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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과정의 디테일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리뷰

by 투스타우

오랜 드라마 마니아로서 신인 시절부터 애정하면서 본 드라마 감독들이 있다. 나의 포스팅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젠 거장이 된 <북극성>의 김희원 감독부터 얼마 전 <우리 영화>의 이정호 감독까지. 오늘 리뷰하는 <은중과 상연>의 감독인 조영민 감독 역시 입봉작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부터 <사랑의 이해>까지 입에 닳도록 칭찬하고 극찬했던 감독이었다. 그런 조영민 감독이 내가 가장 애정하는 김고은과 만났다는 사실부터 너무나 기대하고 기다렸던 작품. 두 여성의 우정과 화해의 연대기를 담은 <은중과 상연>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과정의 디테일

<은중과 상연>은 예고편에서 보이는 것처럼 시놉시스는 단순하다. 두 여성이 10대 시절부터 20대 시절을 지나 40대에 이르기까지 오해와 이해의 시간으로 그 우정이 깨어지고 다시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물론 오해와 이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이 작품은 두 여성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두 여성의 열등감, 자격지심, 시기와 질투, 연민과 증오 등 온갖 감정들을 수많은 에피소드 안에 세밀하게 담아내면서 두 여성이 무너지고 갈라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국민학생부터 대학생 때까지의 이야기를 그리는 1막의 디테일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엄청난 흡입력을 선사하면서,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작가의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여주인공이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어마 무시한 디테일로 그려낸다.

20250908150129.png?type=w773 두 여성이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20250908150344.png?type=w773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어마 무시한 디테일로 그려낸다.


은중과 상연 그리고 상학

<은중과 상연>은 두 여성의 서사를 그린 워맨스 드라마이지만, 그 사이에는 김상학이라는 중요한 인물이 끼면서 사실상 멜로드라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은중과 상연이 각각 상학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부터 헤어지게 되는 과정까지 그린 1막의 이야기는 한 편의 청춘 멜로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직장인 시절을 다룬 2막도 영화 제작 과정을 담은 디테일 안에서 상학을 사이에 둔 두 여자의 질투와 시기가 맞부딪치는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시즌1의 청춘 멜로드라마와 시즌2의 오피스 멜로드라마 두 편을 하나로 엮어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 부분은 차 후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 작품의 아쉬운 단점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20250908145956.png?type=w773 김상학이라는 중요한 인물이 끼면서 사실상 멜로드라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 <은중과 상연>




감정을 실어 나르는 연출

감정선이 살아 숨 쉬는 조영민 감독의 연출은 전작 <사랑의 이해>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김고은과 박지현의 진정성 있는 연기와 감성을 조율하는 음악까지 더해져 마치 감정을 모니터 밖으로 실어 나르는 듯한 연출력을 선보인다. 매회 같은 오프닝에 다른 음악을 선곡하는 구성부터 시대 배경을 놀랍게 잡아내는 디테일, 은중에게만 쏠릴 것 같은 무게중심을 자연스럽게 상연으로 옮기는 과정과 부족함 없는 완벽한 미장센까지. 호흡의 완급조절도 탁월해서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함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20250908144823.png?type=w773 또 한 번 살아 숨 쉬는 조영민 감독의 감정선이 살아 숨 쉬는 연출!
20250908150451.png?type=w773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와 감성을 조율하는 음악, 여기에 아름다운 미장센까지!!


김고은과 박지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는 바로 김고은과 박지현, 두 배우의 앙상블을 감상하는 재미이다. 영화와 드라마신에서 이미 정점에 올라서 있는 김고은은 특유의 일상 연기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매력을 쏟아부어 류은중이란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해 낸다. 평범하면서도 주변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류은중을 김고은만의 아우라로 만들어내면서 역시 김고은이란 생각을 갖게 만든다. 특히 천상연의 난해한 감정을 받아내면서, 그녀를 이해하려는 어려운 감정들을 놀라운 표정으로 연기해 낸다.

20250908150511.png?type=w773 평범하면서도 주변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류은중을 김고은만의 아우라로 만들어낸다.
20250908150143.png?type=w773 특히 천상연의 난해한 감정을 받아내면서, 그녀를 이해하려는 어려운 감정들을 놀라운 표정으로 연기해 낸다.

물론 이 작품에서 단연 돋보이는 배우는 천상연을 연기한 박지현이다. 불행한 가족사에 열등감으로 쌓여있는 불안하고도 외로운 천상연이란 캐릭터를 박지현 특유의 어두운 이미지로 기가 막히게 묘사해 낸다. 특히 실제 김고은을 존경하는 박지현의 마인드가 천상연에 덮여지면서, 그 특유의 열등감을 완벽히 표현해 낸다. 마치 <유미의 세포>의 연장선 느낌으로 김고은과의 놀라운 앙상블을 이뤄낸다. 무엇보다 결말의 존엄사를 그리는 장면에서 근래 그 어떤 배우들보다 '죽음'이란 연기를 어마 무시한 디테일로 연기해 낸다. 당연히 박지현 커리어 중 최고의 연기이며, 내년 백상에서 두 배우 중 한 명만 후보에 오른다면 나는 박지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김고은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20250908150422.png?type=w773 불안하고도 외로운 천상연이란 캐릭터를 박지현 특유의 어두운 이미지로 기가 막히게 묘사해 낸다.
%EC%BA%A1%EC%B2%985.JPG?type=w773 특히 죽음을 그리는 디테일한 연기는 단연 최고였다. 근래 이 정도의 암환자 연기를 한 배우가 있었던가?




반복되는 삼각관계의 아쉬움

처음부터 15부작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다소 걱정되었지만, 사실 청년기까지 다룬 1막의 8화까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했다. 두 여자와 김상학 사이의 멜로 이야기와 예상 밖의 반전까지 그 전개는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로 다시 만나는 2막의 이야기에서 또다시 김상학과 두 여자의 멜로의 이야기를 반복할 줄은 사실 예상을 못했다. 어떻게 상연이 성공하게 되고 어찌하여 은중과 두 번째 절교를 하게 되는지의 서사가 새롭게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저 김상학이 끼어드는 앞전의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한다.

20250908145755.png?type=w773 두 여자와 김상학 사이의 멜로 이야기와 예상 밖의 반전까지 너무나 흥미진진했던 8화까지의 1막.
20250908145224.png?type=w773 하지만 영화 제작자로 다시 만나는 2막의 이야기에서 또다시 김상학과 두 여자의 멜로의 이야기를 반복한다.

차라리 직장인 시절의 2막 이야기를 줄이고, 다시 만나 화해하고 존엄사를 준비하는 3막의 이야기를 좀 더 길게 다뤘다면 어떠했을까? 두 여성의 우정이 무너지는 과정을 긴 시간 소비한 거에 비해, 그 화해의 과정이 너무 짧은 순간 이뤄지면서 이야기 분배에서 다소 아쉬운 느낌을 받는다. 중반부까지는 15부작이 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나, 확실히 2막의 반복되는 이야기 때문에 이 러닝타임은 길게만 느껴진다. 이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생각해 보면 다소 치명적인 단점처럼 보인다.

20250908150500.png?type=w773 직장인 시절의 이야기를 줄이고, 다시 만나 화해하고 존엄사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좀 더 길게 다뤘다면 어떠했을까?

여기에 이 드라마를 통틀어 은중과 상연만큼 중요한 일물이었던 김상학이 3막에서 등장은 둘째치고 전혀 언급되지 않아 다소 의아한 느낌마저 준다.(물론 스위스에서 ‘학‘을 이야기 하지만) 아닌척하는 3막의 마무리지만 어쨌든 두 여성의 서사에는 김상학이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20250908145829.png?type=w773 중요한 일물이었던 김상학이 3막에서 등장은 둘째 치고, 전혀 언급되지 않아 다소 의아한 느낌을 준다.




20250908150548.png?type=w773 은중과 상연 (NETFLIX. 2025)

근래 다양한 여성 연대를 다루는 작품들 중에서 <은중과 상연>은 가장 돋보이는 이야기와 완성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두 여성이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미워하게 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어마 무시한 디테일로 그려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대단했던 작품이었다. 그러한 이야기의 디테일을 고스란히 살려서 감정을 실어 나르는 조영민 감독의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눈부신 배우들의 앙상블까지 감상하는 재미마저 완벽한 작품이었다. 긴 러닝타임도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도 흡입력 있었다. 하지만 직장인 시절부터 다시 반복되는 상학과의 삼각관계 이야기가 전개를 지지부진하게 만들면서, 결국 15부작이라는 러닝타임이 다소 부담스러운 작품이 되고 만다. 두 여성의 긴 오해의 시간 사이엔 결국 남자 때문이라는 해석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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