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 <탁류> 리뷰
<탁류>는 천성일 작가의 작품답게 그 분위기에서 <추노>가 명확히 느껴진다. 어두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작은 몸부림들, 분노의 기운으로 그리는 드라마의 힘이 영락없는 <추노>이다. 여기에 OTT의 지원 속에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미장센과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악, 그리고 젊은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져 제대로 된 정통 사극의 매력을 선사한다. 올해 디즈니 플러스 작품 중 <파인 : 촌뜨기들>과 함께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탁류>는 조선의 모든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경강(한강)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초반부 경강 마포 나루터를 감독하는 왈패 무리에 주인공 장시율이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조선시대의 건달 이야기를 보는 듯 그려진다. 가난한 조선 깡패들의 이야기면서 엄지, 검지로 나뉘는 서열에서 자연스럽게 무협 격투 드라마의 느낌도 자아낸다. 조선 누아르 혹은 조선판 야인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조선시대의 건달 느낌을 신선하게 구현해 낸다.
물론 이 작품의 근간은 어둡고 축축한 세상을 타파하기 위한 민초들의 분노에 대한 이야기이다. 왈패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혼탁한 세상을 뒤집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민초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결국 거대한 역사 속에 각기 다른 꿈을 꿨던 젊은이들의 운명을 그리는 작품으로 변주한다. 임금부터 천민까지 이어지는 먹이사슬과 온갖 세금의 흐름, 그 썩은 탁류를 부수기 위한 젊은이들의 의기와 분노가 단순한 스토리 안에 제대로 녹여져 있다. 이 작품이 시작부터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했던 것은, 현시대를 또렷이 되비치는 썩은 나라를 타파하기 위한 의기와 분노에 제대로 몰입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힘에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지는 미장센은 그 디테일에서 몰입감을 한 층 더해준다. 아름다운 나루터의 배경과 배우들의 디테일한 분장, 여기에 힘 있는 카메라 워킹과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까지. 전통 사극에서 보여줄 수 있는 웰메이드, 그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롱테이크 엔딩신은 올해 드라마 중 가장 인상적인 엔딩신이었다. 여기에 전통 악기에 현대 음악을 접목한 음악과 OST는 이 작품의 백미. 읊조리듯이 긴장감을 그려내는 국악 음악이 서서히 타오르는 인물들의 분노를 제대로 살려낸다. <은중과 상연>과 함께 올해 최고의 드라마 음악으로 손색이 없다.
분노와 의협심을 제대로 머금은 로운의 포스는 새로움 그 자체이다. 큰 체구에서 나오는 정직한 힘과 <연모>에서부터 느껴졌던 좋은 발성, 그리고 마치 <배가본드>의 다케조를 보는 듯한 외모까지. 장시율이란 올곧으면서 또 의기로운 인물에 최적의 캐스팅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오랜만에 배우의 변신과 가능성에 대해 제대로 즐겼던 로운의 연기였다.
로운뿐만 아니라 왈패들과 빌런들을 연기한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눈부시다. 최규화와 최영우의 매력적인 빌런 연기와 왈패들을 연기한 박정표, 안승윤, 김철윤, 그리고 화장 안 한 민낯으로 연기하는 신예은까지. 하나같이 본인이 맡은 캐릭터를 눈부시게 소화해 낸다.
누구보다 이 작품에서 눈부셨던 것은 박지환이다. 장이수 이후 최고의 인생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능구렁이 같으면서도 정 많은 무덕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해 낸다. 마지막 반전을 책임지면서도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무리수 같던 전개들을 자연스럽게 설득시킨다. 진중한 드라마임에도 무덕과 왈패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꽃을 피우게 만드는 진정 명연기들이었다.
느린 전개는 이 작품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단점. 중반부로 지날수록 의도적으로 전개를 늘린다는 느낌이 들며, 불필요한 에피소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7화에서 나온 왈패들의 왕해 습격 이야기는 캐릭터들의 재미를 떠나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시율과 정천이 함께 연대하는 장면도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한 장면이 전무한 것도 의외였다. 나쁘지 않은 하이라이트였지만 시율과 정천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그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다소 아쉬웠다.
사실 가장 아쉬운 점은 특정 배우의 연기이다. 워낙 출중한 연기들 사이에서 정천을 연기한 신인 박서함의 부족한 연기가 계속해서 눈에 거슬린다. 중요한 배역이기에 누가 봐도 어색한 옥에 티가 마지막까지 이 작품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탁류>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천성일 작가의 걸작 <추노>와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왈패들의 건달 이야기 같았지만 결국 부조리한 사회와 역사에 휘둘리는 민초들의 삶을 그린 <탁류>. 추노꾼의 이야기에서 역사를 바꾸기 위해 뛰어든 민초들의 분노를 그린 <추노>와 자연스레 닮아 있다. 심지어 그 시절보다 더 뛰어난 미장센과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 무엇보다 놀라웠던 음악까지. <옷소매 붉은 끝동> 이후 우리가 기억해야 할 20년대 또 한 편의 웰메이드 전통 사극이었다.
이 작품의 결말에서 그려지는 임진왜란이 단순히 시즌2를 위한 전개는 아님을 누구나 눈치챌 수 있다. 물욕만을 탐하는 관료들의 무책임함이 암울한 미래를 초래하고, 민초들에게 더 큰 역경이 당도했음을 그리는 함축적인 메시지였다. 결국 <탁류>는 썩어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줌과 동시에 곧 암울한 미래가 다가올 수 있음을 시사하는 작품이었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사나이들의 뜨거운 가슴을 준비해야 하는 작품임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극이었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