그랬다면 구수함 속에 그려내는 인간의 잔인한 욕망이 좀 더 제대로 대비되었을 텐데 말이다.
<파인 : 촌뜨기들>은 원작의 힘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70년대 감성을 제대로 살린 연출까지 삼박자가 완벽히 들어맞은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걸쭉한 사투리에 감칠맛 나는 배우들의 연기, 속고 속이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인간의 욕망을 제대로 묘사한 하이라이트까지.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허상에 잠식당하는 오늘날 가난한 자들의 한탕주의와 비애를 투영한 듯한 원작의 이야기가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배우들과 신예들의 등장까지 이야깃거리도 많았던 <파인 : 촌뜨기들>. 올해 또 하나의 걸작 시대극이자, <무빙>이후 오락적으로 가장 재밌게 본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였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